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꽃제비들(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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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다 시피 북한은 어려서 부터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 받으면서 또 딱딱하게 짜여진 조직생활을 하면서 살아 옵니다. 그래서 북한 학생들은 남한 학생들보다 많이 경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이 저한테 북한에서 제일 기뻣던 일이 언제인가고 물어 봅니다. 글쎄... 지금 생각해보니 과연 내가 제일 행복했던순간이 있었던지 의심이 갑니다. 그래서 한참을 내가 좋았던 순간들을 종합해보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딱딱한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또는 온가족이 함께 모여서 아무런 제한 없이 얘기도 주고 받고 함께 웃을수 있는순간이 제일 행복했던것 같습니다. 특히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날(북한에서는 노는날에도 농촌지원, 태권도 훈련, 등 여러가지 조직생활을하기 때문에 노는날에도 놀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 날에 집에서 쌀도 좀 퍼가지고 빵도 바꾸고 또 어머니한테 돈을 좀 타가지고 술도 사고 담배고 기타도 가지고 (물론 어른들, 선생들 등 여러 사람들의 눈을 피해)산에 올라가서 놀던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때 산에 올라가면 모두들 어디서 배워 가지고 오는지 칠보산 노래(남한노래?, 연변노래?)를 부르고 또 그때는 누가 더 칠보산 노래를 많이 아는 가가 유행일 정도였습니다. 그때만큼은 지긋지긋한 조직생활을 떠나 또 지긋지긋한 사상교육을 떠나 정말 행복한 순간이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북한사람들은 오히려 조직생활을 하는 것이 몸에 배서 자유로워 지면 더 어색해 할것 같다고 하셨는데 저의 행복한 순간들 아니 저의 친구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종합해 보면 북한 친구들도 자유를 좋아 하고 또 그런 통제속에서도 자유를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꽃제비들에 대해서 물어 보셨기에 좀 답변 할려고 합니다. 지금도 제가 북한에 있을때 제가 본(그리고 제가 경험했던)꽃제비들의 생활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오싹저려 오빈다. 주먹만한 밥주머니를 채우려고 하루종일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어 먹고, 공산군(인민군)이 밥먹는 곳에 가서 밥을 구걸하다가 매를 맞고, 빵하나를 훔쳐 먹다 장사꾼에게 매를 맞아 죽는 꽃제비들, 정말 그 광경은 말로 표현 할수 없을정도로 비참하고 가슴이 아픔니다. 꽃제비들은 자신의 생계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어 갑니다. 어떤 꽃제비들은 농촌에가서 강냉이라도 훔쳐 먹고, 또 어떤 꽃제비는 남이 먹는 음식을 덮쳐서 먹는 꽃제비도 있고, 또 어떤 꽃제비는 남이 음식 먹는 장소에가서 한쪼각(한숟가락)만 달라고 구걸을 하고 또 어떤 꽃제비는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어 먹습니다. 대게 나이가 어리고, 특히 여자 아이들은 어디가서 구걸도 못하고 그냥 땅에 덜어진 음식을 주어 먹다가 온갖 전염병에 걸려 죽습니다. (정말 그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옵니다.) 대개 꽃제비들은 집에서 부모님들이 돌아 가시거나, 아니면 부모님들이 생계를 이을수가 없어서 집을 나가 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또 가난으로 오는 가정 파탄때문에 아이들이 집에 있기가 싫어져서 집을 나오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꽃제비들은 대게 낮에는 장마당이나, 식당 같은곳에서 생활하고 밤에는 역전에(역전 대합실)에 들어이렇게 하루 이틀을 생활하며 집에들어 안가다 보니 아이들은 점점 비위생적이고 또 오래된 음식을 주어 먹다 보니 여러가지 전염병에 걸려 죽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자기 집이 있는 곳을 떠나(기차나, 걸어서)밥얼 얻어 먹기 쉬운 장소(큰 역전, 아니면 농촌 이 가까운 역전)로 이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동정을 보내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동냥을 구하며 살아가는 꽃제비들은 굶어죽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패를 무어 농촌에서 식량을 도덕질한다든지, 아니면 소매치기, 등 어려가지 범죄를 합니다. 물론 범죄를 하는데는 큰 위험이 따릅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도덕질을 하다가 매맞아 죽는 꽃제비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 한번 못하고 이 모든 고통을 이겨내면서 객지에서 살아 갑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아이들은 범죄를 저지르면서 죄책감을 느끼질 못함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도덕질도 못하고 빌어도 먹지 못하다가 굶어 죽은 꽃제비를 보면 어디서 도덕질이나 해서 먹구 살지....라는 식으로 동정을 보냄니다. 이정도로 범죄에 대해 사람들이 무감각 해지고 북한의 전역이 범죄의 소굴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니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이 부터 세계 심판을 받아야 할 범죄자이니 평민이 범죄자인건 당연하겠지만....) 이러한 꽃제비들 속에는 참으로 뛰어난 인재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꽃제비들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동냥을 얻는 꽃제비도 있고, 집적 자신들이 지은 노래도 부르는 꽃제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꽃제비들이 만들어 부르는 노래 가사에는 자신들의 처지를 그린 노래가 있는데 지금 문뜩 생각이 나서 밑에 적어 봅니다. 함박눈 내리는 * *(자기 살고 있는 지방)거리마다에 담배통을 목에 걸고 담배 파는 소년 고생속에 어머니 병전없고 배고파 우는 동생 숨지어 가요, 아- 통일에 문 언제면 열릴까.... 지금 이 노래를 부르는 순진한 북한의 아이들이 너무나도 애처럽게 느껴집니다. 자신들이 굶어 죽는 것을 김정일, 김정일의 녹을 먹고 사는 당간부들의 탓으로 여기지 않고 통일이 되지 않아서 미국놈들이 경제봉쇄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너무나도 순진한 북한의 아이들이 너무나도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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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가장 적응하기 힘겨우셨을 듯. 말 한마디에 주변사람들이 다
쳐다볼테니까. 취직도 어려우셨을테고..
하지만 그곳에는 힘든 가거가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살아잇으면 34살됫는데 어디에서 살고잇는지 보고싶네요
헤어진지 벌써 20년 이생에 만날수잇을련지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