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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보름달 보며 함께할 날 기도할께
데일리NK 2011-09-12 11:38:40 원문보기 관리자 667 2011-09-12 16:03:55

사랑하는 동생 OO아, 잘 지내니? 이렇게 편지로 너에게 안부를 묻는 것은 처음이구나. 우리가 헤어진 지 어느덧 7년이 되었네. 이제는 어여쁜 아가씨로 성장했겠구나. 
 
많이 보고 싶다. 너무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서 편지 쓰는 것도 사실 많이 쑥스럽고 그래. 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네 소식은 엄마를 통해서 전부 전해 듣고 있단다. 요즘 들어 살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들었어.

2년 전 엄마가 한국에서 보내 준 돈을 모두 북한 돈으로 바꾸어 놨는데, 며칠 후 화폐개혁(2009년 11월 30일)이 실시되면서 하루아침에 모두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한동안 너무 가슴이 아팠어. 그 돈이 얼마나 귀한 돈인데…. 그 돈은 엄마가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면서 너를 위해 저축했던 돈이거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날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 덩달아 나도 얼마나 울었던지.
 
며칠 전 너와 엄마가 전화연결 했었잖아. 그때도 물가가 너무 높아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그랬다던데…. 엄마가 너보고 차라리 한국으로 오라고 하니까 네가 막 엄마한테 화냈다는 얘기도 들었어. 지방대의원 선거(7월 24일) 이후 국경경비가 이전보다 더 강화돼 한국행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심지어 온 가족이 산속으로 추방당하는 일도 있었다며 무서워서 도저히 북한을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고 들었다.
 
또 엄마한테 이런 말도 했더구나. 왜 처음부터 언니만 한국에 데려가고 너만 북한에 남겨두었냐고. 데려 갈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데려가지 왜 이제 와서 오라고 하냐고. 근데 그거 아니? 너와 통화 끝나고 엄마가 정말 많이 우셨단다. 내가 들을까봐 이불을 둘러쓰고 '미안하다, OO야 엄마가 미안하다'며 얼마나 서럽게 흐느끼던지…. 지금껏 엄마는 너에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사셨다는 것을 새삼 느꼈었어.
 
언니도 너에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단다. 너는 북한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여기 한국에서 대학교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렇지만 OO아, 엄마와 나를 너무 원망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너도 알잖아. 엄마는 그때 우리 둘 중에서 한 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낯선 땅에 그것도 젊은 여자 혼자서 어떻게 아이를 둘씩이나 데려갈 수 있었겠니? 나를 선택한건 단지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고 철이 들었기 때문이야. 네가 미워서 고향에 두고 온건 절대 아니야.
 
OO아, 이제는 우리를 그만 용서해줘. 그리고 하루 빨리 한국으로 왔으면 좋겠다. 장마당에서 식품장사를 하면서 살겠다며 네가 엄마한테 돈을 최대한 많이 보내달라고 그랬었지? 엄마는 네가 원하는 걸 최대한 노력해서 다 해줄 수 있어. 하지만 OO아, 평생 장마당에서 장사하면서 사는 것보다 한국으로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몇 천배나 낫다고 언니는 확신한다.
  
왜냐고? 무엇보다 여기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야. 이 자유는 북한에서는 누릴 수도, 상상조차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보위원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장사를 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 그리고 여기에는 희망이 있단다.

장마당에서 장사하면 어떻게든 하루하루 먹고 살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이상은 없잖아. 내가 왜 사는지? 하루하루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이런 가장 근본적이 질문조차 할 수 없잖아. 언니도 여기 와서 깨닫게 된 건데,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는 거지. 언니도 지금 나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며 살고 있단다.
 
추석이구나. 그곳에 있을 땐 아빠, 엄마, 너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갔었잖아. 언니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것 같아. 아직도 그때 우리 모습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언제가 되면 우리 다시 모여서 함께 살 수 있을까? 너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 서로 꼭 건강하게 살아있자.
 
보고 싶다. 그리고 사랑한다. 추석날 창밖의 달을 바라보면서 간절히 기도할게. 너도 그 달을 바라보렴. 가을바람 따라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지길 기도하면서….

박은아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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