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식량지원, 정의(正義)는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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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세계식량계획(WFP)에서 북한의 취약계층 610만 명이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며 43만 톤의 긴급 식량지원을 촉구한 이후 논란은 더 가열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긴급히 나서지 않으면 수백만 북한 주민이 아사의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국내외 지원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과 미국 정부는 지원단체의 북한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의 식량수확량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또 김정일 정권이 100만 톤에 달하는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식량상황이 심각하다면 먼저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일 정권이 올 초 각국 주재 대사관들을 통해 대대적인 식량구걸에 나섰지만 2012년 강성대국 정치행사를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바깥세상의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상황이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다. 올 초 1kg당 3천원을 넘었던 장마당에서의 쌀 가격이 4월 현재 절반 수준인 1,500원 선까지 뚝 떨어진 것이다. 중산층 이하 사람들이 주로 먹는 옥수수 가격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것도 가장 힘든 춘궁기 시기인데도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제사회의 대규모 식량지원이 없을 경우 수백만 명이 굶어죽을 것이라는 주장과 정반대되는 현상이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한의 식량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난의 행군시절 이전부터 이미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 국가가 되었다. 만약 배급제가 계속 유지됐다면 지금도 해마다 수십만 명이 굶어죽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생존력을 가진 북한 주민들은 300만 가까운 주민이 굶어죽은 것을 목격하고 새로운 생존방법을 터득했다.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춘 장마당의 등장이 그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80%가 장마당을 통해 생존을 하게 되면서 김정일 정권도 막지 못한 대량아사가 멈추게 됐다.
그런데 작년 이후 식량사정이 예년보다 심각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유는 재작년 말 취해진 화폐교환 조치로 장마당의 기능이 상당수 파괴됐기 때문이다. 화폐교환 조치로 상당수 주민들은 전 재산을 날리게 됐고 특히 장마당에 의존해 살아가는 상인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최근 북한 사회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식량상황이 심각해진 배경이다.
결국 장마당을 통제하려던 화폐교환조치는 엄청난 후폭풍만 남긴 채 실패하고 말았다. 김정일 부자는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박남기에게 모든 책임을 들씌워 처형시켰다. 장마당에 대한 통제도 해제됐다. 작년 중순 이후 북한의 식량가격이 안정세를 취하게 된 것은 장마당이 서서히 회복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안정세를 취하던 식량가격이 올해 초 이상 급등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정일 정권이 군량미 공출을 하면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가격이 조정을 받아 안정세를 취하고 있다.
가격 안정은 장마당에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군량미를 훔치든 밀수든 하든 어떻게든 식량을 구해 장마당에 내놓는다. 상인들은 내외부의 정세를 분석해 가격이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하면 보유하고 있는 식량을 시장에 내놓는다. 최근 식량가격 안정은 춘궁기임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의 식량 유통이 잘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부 지원단체들이 주장하는 대규모 아사설은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20% 가량으로 보이는 하바닥 계층은 늘 아사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고민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들 하바닥 계층을 먹여 살릴 일차적 책임은 김정일에게 있지만 독재자는 이들의 생존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자신과 일가족, 측근들의 사치생활과 핵무기 개발을 위해서는 막대한 달러를 쓰고 있지만 주민들을 위해서는 한 푼의 돈도 쓸 수 없다는 게 김정일의 판단이다. 오히려 이들을 내세워 국제사회에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받아내려는 인질로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올 초 진행된 세계식량계획과 국제농업기구의 식량실태조사에서 멀쩡한 사람들 대신 이들이 대신 식량구걸에 동원됐다. 물론 이전부터 늘 그랬지만.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당국의 배급망에서도 제외됐고, 장마당을 통한 돈벌이도 신통치 않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위기다. 김정일 정권이 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대신 식량지원에 나설 수는 없을까? 대북 지원단체들도 식량지원을 해야 하는 대상과 이유로 하바닥 계층의 주민들을 꼽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에게 국제사회의 지원식량이 전달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중단한 배경에는 식량이 이들 주민들에게 전달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세계식량계획은 모니터링을 실시한다고 하지만 몇 명 안 되는 인력으로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또 북한의 담당 일꾼들이 세계식량계획 요원들을 요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세계식량계획이 수십, 수백 명의 요원들을 투입해 분배감시를 한다 해도 김정일 정권의 식량 빼돌리기는 막지 못한다. 물론 한국 지원단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방법이 없을까? 국제사회의 지원이 하바닥 주민들에게 전달되려면 북한 전역 300여 곳에 국제기구의 배급소를 설치해 직접 식량을 나눠주면 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혹은 불시에 요원들이 식량을 배급받은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식량 빼돌리기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의 방안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김정일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이 챙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식량과 돈을 챙기지도 못하고 장군님이나 김대장의 배려라는 정치적 선전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주민들을 굶기는 것을 택할 것이다. 결국 식량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알아서 잘 배급하겠다는 말을 믿고 식량을 주는 수밖에 없다. 일부 식량이 전용되더라도 돌고 돌아 하바닥 주민들에게도 가지 않겠냐며 위안을 삼을 수도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현재와 같은 방식대로 지원이 이뤄지면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외부에서 식량이나 지원이 많이 들어가면 갈수록 김정일은 군대를 강화하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더 많은 돈을 들일 수 있다. 또 20% 정도 되는 핵심계층과 보위부, 보안부와 같은 독재기구들의 충성심을 유도할 수 있다. 반면에 외부의 지원으로 식량가격이 안정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바닥 계층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 주민들이 근근이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것은 여전히 매한가지다.
더 큰 문제 중 하나는 외부의 지원이 근본적인 개혁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외부의 지원이 없을 경우 돈을 주고 식량을 사거나 내부 개혁을 통해 생산량을 높이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 정권은 현재 고난의 행군시기와 같은 사회적 불안정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돈을 내거나 개혁을 하는 것은 싫기 때문에 대신 굶주리는 인민들을 내세워 구걸을 하거나 핵무기로 위협을 해 지원을 받고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도 하고, 하나가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하나에 집중해 구걸을 하기도 한다.
의도가 좋다고 꼭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대북 지원을 하자는 것이 꼭 정의(正義)는 아니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이다. 독재자와 측근들의 배를 불리고 독재를 강화하는 결과만 낳기 때문이다. 지원을 하려면 근본적인 대책도 함께 요구해야 한다. 대규모 식량지원을 해주는 대신 분배감시를 위한 획기적 수단과 근본적인 농업개혁을 김정일 정권에게 요구해야 한다. 단순한 식량과 물품 형태의 일차적 지원에서 벗어나 북한의 농업개혁을 위한 시스템이 한꺼번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20년이 아니라 50년, 100년이 지나도 북한 주민들의 생존과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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