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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경성일보에 '일제학병 권유격문'
동지회 693 2005-09-02 16:24:31
여운형 경성일보에 '일제학병 권유격문'


1944년 경성일보 ‘반도학도출진보(半島學徒出陣譜)’ 발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인사로 올 3월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은 여운형이 1943년 일제 학도병 참가를 독려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북한전문 인터넷매체 데일리NK는 2일 “여운형이 1943년 경성일보에 기고한 ‘반도 이천오백만 동포에게 호소함(半島二千五百萬同胞に )’ 이라는 제하의 격문이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중인 단행본 ‘반도학도출진보(半島學徒出陣譜)’에 실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데일리NK는 “이 글은 ‘대동아는 우리 일본을 중심으로 건립되고 있다’, ‘일본은 자국을 수호하는 것보다도 유구한 삼천 년의 역사와 영예를 위해서, 또한 동아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각 동아 민족은 지금 일본을 맹주로 그리고 지도자로서 우러러 보며 협력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글은 “친애하는 반도 학도여, 반도를 응시(凝視)하라, 일본을 정시(正視)하라, 세계를 달관(達觀)하라, 이천오백만의 운명은 어디까지나 학도의 양 어깨에 달려있는 것이다”라며 학생들에게 출병을 권하고 있다고 기사는 전했다.

데일리NK는 “경성일보가 학병 권유를 위해 1944년 출간한 ‘반도학도출진보’에는 여운형이 1943년에 기고한 ‘학도병 출병 호소’ 격문과 함께 조선총독부 총독과 학무국장의 글도 실려 있다”고 보도했다.

경성일보는 일제 강점기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해온 기관지로 일제의 조선합병과 민족의식을 말살하는 주구 역할을 한 신문이다.

한편, 여운형 추모사업회는 기사에서 “1943년 일본인 기자의 날조로 경성일보에 학병 권유 담화가 실렸을 뿐이다”고 해명했다.

또한 민족문제 연구소측은 “친일 성향의 글이 1~2회 정도 실릴 수 있지만 그 행위가 반복성, 지속성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여운형의 경우는 일회성의 글인데다가 일제 말년에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 있어 친일인사 명단에서 제외시켰다”고 말했다고 데일리NK는 전했다.

다음은 여운형 명의의 수기의 일부분

‘반도 이천오백만동포에게 호소함’

친애하는 반도의 젊은 학도가 오늘도 크게 울려 퍼지는 가슴에 미 영 궤멸의 등불을 비추며, 지금 일어나서 전열로 전열로의 출격을 계속한다. 출진결의의 용감한 함성, 이에 있어 자식을 격려하는 아버지와 은사, 전체 반도의 산하(山河)는 임시특별지원병제의 영광에 끓어올라, 이천오백만의 가슴은 무서울 정도로 격동한다. 대동아전투발발이래, 야마노토원수의 전사, 아쓰쓰섬의 황군장병의 옥쇄의 소식과 함께 그 감격은 가슴에 와닿아 비장한 각오를 새기는 것이다. (중략)

지금 세계 질서의 역사창립의 성업은 구축국의 철의 유대에 의해 진전되어져, 대동아는 우리 일본을 중심으로 건립되고 있다. 그리고 제국이 존망을 가지고 싸우는 이 일전의 여하에 따라서 좌우되며, 이 어려움을 극복하여 이기지 않으면 안되며, 물론 완성할 것이라 확신한다.

이 승리는 10억의 생과 사를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국을 수호하기 보다도 유구한 삼천년의 역사와 영예를 위해, 또한 동아 전체를 해방하기 위해서이다. 진정으로 이 일대 결전은 동아 10억의 생존권 획득전이다. 세계는 바다와 땅을 세우고 있는데 청년은 일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피를 흘리며, 목숨을 걸어....(중략)

세계인류, 피가 난무하는 중에 반도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지금이야말로 자기를 알고, 조국을 구명해 황동세계관에 기초한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을이 온 것이다. (중략) /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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