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희생양 된 한 남자의 이야기 '풍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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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체가 뭐야? 북조선이야? 남조선이야?" 굳게 입을 다문 남자에게 국정원 요원이 다그치며 묻는다. 북한 간첩단도 그에게 '어느 쪽'이냐며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남(南)도 북(北)도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따윈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한 가지, 누구의 편인지에 집착한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풍산개. 영화는 사상·이념의 갈등으로 반목하는 한반도의 모습과 남북분단의 현재를 조명한다.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 작품이다. 그의 영화는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지만 그 기법은 적잖게 불편하다. 남자와 인옥은 휴전선을 넘으며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를 눈치 챈 국정원 요원들은 둘의 관계를 이용하려 한다. 한편, 망명한 북한 간부를 처단하기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북한 간첩단은 남자와 인옥을 납치하고 남자에게 위험한 제안을 한다. 남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어떤 말을 던져도 침묵으로 일관한 채 눈빛으로만 대답하는 남자. 그가 말을 안 하는 것인지, 말을 못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관객은 답답하기만 하다.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남자가 피우는 풍산개 담배, 정확히 말해 담배에 그려진 풍산개는 그가 누구인지 밝혀주는 하나의 단서 역할을 한다. 남자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묻는 인옥에게 연락처를 적어주는 대신 담뱃갑을 쥐어준다. 그리고 인옥은 담뱃갑에 그려진 풍산개를 보고 '주인을 잃은 모습이 남자와 닮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풍산개는 양강도 풍산지방이 원산지인 개로 영리하고 날래며 적수와 만나면 끝까지 싸우는 이악한 개로 알려져 있다. 장대높이뛰기로 휴전선을 넘고, 국정원 요원과 북한 간첩단을 때려눕히며 위기에서 탈출하는 남자의 모습은 풍산개를 떠오르게 한다. 남자를 보고 '주인을 잃은 개'와 닮았다는 인옥의 대사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주인을 잃었다'는 표현은 '사상을 잃었다'는 말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남과 북 어디에 속하기도 거부한 남자. 하지만 사랑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남자. 국정원과 북한 간첩단은 이런 남자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을 도구처럼 사용한 국정원 요원과 북한 간첩단에게 기막힌 복수를 한다. 기막힌 복수란 다름 아닌 국정원 요원과 북한 간첩단을 폐쇄된 공간에 몰아넣는 것이다. 한 공간에서 만난 두 집단은 예상대로 난투극을 펼친다. 서로에 대한 비난과 불신, 피 튀기는 몸싸움이 반복되는 이 장면은 남북갈등의 현재를 보여주며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는 남자와 인옥의 처절한 사랑, 남북한의 체제 대결, 이산가족 등을 통한 분단의 아픔을 형상화 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산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남북 정보당국의 당연할 수밖에 없는 대결구도를 분단의 비극으로 표현한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제 남북한의 체제 대결을 끝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이 영화는 사실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남과 북의 체제 대결은 끝났다. 남과 북 사이 체제 대결이 사실상 끝난 상태에서 남북 사이를 방황하는 청년의 모습은 어딘지 어색하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분단의 폭력도 작위적인 느낌이다. 북한 체제 자체가 가지는 비극의 무게는 분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영화 속에도 무너져가는 북한 체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과 대사가 있지만 큰 고민을 던져주기보다는 코미디적인 요소로 웃어넘기게 만들 뿐이다. 현실과 영화 간의 이러한 괴리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지영 바이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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