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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라지 농장과 세 청년의 운명 - 이애란
동지회 18 6034 2004-11-18 00:02:02
세계적으로 마약을 추방하기 위한 운동이 날로 활기를 띠고 있다. 유엔은 지난 1989년 12월 "유엔 마약 및 향정신성 물질 불법거래방지협약"을 채택, 마약거래 방지를 위한 국제 협력망 구축을 강조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어떤 추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대담한 마약매매작전을 펼치는 집단이 있다.
1995년의 경우 북한에서 생산한 아편은 무려 40톤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세계각국에서 북한의 외교관들은 마약을 밀매하다가 적발되어 세계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북한의 외교관들이 마약밀매에 가담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당과 국가의 책임이다. 이들은 당과 수령의 안녕과 기쁨, 향락을 위하여 수많은 달러를 벌어들여야만 하는데 현 북한의 시점에서 다른 것은 팔 것이 없고 비법적으로 진행되는 마약밀매 같은 것으로나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외화벌이 차원에서 1970년대 중반부터 벌써 아편밀매를 시작하였으며 1989년부터는 양귀비 재배면적을 늘이고 나남 제약공장을 연간 100톤 규모의 아편정제공장으로 전환시켰다.
당시 김일성은 양귀비를 많이 심어 이것을 정제하여 다른 나라에 팔고 인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교시하였다.
"백도라지" 농사를 잘 지어 "백도라지"만 수출하게 되면 우리 나라는 아주 빠른 시일내에 식량난을 해결하고 우리 인민들은 가까운 년간에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로 될 것이라는 것이 김일성의 교시사상이었다.
하여 기업소별로 그 방침을 전달하는 강연회를 진행하였으며 행정위원회에서는 매 단위에 밭들을 나누어주었다.
이때부터 북한에서는 양귀비농장이 대외에 발설될까봐 "백도라지 농장"이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부르면서 양귀비를 "백도라지"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많은 농장들에서는 농작물 경작지를 줄이고, 농작물 대신 양귀비를 심었다. 그리고 도시에 사는 노동자, 사무원들도 "백도라지"를 심을 때부터 밭에 나가 살면서 진을 내는 작업까지 깨끗이 맡아하였다.
내가 속한 기업소에서도 "바람데기"라는 곳에 양귀비 밭을 받았는데 점심시간에 양귀비 잎을 깨끗이 씻어 쌈을 싸먹으니 밥맛도 좋고 특히는 지사정이 없어서 고생하는 북한주민들이 대장염이나 설사약으로 사용하면 참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양귀비 씨를 닦아서 먹으면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지 몰랐다. 깨 대용으로는 제격이었다.
농촌동원을 나가보니 농장들에서는 모두 양귀비 씨를 모아두었다가 떡고물을 만드는데 닦아서 깨 대신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량적으로 생산한 아편이 판로를 찾지 못하여 여기저기로 류실되고 있었다. 특히 최근 들어 병원에 아스피린도 없어 고생하는 북한주민들은 "만병통치"약인 아편덩어리를 얼마간씩 보관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여성도 남 편의 기갈과 빚 독촉에 견디다 못해 아편덩어리를 삼켰는데 결국은 죽고 말았다.
세상은 어지럽고 살아갈 길이 막막한 사람들은 죽을 때에는 아편을 먹고 슬그머니 죽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필수품으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노인들은 어려운 세상에서 자식들에게서 외면 당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때가 되면 고통 없이 죽으려고 알사탕 크기 만한 아편을 가지고 있다.
아편농사를 타산 없이 많이 지어 시중에 아편이 많이 나돌게 되니 수많은 사람들이 아편 밀매에 걸려 아까운 생명을 잃게 되었다.
1994년 양강도 도 농촌 경리위원회에서 근무하던 세 청년도 아편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한가지 가난이 열두가지 가난을 부른다"고 여러 가지로 경제형편이 나빠지니 영농용 자재도 몹시 귀하였다.
당에서는 "위에서 대주면 더 좋고 안 대주어도 제힘으로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찾아내고 없는 것은 만들어내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모든 단위에서 예비를 총동원하여 맡겨진 과제를 수행할 것을 강박하였다.
비닐하우스를 만들자면 비닐박막이 필요한데 집집마다 비닐 쪼각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걷어 들여 바늘로 기워 붙여서 보충을 했지만 그것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니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여 바꾸어 와야 하는데 아편밖에는 휘두를 것이 없었다.
이런 저런 수소문 끝에 드디어 중국의 국경지역에 사는 사람을 만나 아편을 주면 비닐박막을 해결해준다는 계약을 하였다. 도 농촌경리위원회에서는 제일 젊고 똑똑한 청년 셋을 선발하였다.
그들은 1994년 2월 어느 날 저녁 녘에 한 사람 당 아편을 35킬로그램씩 지고 길을 떠났다. 혜산에서 만포 쪽으로 가느라면 늪평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압록강을 끼고 있었다. 강가에는 개미 한 마리도 얼씬 하지 않았고 눈 속에 묻힌 하얀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중국 쪽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세 청년은 초조해졌다. 하여 그들은 국경경비대와도 사전 연락을 한 일이고 또 국가적 사업이라 자신감을 가지고 강 건너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 그들이 약속한 사람의 집에 갈 때까지도 중국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집에 찾아 들어가니 이게 웬일인가? 그 곳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북방의 추운 날씨에 온 몸이 얼대로 언 상태에서 중국의 독하디 독한 "배주"와 맞다든 세 청년은 자신들이 아편을 지고 왔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술판에 마주앉아 그것을 정신없이 들이켰다. 세 청년이 곯아떨어지자 집주인인 중국사람은 공안당국에 그들을 밀고 하였다. 하여 그들은 맥없이 잡히고 말았다.
중국에서 아편밀매는 금물이다. 중국사람은 처음부터도 무역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아편을 국가에 넘겨주고 포상금을 받아도 아편을 판 값보다 더 나을텐데 그렇게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애꿎은 청년들만 남의 나라에 재물로 바쳐진 셈이었다.
그 청년들은 북한의 노동당이 자랑하는 군대생활을 마친 제대군인들이며 조선노동당원이며 혜산농림대학을 졸업한 양강도의 농업을 떠메고 나갈 당당한 역군들이었다. 그들은 갓 장가를 들어 사랑스러운 아내와 귀여운 아기들을 거느린 한 집안의 가장이며 부모들을 거느려야 할 아들들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편과 술 때문에 제 나라도 아닌 이웃나라에 가서 법범자가 되어 오라를 지게 되었다. 그들을 보낸 조국에서는 돈이 없다보니 세 청년의 생명을 건질 수가 없었다. 당시 중국 정부에서는 한사람 당 몸값으로 달러를 3만 $씩 요구하였으나 자그마한 도에 그런 액수의 외화가 있을 리 없었다.
상부에 제기하였으나 위에서는 자체로 해결하라는 대답과 함께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법적 책임을 지우라는 방침이 떨어졌다. 실제로 오라를 지어야 할 사람은 북한경제를 도탄에 빠트려 그 모양, 그 꼴로 만들고 아편농사를 장려한 김일성과 그 하수인들이다. 하지만 당의 방침을 관철하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억울한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감옥으로 갔으며 "누구도 그런 것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북한의 유명한 오리발 내밀기에 아까운 청년 셋만 목숨을 잃게 되었다.
세 청년은 돌아오기는 고사하고 그 나라 법대로 사형에 처해졌다. 그들이 가지고 갔던 아편은 100킬로그램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는데 그것은 그 나라에 압수 당하고 말았다.
최근까지도 뉴스에는 외국에서 아편밀매에 걸려 소환되는 수많은 북한 외교관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들을 보면 내가 살던 곳에서 일어났던 이 사건이 연상되며 그들에 대한 강한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이 아편밀매를 하는 것은 오로지 김정일의 향락과 우상화를 위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한 것이지만 북한에서는 마약밀매단속에 걸리면 그것을 그들의 치부를 위한 것으로 몰아붙이면서 본국으로 소환해서도 형을 들씌우워 감옥에 처넣고 있다. 그것은 눈치 있게 행동해서 걸리지 말아야 하는데 붙잡혀 세계면전에서 당과 국가를 망신 시켰다는 망신 죄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1997년 부전군이라는 곳에 가보니 그곳에서는 아직도 인민군 한 개 여단이 상주하면서 아편농사에 종사하고 있었다. 양귀비를 재배하였던 땅들은 후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불모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의 원성은 하늘에 사무치고 있었다. 식량을 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아편을 심으라고 하여 농경지를 아편 밭으로 만들었다가 땅이 망가져 조금씩 붙여 먹던 감자농사도 못하여 더욱더 식량난만 가중 시켰다는 것이 그곳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것이 오늘의 북한의 마약재배 실상이다.
북한주민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김일성-김정일 정치를 끝장 내고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고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정치제도를 세우는 것이다. 유리하면 인민이 왕이고 불리하면 인민을 노예와 같이 부리는 정치협잡군 집단을 믿고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이 너무도 억울하고 비참하다.
김정일 정권이 존재하는 한 북한의 마약밀매 구설수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이애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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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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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었어요. 아편재배 2007-12-22 15:01:21
    어디다 쓸려는지는 몰랐지만 함북도 연사 근방에 아편재배농장 큰거 있었어요.. 농촌동원 다녔었거든요.......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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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꼴통고집 ip1 2010-12-16 09:37:42
    생각 없는 꼴통 고집.. 무슨 만화 영화 스토리 보는 것 같다..
    꼴통의 독재는 참으로..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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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사대 ip2 2010-12-16 14:16:27
    아편재배지의 본고지는 함경남도 허천군 60년대부터 액송농장이라고 불리웟다
    90년대 백도라지 강습을 모두 이곳에서 진행하엿고 방식상학도 하엿음

    대표적인 전문 아편농장으로는 장진군 양묘리 늪수리 부전군 차일리 풍산군 황수원리 파발리 등 북부산악지대에 집결해잇엇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엇다
    딱 한가지 장점은 짐승들에게는 약효가 잘통햇다 자살용으로는 최고 북한에서 늙은 부부가 한날 한시에 죽는것은 모두 야편급식

    사람들은 하늘같은 연분이라하고 이불밑을보니 아편이 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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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영 ip3 2011-05-16 03:24:43

    - 정영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5-16 03: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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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 ip4 2017-03-13 05:39:51
    북한의 아편농사에 동원되였던1993년여름....양강도운흥군 **리농장에는 7월부터 8월까지 8월광산연합기업소의 수천명노동자들이 투입되여 두달간 아편진을 받는데 동원되였었다. 그때 당시 학교를 갓졸업한 우리들의 나이는 겨우18세의 어린나이였다. 당시 우리는 메슥거리는 속을 달랠시간도 없이 쫒기듯 아편진을 받기위해 내 키보다도 훨씬 더 큰 아편밭에 들어가야만했다. 머리가 팽돌고 속이 뒤집혀지는 그 지독한 냄새를 맡으며 지글거리는 땡볕더위속에 할당량을 채우기위해 우리는 야윈피부들을 까맣게 태웠다. 20년도 더 지난 오늘 그때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그립다.... 지옥같은 그곳이 지금도 꿈속에 나타나면 온몸은 식운땀으로 이부자리를 흠뻑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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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밤 ip5 2018-05-31 00:06:02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8-11-06 14: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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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베정회원 ip6 2017-08-11 14:49:17
    망명한다면서 아직 안 가고 뭐하냐?
    제발 망명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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