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기]빛을 찾아 만리7 - 홍은영 |
---|
빛을 찾아 만리 홍은영 그날 저녁에도 언니는 밤이 웬간히 깊어졌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걱정되었어요 “은영아 우리 암만해도 좋은 대학에는 가기가 애초에 틀렸는데 놀자꾸나.” 나와 함께 공부하던 금순이가 책을 접어놓으면서 말했어요. “글쎄 그렇기는 한데 나 공부하지 않고 노는 걸 보면 우리 언니가 몹시 화내.” 전 그 몇 칠 사이 언니가 점점 더 침울해 하던 모습이 떠올라 깊은 생각 없이 말했어요. “힝! 하지만 너희 언니 아직 돌아오자면 멀었겠는데 뭘.” “아니 네가 어떻게 우리 언니 언제 돌아오는지 알아?” 깜짝 놀라 물었어요. “왜 몰라. 아마 너만 말고 온 동네 사람 다 알걸.”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뭘 나만 말고 온 동네 사람 다 안다는 거야?”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어요. “너 정말 너희 언니 매일 저녁 일을 하다가 늦게 돌아오는 줄 아니. 그 돼지 같은 당비서 놈 깔개를 하다 온대.” “뭐라구? 아니 깔개가 뭔데?” 들을수록 알지 못할 말이었어요. “아니 너 깔개도 모르니. 당비서 그 돼지와 같이 잠을 자다온단 말이야.” 금순이 정색을 하고 말했어요. “아니 뭐야. 너 우리 언니를 어떻게 보구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리 언닌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너 당장 잘 못했다고 하지 못하겠어!” 전 정말이지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어요. “아니 은영아, 난 정말 그저 남들 다 말하길래 너도 알고 있는 줄 알고 한 마디 했을 뿐이야. 난 너도 알고 있을 줄 알고 말이야.....” 금순이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어요. 하지만 전 그래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금순이와 싸웠어요. 금순이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생각할수록 분해 혼자 그냥 울었어요. 사실대로 말해서 그때까지도 언니가 당비서의 깔개노릇을 하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하지만 그 말이 몹시 나쁜 말인 것만은 사실이기에 언니가 오면 단단히 따지리라 마음먹었어요. 정말 그날도 언니는 늦게 돌아왔어요. 전 처음으로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언니한테 따졌어요. “언니 나 하나 물어보자.” “아니 너 아직도 자지 않았니.” 언닌 내가 자는 줄 알고 조용히 들어오다가 깜짝 놀라 물었어요. “솔찍히 말해야 돼.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거야?” “아니 얘가. 일하다가 늦게 왔지. 그건 왜 묻는데?” 언니의 당황해하며 물었어요. “아니, 난 다 알아. 언니 일하다가 늦게 오는 게 아니라 비서 그 돼지 같은 놈 깔개를 하다가 왔지?” 저도 너무 격했던 나머지 막 말하였어요. “뭐라구!” 문득 귀밑에 번개 불이 이는 것 같았어요. 언니가 저의 귀쌈을 때렸던 거예요. “왜 때려? 왜 때리는가 말이야. 언니 그게 사실이지?” 저는 억지로 분을 참고 있던 차라 막 대들었어요. “너 당장 입을 다물지 못하겠어.” 언니 얼굴이 종이장 같이 하얘져서 떨고 있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울면서 대들었어요. “나 학교 안 다녀도 좋아. 아니 그 잘난 학교 다닐 생각도 없어. 또 남들처럼 굶어 죽어도 좋단 말이야. 하지만 언니가 남들 말밥에 오르는 건 싫어. 너무 싫단 말이야.” 언니는 금방 다시 때릴 것처럼 손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끝내 때리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온 몸이 돌처럼 굳어져 있더니 그대로 무너져 지고 말았어요. “으흑! 내가 잘 못했다. 내가 잘 못했어. 내가 너를 때리다니. 으흑! 하지만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마.” 그날 밤 언니는 너무 슬프게 오래 동안 울었어요 그러는 언니를 보느라니 금순이 말을 함부로 믿고 제가 공연한 말을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지 않아도 가정을 지켜 나가고 나를 공부시키려고 힘든 언니한테 똑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가슴 아픈 말을 했구나 후회까지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 날은 우리 임산 사업소가 오래간만에 쉬는 날이었는데 전 동무들과 함께 산에 도라지를 캐러 갔댔어요. 학교에서 쉬는 날을 이용해 매 사람이 도라지를 5kg 씩 캐오라고 하였거든요. 그런데 산에서 뜻밖에도 우리가 이곳으로 올 때 자동차를 가지고 왔던 그 석호아저씨를 만나 도라지 5kg을 쉽게 구해 가지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어요.늘 하던 대로 집에 와서 문을 열었는데 잘 열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금 더 힘을 주어 당기었더니 문이 열렸어요. 안으로 걸긴 했던 것 같은데 걸음 장치가 끈이다 보니 그대로 쉽게 열렸던 거예요. 안에서 언니가 물을 끓여 목욕을 하다가 깜짝 놀라 화를 내며 얼른 몸을 가렸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그때 제가 놀란 건 빈집인줄 알았다가 언니가 있어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벗은 언니의 몸을 봤기 때문이었어요. 언니가 급히 가리기는 했지만 저는 이미 언니의 벗은 몸을 다 봤거든요. 정말로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가슴이며 목이며 팔까지도 긁히고 깨물린 듯한 수없이 많은 상처들은 정말 기가 막혔어요.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서고 말았어요. 그로부터 몇 칠 후였어요. 언니가 뜻밖에도 연구실 관리원에서 해임되고 말았어요. 하지만 제가 그 소식을 들은 건 언니가 아니라 금순이한테서였어요. 그날도 금순이가 우리 집에 와서 늦게까지 있었는데 그 애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겠어요. 금순이가 돌아 간 다음 저는 언니를 찾아 연구실에 갔어요. 그런데 연구실에는 이미 불이 꺼져 있고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다가 불이 켜진 당비서 방에 다가갔어요. 저는 정말 너무 얼굴이 뜨거워 그대로 머리를 돌리고 말았어요. 그 돼지 같은 당비서가 팔걸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언니가 가슴까지 다 드러낸 채 그에게 매 달리고 있었어요. 그대로 와락 물을 열고 들어가 언니를 끌고 나오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리었어요. “비...비서동지! 한 번만 봐 주십시오 한 번만......” “안 된다고 하잖아. 이 일은 이미 결정 난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시끄럽게 굴지말고 가기나 해.” 당비서 매몰차게 말했어요. “비서동지 제발 부탁입니다. 그래도 이제까지 제가 비서동지의 요구를 안 들어 드린거야 없잖습니까.” 언니가 다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당비서에게 애원하였어요. “뭐 뭐라구. 흥 거 매번 강간하다시피 하게 한걸 가지고 그래.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났어. 반동놈의 자식을 그래도 생각해서 그 자릴 줬더니. 어서 가기나 해.” 당비서가 차디차게 코웃음을 치고 있었어요. “비...비서동지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정말 잘 해 드리겠어요. 우리 은영이 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만 그대로 있게 해 주세요. 네 비서동지.” “안돼! 그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앉게 결정났어.” 당비서가 언제 알았더냐 싶게 매몰차게 짤라 말했어요. 전 그만 더 들을 수가 없어 그 자리를 뜨고 말았어요. 저 자신이 짖밟힌다 해도 그렇게 가슴아프지는 않았을 거예요. 눈물이 나왔어요. 분해서 나왔는지 슬퍼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이 끝없이 흘러나와 뚝뚝 떨어졌어요. 저는 닦을 념도 안하고 발길이 가는대로 걷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그러지 않아도 찌뿌둥하던 하늘에서 눈꽃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아버지, 아버진 지금 어디에 계셔요. 이런 데도 꼭 사람이 살아야 하는건가요.” 하늘을 우러러 불러 봐도 대답이 없었어요. 이튼 날 석호 아저씨가 달구지를 끌고 우리짐을 실으러 왔어요. 우리가 그 아저씨네 있는 작업반으로 가게 되었다나요.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막막한 중에도 그 아저씨네 작업반에 가게 되었다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어요. 대충 짐을 정리해 싣고 연구실 앞을 지나오는데 우리와 함께 추방나왔던 만수대예술단에 있었다는 첼로 배우 아주머니가 아는체를 했어요. 새로 연구실 관리원으로 배치 받았다나요. 말하자면 언니 자리에 들어앉은 것이지요. 불과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그 아주머니 얼굴을 보니 언제 그렇게 예뻤던 적이 있는가 싶게 곱게 변해 있었어요.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나 반갑다고 하였지만 저는 어쩐지 우리의 몇 달 전을 다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마을을 벗어나자 달구지는 울퉁불통한 돌길을 따라 꿈지럭 꿈지럭 가기 시작했어요. 석호아저씨가 우리가 추방 나와 이 임산 사업소로 올 때 불렀던 그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어요. 가을도 저물어 찬바람 분다 굶주리고 헐벗은 우리 동포야 그 누가 광야에서 구원해 주랴 일어나라 대장부야 목숨을 걸고 감옥도 죽엄도 두렵지 않다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 눈이 더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먼 산은 고사하고 몇 자욱 뒤에서 따라오는 언니 모습조차 겨우 보이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갔어요 거기서는 또 어떤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에요. (다음호에 계속) 탈북자동지회 회보 2003년 6월[탈북자들] 연재수기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