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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착생활 1년 - 조성문
동지회 18 5739 2004-11-18 00:24:31
나는 1974년 1월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다. 조부모님,부모님과 함께 3대가 생활했는데 집안살림은 어머니 혼자 벌어 겨우겨우 꾸려가는 형편이었다. 나는 고등중학교와 2년제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지방의 사범대학을 다니며 회령시내 전문학교 교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1999년 3월 강의가 없는 방학기간을 이용해 몰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보고 알게된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중국의 모습은 내게는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많은 생각을 했고 급기야 나는 중국에 그대로 숨어살면서 부모님을 도와드릴 것인지 그냥 북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 공안당국의 탈북자 단속이 심했던 터라 그 곳에 계속 머무르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북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던중 한국행이란 대안이 떠올랐다. 같이 있던 친척들도 적극 돕겠다고 나섰고 나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겉모습만으론 어떤 사회인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지만 풍요롭고 여유로운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한편으론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 때까지 내 머리속에 각인된 이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나쁜 인식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부모님과 그리운 이들의 얼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내 마음은 어지럽기만 했다.

나는 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해 정착지원 노력을 아끼지 않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탈북자 한 사람이 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 자신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나는 한국에 입국할 때 사회에 나와서 남들처럼 잘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자신도 없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월북한 사람들을 외진 곳에 가두어 살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 여기서도 행여 그렇게 하지 않나 불안했다. 그런데 정작 상황은 전혀 뜻밖이었다. 내가 담당선생님에게 우리를영영 가두어 살게 하는 것은 아닌지 묻자 그 분은 이 사회는 민주국가이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며 당신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마음껏 새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고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고 답하셨는데 처음에는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회정착시설도 훌륭했지만 그 교육과정 또한 매우 유익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교육지침대로 담당 선생님들은 마치 아기의 첫 걸음마를 가르치는 부모의 모습이었고 우리 생활을 본보기였다. 또 생활을 직간접적으로 도와주시는 식당 아주머니들이며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은 참으로 한 가정의 부모형제 같은 분들이었다. 이 보잘 것없는 사람에 대한 큰 배려에 대해 고마움을 한 시도 잊지 않고 늘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새 인생을 꽃피워 가리라 다짐해본다

1999년 10월 드디어 나는 사회정착시설에서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입소할 때와는 달리 퇴소할 때 내 인생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교육과정에서 사귀게 된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우리를 돌봐주신 교육 관계자분들과 여러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식을 올릴 수 있었다. 격려해 주신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늘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살고 있다.

지금 나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 사회에 정착하여 살기 위해서는 배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워야만 세상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고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으며 사회에 필요한 쓸모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다고 배움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물론 자기 스스로의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의 선택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정착교육 과정만이라도 잘 이해한다면 사회에 나와서도 남들보다 앞선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 곳에서 배운 것을 되새기며 스스로 모자라는 부분들을 반성하면서 사회의 일부 어지러운 곳에 물들지 말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반드시 이곳에서의 적응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모든 사람에게 꿈과 희망이 있겠지만 나도 장래에 대해서 나름대로 많은 계획을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실행에 옮기고 있다. 우리 부부는 우리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신 많은 분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일심동체가 되어 열심히 노력하여 꼭 행복하고 성공한 가정을 꾸려나갈 것이다.

지금 나의 희망은 정보화시대에 맞게 전자공학분야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여 앞으로 이 분야에서 남북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어렵고 힘든 분야이지만 온 국민들이 우리를 지켜본다는 것을 명심하고 열심히 노력하겠다.

2001.3 조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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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지회 2007-01-17 09: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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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분의 재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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