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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北 편향 기술로 객관성 잃었다
데일리NK 2011-05-18 13:08:22 원문보기 관리자 628 2011-05-18 18:02:50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금년부터 새로 보급된 『고등학교 한국사』를 둘러싸고서이다. 보수진영은 6종의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건국의 정당성을 적극 평가하고 있지 않은 가운데, 6·25전쟁에서 있었던 학살의 책임을 미군에 돌리고 있거나, 건국과 산업화에 공로가 큰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반면,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며, 나아가 북한체제가 빚어낸 기아, 범죄, 반인권 상황에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해 교과서 집필진과 감독을 맡은 교과부는 집필자의 선정과 검인정의 과정에서 문제는 전혀 없었고, 제기된 비판은 학계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우편향에 치우친 보수진영의 주장일 뿐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 현대사의 서술에 있어서 교과서가 공정하고 객관적이었다고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예컨대 북한이 저지른 청와대 습격,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등 남한에 대한 중대 범죄 행위에 대해 6종의 교과서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데, 사안의 중대성으로 보아 그럴 수는 없다고 하겠다.

북한에서 1994∼1997년에 걸쳐 상당수의 사람들이, 적어도 1~2백만 명이,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은 사건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그와 관련해서는 탈북자들의 생생한 체험을 토대로 아사의 현장을 전하는 가운데 북한체제의 반인도주의적 속성을 엄히 비판할 필요가 있었으나 6종의 교과서는 그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지적에도 교과서의 집필자들은 수긍하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위와 같은 북한의 범죄 행위나 북한체제의 모순 가운데 사실이 아닌 것도 있을 수 있으며,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교과서에까지 굳이 서술하여 남북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민족통일에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생각할 것 같다. 나아가 그들의 그런 생각은 그들이 속한 국사학계의 전반적인 입장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이 문제가 지금까지 몇 차례 불거져 나와도 국사학계가 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음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국사학계만이 아니라 한국의 사회학계와 정치학계를 비롯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 전체가 역시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북한 현대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특정한 사건을 기술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역으로 남한 현대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그 서술방식을 깊숙이 규정하기 마련이다.

그 문제는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 개개인에 관한 존재론적 규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임에도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가 그에 대해 전반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그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한국 현대사회의 내부 모순까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인문·사회학계, 곧 대학사회의 침묵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쓸 데 없는 논란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이른바 좌파 내지 진보진영의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기 힘들어 곤혹스럽다는 중도파의 입장이다.

침묵의 속성상 비판에 동조하는 입장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어느 쪽이든 필자는 한국의 대학사회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정부는 대학의 발전을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해왔다. 대학도 인문학의 위기라든가 통일학의 연구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정부나 사회로부터 많은 투자를 유치해 왔다.

그런데 역사교과서의 북한 현대사 서술을 둘러싸고 대학이 침묵하고 있음을 두고 보면 그 동안 한국의 대학이 이룩한 지적 성취가 무엇인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대학사회가 지난 30년간 이룩한 지적 성취는 한국인을 건전한 통합으로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빈약할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에 따라 유해하기조차 한, 쓰레기 같은 지식만을 양산해 왔던 것이다. 필자가 잘 알지 못하는 자연과학계에 대한 비판은 아님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다시 말해 역사교과서 문제는 집필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들을 교육했거나 그들이 속하고 있는 대학사회의 전반의 병통(病痛)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 복합성과 진정한 어려움이 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 문제는 대학을 일부분으로 포섭하고 있는 한국 지성사회 전반의 모순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박지원 의원은 자신이 원내대표를 지내는 기간 중에 북한인권법의 국회 통과를 저지한 것을 자랑으로 이야기하였다. 박 의원만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장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고, 그 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생각이기도 한 것이다.

그만큼 현대 한국인들의 역사인식은 깊숙이 분열해 있으며, 그러한 분열 구도 위에서 이른바 좌파 진영이 교과서 시장을 장악함에 따라 발생한 것이 작금의 교과서 분쟁이라고 하겠다. 요컨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은 민족통일을 위해서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은 삼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북한체제의 반인권 상황은 어떠한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여 비판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한국의 현실은 이 두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예컨대 3대 3의 호각세를 이룬 가운데 나머지 4가 중간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서 이런 유감스런 현실이 초래되었는가. 두 가지 이유만을 지적한다. 한 가지는 민족이라는 공동체의식이 여전히 한국인들을 강하게 규정하면서 강력한 동원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이란 범주는 지난 20세기에 한국인들이 새롭게 발견한 역사적 정치적 공동체의식이다. 19세기까지 오늘날의 민족에 상당하는 말이나 공동체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왕조를 지탱한 정치철학과 역사의식이 붕괴하고 한국인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자 그 공백을 메우며 생겨난 것이 우리는 다 같이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는 혈연주의적 공동체의식이다. 이러한 민족 범주는 앞으로 점차 쇠퇴해 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이미 다문화사회로 크게 접어들었고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방부가 입대 장병이 행하는 선서 가운데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로 고친 것도 그 같은 역사적 추세의 좋은 예라고 하겠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자유라는 가치나 이념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대한민국의 헌법은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자유·생명·행복권을 천부의 권리로 보유한다는 서유럽 근대에서 성립한 정치철학에 기초해 있다. 그 같은 인간 이해는 우리 조상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19세기말 개화기에 바깥세상에서 수입되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수입된 지 고작 130년밖에 되지 않은 역사의 일천함으로 인해 자유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자유인의 진정한 덕목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고 하겠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몇 차례 개인적 경험의 작용이 있었다. 예컨대 여러 강연회나 토론장에서 인간의 본성은 자유이고 그것의 경제적 기초는 행복권, 곧 재산권에 있다고 주장하면, 대중의 반응은 그런 자유주의는 가진 자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논리에 불과하다고 함이 일반적이었다. 자유주의를 그렇게 천박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자유에 대한 종교적 각성은 거의 없는 편이다.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거쳐 타인의 노예 상태를 신의 황금률에 대한 위반으로 분노하고 정죄하는 종교적 자유주의에 의해 완성되었다.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드넓은 미대륙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한 것은 다수결의 민주주의 원리가 아니라 노예제의 폐지를 위해 전쟁도 불사하였던 종교적 자유주의, 그 공화의 원리였다.  

예컨대 북한 지역에 곳곳에 설치된 수용소의 처참한 인권 실태를 고발한 작가를 초청한 것은 청와대가 아니라 백악관이었다.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킨 것은 한국의 국회가 아니라 미국의 의회였다. 탈북자들의 수용소 체험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깊은 관심을 표하는 것은  일본의 대학생이지 한국의 대학생은 아니었다. 수용소에서 무려 28년을 버텨낸 어느 탈북자는 자신의 체험을 전하는 강연장에서 한국의 대학생들이 질문은 커녕 졸기만 하는 데 더 없는 실망감을 표하였다(주간조선 2151호).

반복되고 있는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분쟁의 배경에는 이 같이 빈약한 한국 정신사의 현주소가 가로 놓여 있다. 그것은 논쟁을 통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권의 교체도 큰 약이 되지 않음을 이명박 정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도 자유 이념을 소중히 여기는 보수진영이 당선시킨 대통령이니 역사교육에 무언가 신선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완전한 착오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소 막연하지만 자신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북한 동포의 자유도 소중하다는 사명감에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북한인권운동을 펼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우리에게도 미국의 링컨 대통령처럼 자유의 이름으로 남·북한의 동포를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영훈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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