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 김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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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아내가 두 살된 딸을 품에 안고 대한민국 땅을 밟는 순간 온 국민들과 매스컴은 우리 가족에게 초점을 맞췄다. 당시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동북아시아에 위치해 있는 분단국가로서, 미국의 우방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었던 벽안의 러시아 출신 아내는 왜 한국사람들이 우리 가족에게 관심을 갖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순정소설의 여주인공처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또 그것을 위해 살아온 아내는 사랑의 결실을 위해 이 땅을 밟은 우리들의 순수한 열정에 국민들이 그토록 열렬한 관심을 보내주는데 대해 다소 얼떨떨해 했던 것이다. 소련 유학시절 그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감자(러시아는 감자가 주식대용이다)만 있으면 이 세상 어디라도 함께 갈 수 있다"고... 그녀는 사랑만 변치 않는다면 어디든 나를 따라 갈 수 있다는 의미로 말했겠지만 우리들의 사랑을 이룰 자유도 감자도 없는 북한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메어짐을 느꼈다. 우리들의 남한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1964년 6월 평양시 중구역 연화동에서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수십년동안 북한의 발전소를 설계하신 아버지와, 철도방송국에서 편집일을 하시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고등중학교 졸업후 운좋게 김일성종합대학 수학부에 입학했다. 뿐만아니라 해외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생으로 뽑힌후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북한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거듭거듭 다지며 미지의 러시아로 향했다. 그러나 미래의 내 자신의 모습은 계획과 다짐만으로 이룰 수 없었다. 내가 북한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 되겠다는 다짐을 접고 처자식과 함께 한국으로 올 것이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나는 우리의 한국행을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운명에 따라 한국에 온지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나의 9년은 그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많은 좌절을 겪었고 또 그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고향과 북의 부모형제를 잊은 적은 한시도 없었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남보다 갑절로 열심히 일했다. 나는 현재 작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미래를 생각할 때 결코 작은 회사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맞추어 일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우리회사만 가지고 있는 기술들이 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 장래 희망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강력한 컴퓨터기술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얼마전 우리회사의 기술매입과 우리회사에 투자를 원하던 미국회사가 미화 약 60억달러(약7조원가량)에 팔린적이 있다. 그 회사는 직원이 200명도 안되는 규모지만 회사가치는 우리나라의 연간예산을 70조로 볼 때 엄청난 액수라고 할수 있다. 나는 우리가 그런 회사를 못만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뛰고 있다. 우리회사는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급변하는 현실속에 미래의 정보화 사회를 이끌 일원으로서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회사가 되기위해 전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내가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또 무엇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 묻곤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추구한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성공"이 목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성공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있어 "성공"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내가 세속적인 인간으로서 자신만을 위한 물욕의 마음을 비울줄 아는 것이다. 내가 자신만을 위한 욕망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가 다른 이들을 위해 진정한 의미를 가질 때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단지 머리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내 가슴으로 심장으로는 아직 멀고도 먼 길을 가야 한다. 내가 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순수하고 진정한 삶이다. 진정으로 나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성공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내가 바라는 성공을 위해 필요할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예상외로 많이 있다. 얼마전 일생동안 야채를 팔아 모은 전재산을 대학에 기증한 할머니가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할머니가 기증하기로 결심한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다른 TV를 보다가 신장이 필요하다는 자막을 읽고 본적도 없는 사람에게 선뜻 장기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분들이 희생과 봉사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시말해 내가 생각하는 성공도 결국 자신의 삶이 남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사회는 보다 따뜻해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화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서 바자회 등 자선행사가 열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사회의 밝은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이와같은 행사를 주관하거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중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행동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다. 우리에게 희망을 말한다면 우리모두 합심하여 IMF관리체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고 자신의 행복과 나아가 모두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태어나서 자란 이땅은 적어도 북한보다는 훨씬 낫다"고 "당신이 비록 절망을 이야기 하더라도 희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고... 세계는 앞만 보고 달려도 따라잡기 어려울만큼 급속히 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지털 정보의 양은 두달도 못되는 사이에 배로 늘어나고 있다. 내가 북한에서 온 사람임을 알고는 많은 사람들이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보통 사람과 차이를 못느낄 정도로 같다고 말하곤 한다. 당연한 얘기다. 우리 모두가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이 왜 놀라울까? 우리 모두 편견을 버리자. 편견을 버리고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때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통일은 기다린다고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통일을 가장 빨리 가장 적은 고통으로 이루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우리들이 하루빨리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끝으로 언젠가 나도 "성공"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를... 가식이 아니라 심장으로 가슴으로 진정 "성공"을 소원하고 이루어내는 인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1999.6 김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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