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통제가 전혀 안되는 '북한 교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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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에서부터 ‘돈’하고 소리 지르며 나온 아이들."
북한에서 주민들이 최근 청소년들을 보면서 한탄하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그만큼 지금의 북한 청소년들은 과거 어느 세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돈 앞에선 영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세대의 특성을 규정짓는 사회적 용어는 사실 남쪽이 매우 발달돼 있다. 소비와 유행에 민감하다는 X세대, 인터넷과 함께 자란 N세대, 월드컵 응원의 주역인 W세대 등이 대표적이다.
세대를 규정짓는 용어는 대부분 이전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지닌 젊은 세대의 문화와 특성을 규정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래가 함께 겪은 청년기의 역사적 문화적 경험은 의식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정 세대는 경험과 의식 그리고 행동양식을 공유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북한의 현재 10대 중반~20대 초반 세대를 규정지을 수 있는 가장 적당한 표현은 무엇일까. 아마 대다수 북한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 세대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지금의 북한 십대와 이십대는 북한의 식량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1990년대 중반, 즉 북한식 표현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유아기와 소년기를 보낸 세대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았다.
그 이전 세대는 그나마 어릴 때부터 김정일이 하사한다는 선물도 받고, 교복도 받고, 교과서도 받았다. 교과서에서 배워주는 김정일의 사랑과 배려를 약간이나마 체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세대는 국가에서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다. 학교에서 배워주는 당의 사랑과 배려는 그야말로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대다수 가정은 심지어 배급조차 받지 못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장마당에서 부모들이 뼈 빠지게 돈을 벌어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큰 다음엔 부모를 도와 생존 전선에 나서야 했다. 장마당에서 부모와 함께 돈을 벌어야 했고 산에 올라가 땔나무를 해 와야 했다. 벌이가 좋으면 가족과 함께 잘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벌이가 나쁘면 함께 굶어야 했다.
이런 체험은 고난의 행군 세대를 극도의 황금만능주의 세대로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장경제체제에서 자란 남쪽 아이들보다 더 심하랴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크게 오산한 것이다. 아마 북한 고난의 행군 세대를 관통하는 배금주의는 남쪽보다 몇 배 더 심각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현재 남쪽에서는 십대가 돈이 없어 학교 못가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북쪽에는 당연한 일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기점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십 가지의 가렴주구를 매일같이 걷는 일이 이제는 일상화됐다. 학교에서 갖고 오라는 것을 가져 갈 수가 없어 아예 학교에 안가는 일은 북한에서 흔한 일이다. 공부는 못해도 집이 잘 산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반장이 되는 일도 한국에선 보기 힘들다. 하지만 북한에선 당연한 일이다.
너무나 걷는 것들이 많으니 담임선생들이 돈 있는 집 자식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반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순으로 학생 간부가 되는 것도 당연지사. 이제는 이런 일이 전국에 너무나 보편화돼 항의하는 사람도 없다.
돈이 없으면 학교에도 못가고,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간부도 못되고, 나아가 대학에도 갈 수 없는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변할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성한 교정에 배금주의가 판을 치면 문제는 그곳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로부터 여러 부정적인 현상들이 파생된다. 우선 교권이 파괴된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수금원 정도로만 여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반항적으로 변한다. 또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게 된다.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고 딴 데 눈을 돌리면 부랑아로 변질되기 쉽다. 지금 북한의 고난의 행군 세대의 특징은 돈 욕심은 어른 못지않으며, 순종적이지 않고 거칠며, 자기중심적이다. 이 세대는 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돈을 벌까 하는 생각에만 골몰해 있다. 과거 세대가 졸업하고 군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누구나 거쳐야 할 코스로 생각했다면 지금 세대는 어떻게 하면 병역을 기피할까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순종적이지 않고 거칠 게 자란 아이들은 군에 나가서도 말썽이다. 교사의 말도 듣지 않던 아이들이 상관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시스템, 즉 생활총화와 같은 조직생활에 빠지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고난의 행군 세대의 특징은 북한 체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노동당의 통제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반항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세대가 자라나 점차 기성세대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17살에 군에 간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올해 군에 입대하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유아기를 보낸 아이들까지 감안하면 이미 북한군 대다수는 고난의 행군 세대인 것이다.
고난의 행군 세대는 한창 자랄 나이에 먹지 못해 평균키가 매우 작다. 육체적으로는 허약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반항적인 세대. 과연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은 이런 세대에 자신의 운명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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