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데일리NK 선정 북한 10대 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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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일 사망 북한 김정일이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급병으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TV가 19일 보도했다. 이로서 37년간 절대권력을 누려온 김정일은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했다. 김정일 공식 나이 69세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사인(死因)을 누적된 정신 육체적 과로로 발생한 심장성 쇼크라고 밝혔다. 북한 매체는 "병리해부 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었다"며 타살 등 다른 사인 가능성을 차단했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지정됐고, 1980년대 초반부터는 김일성과 공동통치에 나섰으며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유일적 지배를 완성했다. 그는 1991년 최고사령관, 1993년 국방위원장, 1997년 북한 노동당 총비서직에 올랐다. 김정일은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해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등 압축적인 후계수업을 진행해왔다. 2. 김정은 시대 공식 개막 김정은은 2009년 10월 노동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추대됐다. 그는 당대표자회를 통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에 임명됐다. 그의 군사계급은 인민군 대장이다. 북한은 12월 19일 김정일 사망 발표와 함께 장의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김정은을 첫 번째로 호명해 그가 김정일의 뒤를 이을 유일 후계자임을 확인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에게 최고지도자 명칭인 '위대한 영도자' '경애하는 지도자'를 사용했다. 김정일 장례기간 마지막 날인 29일 중앙추도대회에서 김기남 선전비서는 "또 한 분의 백두의 천출명장 김정은 동지가 서있다"면서 "김정일 위원장은 '혁명을 완수하려면 김정은 동지에 충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유일영도체계 확립을 거듭 강조했다. 추도대회는 김정일 시대의 공식 출범을 알리는 선포대회 의미를 담았다. 3. 유연성 강조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 취임 대통령의 최측근인 류우익 전(前) 주중대사가 9월 19일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다. 전임 현인택 장관은 청와대 통일특보로 자리를 옮겼다. 류 장관은 취임 전후를 기해 원칙을 지키면서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사에서 "북한과 대화 채널을 열어가겠다"고 밝힌 후 대북 의료지원 및 민간단체의 방북을 허용해 천안함 사태 이후 발표된 5.24조치에서 유연성을 강화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그들이 말하는 유연성이란 북남관계의 개선, 경협사업에 마치 관심이나 있는 것처럼 민심을 오도하고 달아오른 여론을 식히기 위한 기만극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류 장관은 김정일 사후 정부가 민간차원의 조문을 허용하도록 하는 데 앞장서 김정은 시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전달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4. 미-북 고위급대화 비핵화 조치 논의 미국과 북한은 올해 7월 뉴욕에서 고위급 회담을 시작해 10월 제네바에서 2차회담을 진행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북측 대표단과 미국은 2차회담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었으나 3차회담을 앞두고 가진 접촉에서 비핵화 조치와 영양지원에 합의해 3차 회담의 진전을 예고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사망으로 3차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시그널(신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측 임성남 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이 대화에 본격 나설 경우 미국은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북 3차고위급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사항이 나올 경우 6자회담 논의도 본격화 될 수 있다. 5. 장성택 2인자 시대 열려 북한 최고권력자의 권력 운용은 항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장성택은 12월 25일 김정은이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할 때 뒤에서 대장 계급장을 단 군복 차림으로 조문단 자리를 지켰다. 장성택이 대장 계급을 단 사실은 공개된 적이 없다. 그리고 28일 영결식에는 김정일 운구차를 김정은 뒤에서 직접 호위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일 사후 통치 경험이 부족한 후계자 김정은을 가장 곁에서 보좌할 인물은 장성택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해왔다. 장례위원 순번 19번째이고 공식직책이 당 행정부장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지만 그가 김정은 시대 실질적인 2인자라는 사실이 이번 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향후 김정은 권력의 안정은 장성택과의 협조와 견제가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에 따라 달렸다는 평가다. 6. 김정일 중국과 러시아 방문 김정일은 올해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후진타오 주석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김정일은 25일 후진타오와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 노력과 6자회담 재개에 의견 일치를 봤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밝혔다. 당시 김정일은 3대세습 체계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고, 중국은 김정일 사망 후에 3대 영도체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정일은 중국 방문에 이어 8월에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북러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을 통과하는 러시아 가스관 사업 등이 논의됐다. 김정일은 러시아 방문과정에서 보좌관에게 몸을 의지하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등 건강 이상 증세를 보였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흡연하는 모습까지 노출해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7.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북한 물가 12월 들어 북한 전역에서 쌀값(1kg)이 5000원선을 넘어섰다. 11월 말 4000원을 넘어선 지 불과 보름 만에 1000원이 급등했다. 2009년 화폐개혁 직후 북한 당국은 쌀 가격을 15원으로 조정했지만 한 달 만에 40원으로 올랐고 이후 2010년 8월에는 2,000원대를 돌파했다. 쌀값 상승은 북한의 식량난을 반영하지만 단기 상승의 주요 원인은 바로 환율상승이다. 북한 화폐가치가 갈수록 낮아지면서 중국 달러와 위안화 가치가 치솟고 있다. 북한 시장에서 원위안화 환율은 1위안화 당 800원에서 900원 사이를 형성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쌀값과 환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북한 내부 주민들은 말했다. 8. 북한 후계체제 준비 위한 간부 숙청 북한은 올해 초 국가안전보위부(국정원 격) 류경 부부장을 숙청했고, 주상성 인민보안부장(경찰청장 격)은 올해 3월 해임했다. 박남기 당 재정계획부장이 화폐개혁 책임으로 처형됐고, 그 뒤를 이은 홍석형 부장도 올해 6월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이 외에도 중앙당 실무 과장급들이 40대 초반으로 물갈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방에서는 평안북도에서 조직부장을 비롯해 도당 핵심간부 30여 명이 숙청됐다. 평안북도 선천군에서는 비리 혐의로 선천군 간부 5명을 총살했다. 당 중앙부터 지방까지 간부들이 잇단 숙청된 것은 김정은 시대 새로운 권력지형을 구축하기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9. 북한 휴대폰 통화자 100만 명 시대 북한 내 휴대전화 사업자인 ‘오라스콤 텔레콤’은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8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오라스콤 텔레콤이 11월 14일 내놓은 '2011년 3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80만9천명이다. 지난 6월 말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66만여 명이었고, 이후 석 달 사이에 13만4천여 명이 늘어났다. 오라스콤은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말에는 90만 명을 넘어 1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 휴대폰 사용자 확대가 북한 체제 변화에 미칠 영향에 대해 외부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10. 폭풍군단 검열 등 주민통제 지속 북한은 국경지대에 폭풍군단이라는 검열조를 대규모로 파견해 2개월 동안 휴대폰 통화, 밀수, 마약, 한국 드라마CD 등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였다. 폭풍군단 검열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나지 않아 혜산에서만 50세대가 추방되는 등 처벌 강도도 매우 높았다. 폭풍군단 검열 이후에는 북한 내 한류현상만 단속하는 8.28상무가 조직돼 전국적인 검열을 진행했다. 김정은은 최근 김정일 사후 국경지역에 내린 지침을 통해 '탈북자 발생시 체포가 어려우면 사살하고 3대를 멸족하라'는 폭압적인 지시를 내렸다. 또한 국경지역에 대한 출장이나 가족 애경사 참석도 금지됐다. 각 지방 도시에는 골목마다 무장한 보안원과 인민군, 기동대와 정치대학 학생들이 투입돼 행인 단속과 주민 감시를 진행했다. 이러한 조치는 김정은식 폭압정치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데일리NK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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