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웠던 황장엽에게 친구가 돼주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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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황장엽 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전 북한 노동당 비서)은 한국 정착 후 외톨이였다. 탈북자나 북한민주화 운동가들은 황 위원장을 정신적 기둥이자 스승으로 받을었지만 격 없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친구'는 없었다. 2002년, 그런 황 위원장에게 주선애 장로회 신학대 명예교수가 찾아갔다. 지난 6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황장엽 위원장 추모 문화행사에서 만난 주 교수는 "단지 비슷한 연배의 동향(同鄕) 사람을 만나러 간 자리였다"면서 황 위원장과의 첫 만남을 술회했다. 당시 평양 정의여고 동창회장도 함께 자리했다. 동향(同鄕)친구 간의 첫만남이었다. "저는 (평양) 양촌에서 많이 놀았어요. 황 선생님 양촌 아세요?"(주선애 교수) "알다마다. 양촌에서 집이 가까웠어요. 나도 거기서 많이 놀았습니다."(황장엽 위원장)
그는 "황 선생님은 곡물을 절대 안 드신다. 견과류·생선·고기류를 주로 드셨다. 옛날에는 생식도 하셨다고 했다. 내가 해드리는 음식 중 제일 좋아하셨던 것이 스테이크와 닭고기였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매주 황 위원장과 만나면서 사소한 부탁까지 모두 들어줬다. 남한 물정을 모르는 황 위원장을 위해 생활 필수품이나 비타민·책 등을 구해줬다. 주 교수가 자신의 집에서 7~8차례 황 위원장의 생일을 챙길 만큼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황 위원장은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10년 6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 교수의 생일을 챙겨줬다고 한다. 주 교수는 "지금 생각해 보면 돌아가실 것을 미리 아셨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황 선생은 탈북자·정치인·정부 관계자들을 주로 만나지,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동등하게 친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동년배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를 신뢰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황 위원장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를 기독교로 이끌려고 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황 위원장은 "주 교수가 식사 기도해야 밥을 먹는다" "주 교수 때문에 아침마다 기도 한다"라는 말까지도 했다고 한다.
주 교수는 "황 선생은 무신론자였지만, 기독교를 좋아했다. 솔직히 그가 하나님을 영접하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관심이 많았다"면서 "가끔 그의 책상 위에는 성경책이 놓여있었다. '주체사상과 기독교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아닐까'란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 위원장이 한국 기독교계에 큰 실망을 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천안함 사태 이후 주 교수가 주선한 고위급 목사와 만남에서 "이민 가야겠다"란 말을 듣고 나서다. 주 교수는 "황 선생이 당시 노발대발하셨다. '기독교의 지도자란 사람이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인가'라면서 흥분하셨다. 그러면서 한상열 목사와 기독교를 같이 연관시키더니 '기독교는 (북한 땅에) 민주주의를 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라면서 낙심하셨다"고 밝혔다. 그는 "실망하신 황 선생을 나와 다른 목사들이 진정시키려 애를 많이 썼다"면서 "'피난가야겠다'는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고 당시의 안타까웠던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수잔 솔티 미국 디펜스포럼 재단 대표도 황 선생에게 전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솔티 대표는 편지 네 장에 글을 빽빽하게 적어 '주체사상보다는 기독교가 북한민주화에 도움이 된다'라면서 그를 설득하기도 했다"면서 "그런데 그 목사 한 마디에 큰 낙심을 한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목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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