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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탈북했는데… 기다리는 건 '노예생활'
조선일보 2011-03-20 13:48:00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1156 2011-03-21 04:00:27

中남성에 팔려 고된 노동술집·음란채팅 내몰려도 "公安에 걸리면 압송된다
"수십만명 숨죽이며 살아 "떠도는 탈북자들 도와야"
김을동 의원 법안 발의

3월에 들어선지 열흘이 지났음에도 '조·중(朝·中)국경'의 바람은 매서웠다. 압록강에서 불과 10여㎞ 떨어진 중국의 농촌 마을에서 만난 탈북자 박미옥(가명)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손은 거칠었고 얼굴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30대 중반이라는데 50대로 보였다.

미옥씨는 7년 전 압록강을 건넜다. "잠시 갔다 오면 가족 굶기지 않을 만큼 돈 벌 수 있다"는 탈북 브로커의 말에 병든 남편에게 어린 남매를 맡겼다. 그러나 브로커가 그를 데려간 곳은 산둥성(山東省) 농촌의 50대 한족(漢族) 남자의 집. 말 안 통하고 잠자리가 싫었지만 배는 곯지 않았다고 했다. 남자는 브로커에게 준 돈 때문인지 갈수록 거칠어졌고 미옥씨는 같은 마을에 팔려온 탈북 여성과 선양(瀋陽)으로 도망갔다. "낯선 땅에서 여자 도망자 혼자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그는 국경 근처 조선족 농부에게 다시 팔려갔다. '새 남편' 눈 밖에 날세라 뼈가 부서져라 일했고 아들도 낳아줬다.

미옥씨는 3년 전 조선족 남편에게 부탁해 300위안(元·5만2000원)을 브로커를 통해 강 너머 북한의 집으로 보냈다. 브로커의 휴대전화로 4년 만에 아들 목소리도 들었다. 떠날 때 병색이 완연했던 남편은 이미 죽었고 열 살을 갓 넘긴 남매가 구걸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미옥씨는 "재작년·작년에도 애들에게 300위안을 보내줬지만 이 짓도 언제까지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미옥씨의 마을엔 탈북자 10여명이 살고 있지만 한두 달 간격으로 한 명씩 중국 공안(公安)에 체포돼 북한으로 압송되고 있다. 불법체류자인 탈북자들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노루 신세였다.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도 탈북자의 삶은 위태롭다. 안전지대로 이동하기 전까지 체포와 북송의 두려움에 떨고 인신매매와 착취에 시달린다. 중국의 국경 지대에서 만난 탈북 여성(왼쪽 사진)과 압록강 너머 북한 마을의 풍경. / 김을동 의원실 제공
미옥씨는 "내가 공안에 붙들리기 전에 아이들을 데려와 제3국으로 가야 한다"며 "혼자 살자고 중국을 떠날 순 없지 않으냐"고 했다. 하지만 최근 국경지대 경계가 강화되면서 '강타기(도강)' 값이 폭증해 아이 2명 탈북시키는데 최소 3만위안(502만원)이 들어가는 게 큰 부담이라고 했다. 공안과 북한 보위부의 눈을 피해 숨죽여 살고 있지만 그래도 자식들과 안전지대로 함께 떠나는 게 그의 소원이었다.

힘겹게 북한 국경을 넘었어도 중국에서 비참하게 살거나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3국 체류 중인 탈북자에 대한 지원 법안을 마련 중인 국회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실과 기자가 최근 둘러본 압록·두만강 국경지대엔 '탈북자 수난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김순미(39·가명)씨는 1990년대 중반 주민 300만명이 아사(餓死)했다는 '고난의 행군' 기간 중 압록강을 넘었다. 굶어 죽은 어머니와 남동생을 직접 파묻고 중국을 몰래 드나들던 한 언니의 말을 듣고 따라나선 것. 처음엔 농장에서 일했으나 시집가면 편하게 산다는 그 언니의 말을 듣고 조선족 남자와 동거를 했다. 그 언니는 남자에게서 수천 위안을 따로 챙겼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순미씨는 남자에게 맞아도 이웃에게 욕을 들어도 13년을 꾹 참고 살았다고 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이웃에게 밉보이면 바로 신고가 들어가고 그러면 공안에게 체포되기 때문이다. 순미씨는 "집 근처에 승용차가 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이렇게 살아도 공안에 걸려 북한에 끌려가는 것보단 낫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웃에 살던 다른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했다. 임신한 몸으로 북한에 압송됐다가 강제 유산당한 그는 재탈북을 감행했으나 겨울 산을 넘는 과정에서 나무에 눈이 찔려 안구 한쪽을 빼야 했고 다리까지 골절됐다는 것이다. 순미씨는 "돈이 모이는 대로 다른 나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최근 젊은 탈북 여성들의 상당수가 옌지·창춘·다롄 등에서 인터넷 화상 채팅 사이트나 술집에서 일하고 있으나 이들 역시 착취와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 다롄에서 만난 한 탈북 여성은 "폭력배에게 감금된 채 컴퓨터 앞에서 옷 벗고 채팅을 했다. 돈은 나중에 준다고 해놓고 한 푼도 못 받았다.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탈북 고아 문제도 심각했다. 한 탈북자는 "옌볜의 한 지역엔 엄마 없는 아이가 100명이 있는 곳이 있다"며 "탈북 여성이 다른 데로 가버리면 아이를 돌보는 중국인 아버지도 있지만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탈북자들이 전하는 북한 식량난은 여전했다. 한 탈북자는 "지난해 10월 옆집에서 돈 빌려 쌀밥과 고깃국 배불리 먹고 나서 숭늉에 농약 타 마시고 자살한 가족이 있다"며 "배가 고파 야생 풀을 먹어야 할 때 가장 몸 약한 아이부터 먹이는 어미의 심정을 알겠느냐"고도 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그러나 "막상 북한 탈출에 성공해도 돈이 없거나 공안에 가로막혀 중국 국경지대에 숨어 살 수밖에 없는 탈북자들이 많다"며 "이들을 모두 도와주고 싶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탈북자들은 김정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정해진 지난해 말부터 국경과 접한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대대적인 탈북자 색출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새 지도자 등극에 따른 기강확립 차원에서 북한 보위부 요원이 섞인 중국 특수경찰의 검문·검색이 부쩍 강화됐다고 한다. 창춘 근처에선 특수경찰이 국경지대에서 외부로 나가는 고속도로를 틀어막고 차량 탑승자 전원에 대한 신분 확인 작업을 벌이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안과 보위부 직원이 탈북자를 체포하면 특진과 포상금이 주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때문에 동북 3성 탈북자들이 태국이나 제3국으로 이동하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고 했다.

현재 중국 내 탈북자 규모는 기관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5만명에서 40만명까지 추산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남성 탈북자가 많았으나 중국 내 인신매매가 성행하면서 2000년 이후엔 여성 탈북자가 훨씬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11일 기준으로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는 2만50명. 여전히 최대 수십만의 탈북자가 중국 등 제3국에서 도망자 신분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김을동 의원은 "기존의 법은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만 보호하고 있다"며 "지원 대상을 북한을 탈출한 모든 탈북자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현행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과 '남북협력기금법' 대한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북한이탈 주민'이란 용어를 '북한이탈 한민족'으로 바꿨다. '주민'이라는 개념이 '국내에 살고 있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어 다른 나라에 있는 탈북자까지 법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려면 '한민족'이란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엔 외국 체류 중인 탈북자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이고, 태국·중국 등에 정착 시설을 만들며, 강제 북송을 금지한다는 우리 정부 입장을 명문화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탈북자를 보호하는 시민단체를 도와주고, 미국 의회에서도 발의됐던 '탈북 고아 입양'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담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원은 북한에 쌀·비료 등을 보내고 경수로 짓는 데 쓰고 있는 남북협력기금에서 일부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남북협력기금을 '남북협력 및 북한이탈 한민족 보호지원기금'으로 바꾸자는 말이다. 김 의원은 "엉뚱한 데 퍼주기 그만하고 북한이 싫거나 한국이 좋아 목숨까지 걸었던 탈북자를 돕는 데 기금을 우선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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