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어 죽는 것보다 칼 맞고 죽는 것이 영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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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주화와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저희 곁에 황장엽 선생님이 없다는 것을 아직도 실감하기 힘듭니다. 황 선생님은 북한민주화와 통일의 정신이자 사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윤진 예비역 장군은 황 위원장의 강한 의지를 흠모했었다고 밝히고 "지난 10년 좌파 정권으로 인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사셨다. 외국으로 망명하라고 권유도 해봤다. 그러나 황 선생은 손사래를 치시며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다. 다른 곳에 망명하려 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하셨다"라고 말했다.
이어 "몸이 약해져 병원에 입원하라고 권유해 본적도 있다"면서 "그러자 황 선생께서는 병들어 침대에 누워 죽는 것보다 (김정일이 보낸 북한 공작원에게) 칼 맞고 죽는 것이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거부했다"고 회고했다.
권영해 전 국방부 장관은 "우리는 북한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황장엽 선생의 유지를 잇자는 서로의 의지를 다짐하는 자리에 참석했다"면서 "아직도 황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뜻과 영혼, 그리고 철학적 사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황 선생의 뜻을 따라 조국의 거룩한 뜻을 이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황 위원장이 한국 정착 후 유일한 '절친'으로 가깝게 지냈던 주선애 장로회 신학대 명예교수는 2003년 황 위원장이 주 교수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 것으로 추모사를 대신했다.
주 교수는 "2003년 4월 20일은 망명 6년이 되는 날. 답답한 심정에 적어본다.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속삭임 소리···이대로 죽을 권리도 없다. 허둥지둥 가련한 신세지만, 다시 한번 가다듬고 길을 찾아야한다. 끝까지 싸우다가 싸움터에서 이 세상 하직할 것이다"라는 황 위원장의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황 위원장의 유지를 이을 것을 다짐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황 선생과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지만, 선생의 꿈을 알고 있다"면서 "그 꿈은 북한민주화와 7천만겨레의 통일이다. 황 선생님, 북한 민주화와 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길 바란다. 대한민국은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대표의 추모사도 이어졌다. 김영숙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은 "황 선생님은 90세를 훨씬 넘기실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훌쩍 떠나버리셨나"라면서 "선생께서는 호의호식하러 오시지 않았다. 생전의 저서는 우리의 진로를 밝혀줬으며 앞으로도 우리의 등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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