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대상 실태조사와 개인정보 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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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탈북자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하 재단)이 탈북자들의 신상정보를 불법으로 유출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재단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9월까지 민간 조사기관에 탈북자 실태조사를 의뢰하면서 4차례에 걸쳐 탈북자 4천100여명의 성명, 휴대전화 번호 등을 불법으로 유출했다는 것이다. 이 탈북자는 '관리 의무 소홀'로 통일부 관계자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통신사의 이 같은 보도를 최근 하루 이틀 새 국내 유력 방송 일간지들이 일제히 인용 보도하면서 탈북자들의 근심이 늘고 있다. 2009년 입국한 박 모씨는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탈북자 신상정보가 유출됐다는 소리를 듣고 (북한에 있는)가족들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면서 "가뜩이나 지금 저쪽(북한)에서 실종자 파악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데, 내가 여기에 온 것이 파악되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하소연했다. 탈북자 신상정보 유출은 예상되는 결과로만 볼 때 다른 계층의 신상정보 유출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갖는다. 북한 당국이 연좌제를 걸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정치보복성 처벌을 추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진정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내용은 과연 '불법유출이 맞느냐'와 '신상정보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느냐'라는 두가지다. 진정을 낸 탈북자는 '불법 유출'이라고 주장했지만, 재단의 한 관계자는 "불법'도 아니고 '유출'도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실태조사 과정상에서 개인신상을 식별할 수 없도록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한 채 조사를 추진했고, 이런 최소 정보에 대해서도 조사기관에 보안서약서를 청구했으며, 조사 후 관련 정보를 전량 회수 및 파기했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4차례 걸쳐 4천100여명의 신상정보를 제공했다는 진정서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국내 정착 탈북자들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이는 것은 법률이 정한 재단의 의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30조 제4항 8호에 규정된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실태조사 및 통계구축사업'을 집행하는 사업이다. 또한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 및 연구 협조 지침(2009.10.11 제정)'이라는 근거도 있다. 통일부와 재단은 지난 7월부터 전국 만 8세 이상 탈북자를 대상으로 가족현황, 경제수준, 자녀교육 실태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입국 1~3년차 탈북자 1천명을 대상으로 남한생활 적응 패널조사도 진행한다. 조사 목적은 탈북자들의 정착지원 정책 수립에 있으며, 조사사업은 대상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통상 이런 조사에서 조사기관은 탈북자의 이름, 휴대폰 번호, 현재 거주 지역 정도를 제공 받는다. 탈북자 실태 조사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이 정도는 면접 조사를 하는데 있어서 정말 최소한의 정보"라고 말했다. 면접조사 승낙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연락처 정도는 있어야 하며, 탈북자들이 하나원 수료 이후 전국 각지에 임대아파트를 배정받는 만큼 거주 도시 정도는 알아야 전체 조사사업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정도 수준의 정보로는 제 아무리 날고 긴다하는 국가안전보위부라 하더라도 북한의 가족들까지 추적 처벌하기 힘들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진정 사건은 여러가지 씁쓸함을 남긴다. 정부와 재단이 벌이는 다양한 실태조사는 국내 탈북자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개발에 주요 근거가 될 수 있다. 특히나 좌우 이념 스펙트럼이 첨예한 대북정책 수립에 있어 탈북자들의 증언은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자료다. 때문에 다른 사람도 아닌 탈북자가 먼저 나서 실태조사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는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탈북자들을 "항상 보살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정부와 재단의 시각도 변해야 한다. 국내 정착 탈북자 규모가 2만을 훌쩍 뛰어 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정책 수혜자'에서 '정책 감시자'로 전환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선의(善義)'를 알아 달라는 긴 설명 뿐 아니라 똑부러지는 행정 집행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흠집내기 식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니 언제나 투명하고 적합한 행정처리에 힘쓰길 바란다. 조종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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