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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기]빛을 찾아 만리8 - 홍은영
동지회 13 9693 2005-10-26 10:55:22
빛을 찾아 만리 홍 은 영(평양시 모란봉 구역 학생)

우리가 그렇게 간 곳은 석호 아저씨네 사는 마을로 정말 산골중의 산골이었어요. 거기에다 비기면 우리가 원래 살던 사업소 마을은 대도시나 같다고 할 거예요. 원래 살던 임산 사업소 마을은 그래도 사방이 산에 둘러 막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마을 있는 곳은 약간 넓직하기라도 했어요. 하지만 새로 간 마을은 아예 골짜기를 따라 집들이 드문드문 한 채씩 있었어요. 제일 여러 집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해야 분장 선전실이 있는 곳이었는데 여섯 채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어요. 석호아저씨가 소재지 마을에서 떠나기 앞서 우리가 가는 곳은 앞 뒷산을 밟고 뒤를 보기 좋을만한 곳이라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정말 그런 곳이였어요. 지형이 그러다 보니 전기도 들어오지 못했어요. 물론 사업소 마을이라고 해야 말로만 전기가 들어 와 있지 실제는 늘 정전이어서 있으나 마나 했지만 새로 간 마을은 아예 전기 줄도 없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솔깡이를 쪼개서 초저녁에 잠깐 불을 켰다가는 인차 끄고 자버리군 하였어요. 참 우리가 그 곳으로 갈 때 산고개를 올라가는데 소가 갑자기 달구지를 끌지않아 퍽이나 애를 먹었는데, 알고 보니 큰 곰이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길가에 나와 웅크리고 있다가, 석호아저씨가 고래고래 고함 지르자 마지못해 어슬렁어슬렁 자리를 피해 숲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아무튼 우리가 간 곳은 산골 중의 산골, 그 곳 사람들은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했어요. 집이 없어 임시로 석호아저씨네 윗방에 들었어요. 방은 크지 않았지만 워낙 이삿짐이라고 해야 이불 두 채 그릇가지들 몇 개 뿐이니 언니와 제가 쓰기에는 별로 불편할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업소 소재지 마을을 떠나기 전부터도 그랬지만 언니가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통 말을 잊어버렸어요. 아니 말만 잊어버린 게 아니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또 잠도 자지 않았어요. 그저 멍청하게 않아 초점없이 먼 하늘만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앉아만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러는 언니가 미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 보다는 ‘저러다가 잘 못 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겁이 덜컥 들었어요. 그래서 우정 언니 곁을 맴돌면서 비록 삶은 감자뿐이기는 하지만 먹을 것도 권해 보고 우스개 소리도 해 보느라고 애썼지만 워낙 제가 주변이 없다보니 잘 되지 않았어요. 언니가 웃기는 고사하고 애처로운 듯 나를 쳐다보다가는 말없이 돌아앉아 버렸어요.
저녁이 되었어요. 석호아저씨가 잘 삶아진 감자를 한 바가지 담아들고 윗방에 올라 왔어요.
“혜영아! 들어봐라. 그리고 은영이도 들어보구.”
“언니 들어봐요. 정말 맛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언니는 또 아무 말도 없이 물러앉았어요.
“그래, 충격이 클 줄은 안다. 하지만 어쩌겠니. 나는 처음부터 그 놈이 그런 놈인 줄은 알았지만 차마 막지는 못하겠더구나.” 석호아저씨가 감자 하나를 벗겨 언니 쪽에 밀어 놓았어요.
“왜 그랬는지 아니? 물론 은영이 조금이라도 더 공부시켜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보다 적어도 거기 있는 기간만이라도 굶어죽지는 않겠기 때문에 그랬다.”
“아니 뭐라구요? 그럼 아저씬 처음부터 당비서 그 놈이 나쁜놈인줄 알았단 말이에요.” 저는 깜짝 놀라 물었어요.
“알았지, 하지만 어떻게 한단 말이냐. 이 며칠 새 우리 작업장에서만 해도 벌써 네 사람이나 굶어죽었다. 그러니 어쩌겠니.” 석호아저씨가 써레기 담배(잎담배 부서진 것)를 꺼내 신문지에 말며 무겁게 한숨을 내 쉬었어요.
“아니 뭐라구요! 사람이 굶어 죽었다구요?” 전 어쩐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때까지 사실 사람이 굶어죽는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렇게 지척에서 실제로 굶어죽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거든요.
“물론 당에서야 굶어 죽었다고 하지 않지. 병들어 앓다가 죽었다고 하지. 하지만 이 앞집에 살던 권 영감은 죽는 순간까지 죽더라도 하얀 이밥 한 그릇만 먹어봤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나인들 어떻게 하겠니. 옆에서 눈을 감겨 주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구나.”
기가 막혔어요. 말이 나가지 않았어요. 사람이 먹지 못해서 굶어죽다니, 더구나 그 위대하다는 아버지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 속에 세상 부럼 없이 살아간다는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먹지 못해 굶어 죽다니, 정말이지 말이 나가지 않았어요.
“그래 지금은 그런 때야. 하지만 이런 세월이 오래야 가겠니. 지금은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든지 목숨을 이어가야 하는 때야. 그러니 혜영아 너도 너무 마음을 쓰지 말아라. 지금은 어떻게 하든지 살아만 있으면 되는 때란 말이다.”
석호아저씨는 굴뚝같이 담배연기를 뿜으려 무겁게 말씀하였어요. 그 다음부터 언니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어요. 비록 감자죽이지만 조금은 입에 대기 시작했고 좀 나아지자 다시 일하러 나가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언니가 하는 일은 벌목공 아저씨들이 베어놓은 나무 잔가지를 치는 일이었어요. 저도 별로 할 일도 없고 하여 따라다녀 보았는데 일은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벌목장이 너무 멀어서 가고 오기가 힘들었어요.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우리 집에 또 뜻하지 않은 일이 찾아왔어요. 그 날은 마침 제 생일이어 언니가 금싸라기 같이 아끼던 비상용 쌀을 조금 꺼내 감자밥을 해서 저녁을 먹고 난 다음이었어요. 갑자기 마당에서 개가 자지러지게 짖어대는 것이었어요. 아니 석호아저씨네 개뿐이 아니라 온 동네 개들이 모두 무슨 변이나 난 것처럼 짖어댔어요. 산짐승이 내려 온 모양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급한 구둣발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이윽고 문이 벌컥 열리며 전지 불 세 개가 쏟아져 들 어 왔어요. 방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썰며 돌아가다가 저희들의 얼굴에 와 멈춰 섰어요.
“너희들이 아직 살아는 있었구나. 아버지가 왔댔지?” 어디선가 듣던 목소리였어요. 하지만 우린 그 목소리보다도 뜻밖에도 아버지가를 찾는데 깜짝 놀랐어요.
“뭐라구요! 우리 아버지요. 우리 아버지 어디 있어요?” 제가 엉겁결에 물었어요. 그 사람은 뜻밖에도 제가 농촌 동원을 나갔다가 잡혀 오던 때 저를 잡으러 왔던 그 키가 작고 뚱뚱한 보위원이었어요.
“아직 여기까지 온 것 같진 않구만. 함께 왔던 보위원이 말했어요.” 그 사람도 역시 저를 체포하러 왔던 사람이었어요.
“아저씨 우리 아버지 어디 있어요? 우리 언니 아파서 제대로 먹지도 못해요. 우리 아버지를 찾아주세요.” 저는 아버지 말에 깜짝 놀라 막 매달렸어요.
“에이 시끄러워, 저리 비키지 못하겠어.” 그 난쟁이 보위원이 와락 저를 밀쳐 버렸어요.
“가자구. 아직 여기까진 오지 못한 게 분명해.” 키 큰 보위원이 돌아서면서 말했어요.
“빌어 먹을 여길 오면 틀림없이 잡을 줄 알았는데. 똑똑히 들어 언제이든 너희 아버지 나타나면 즉시 여기 보위원한테 연락해. 알았지.” 난쟁이 보위원이 투덜거리며 키 큰 보위원을 따라 나갔어요. 사업소 소재지 마을에 있을 때 몇 번 본적이 있는 사업소 담당 보위원이 마지막으로 방안을 자세히 훑어보더니 따라 나갔어요. 저벅 저벅 구둣발 소리가 멀어지더니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어요. 생각할수록 가슴이 뛰었어요. 아버지가 탈출한 게 틀림없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아버지가 어딘가 멀지 않은 곳에 와서 꼭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그 밤은 온 밤 잠들지 못하고 어디서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혹시 아버지가 와서 방문을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군 하였어요. 하지만 날이 새도록 더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또 새날이 밝았어요. 언니와 저는 벌목공 아저씨들을 따라 산에 가고 평범한 날이 시작되었어요. 그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어요. 그날따라 석호아저씨가 사업소에 갔는데 돌아오지 않아 늦게까지 걱정하다가 겨우 잠이들려는 때였어요. 그때 조용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누구예요 아버지예요!” 저는 떨리는 소리로 물었어요.
“아니다 나다 문을 열어라.” 석호아저씨 목소리였어요.
“석호아저씨? 아니 석호아저씨 이 밤중에 웬 일이세요?”
“쉿, 조용해라. 너희들 이 밤중으로 여길 떠나야겠다.” 아저씨 목소리도 분명 긴장으로 떨고 있었어요.
“네! 어디로요?” 저는 깜짝 놀라 물었어요.
“어디로 갈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여기서 당장 떠나야겠다.” 정말 뜻밖이었어요.
“아니 갑자기 여기를 떠나다니요? 언니도 편치 않은데 이 밤중에 어디로 떠난단 말이예요?” 저는 너무나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어요.
“여기 그냥 있다가는 꼼짝 못하고 죽는다. 내 아까 사업소에 갔다가 우연히 그 평양에서 왔다는 보위원과 당비서 말하는 소릴 들었다.” 석호아저씨는 긴장하여 밖의 동정을 살피면서 조용조용 말하였어요.
“그래서요?”
“너희 아버지가 보위원들에게 끌려 어디론가 가다가 차에서 탈출하였다는 거야.”
“아니 뭐라구요? 그래서 지금 우리 아버지 어디 있는데요?” 지난 번 그 평양 보위원들이 왔다 간 후로 대체로 일이 그렇게 되었을 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그 말을 직접 들으니 갑자기 가슴이 덜컥했어요.
“글쎄 지금으로서는 그것까지는 알 수 없구나. 하지만 분명한 건 어쨌든 죽지 않으면 만난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아까 들으니 보위원들이 너희들을 잡아 정치범 수용소로 끌어갈 작정을 하더구나. 그래서 내 이렇게 급히 왔다. 빨리 지금 당장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 석호아저씨가 다급하게 말씀하셨어요.
“아니 아버지를 잡아가다가 놓쳤으면 놓쳤지 그게 저희들한테 무슨 상관이 있다구 저희들까지 잡아가려는 거예요?”
“누군 뭐 상관이 있어서 그러는 거냐. 아무튼 정치범 수용소에만 가면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도 또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하니 빨리 서둘러야겠다 빨리.” 갑작스런 당황스러웠지만 우리는 서둘러 짐을 꾸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워낙 짐도 별로 없었지만 석호아저씨가 먹을 것만 하나라도 더 챙기라고 해서 거의 빈 몸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어요. 그런데 막상 떠나자고 하니 갑자기 언니가 죽어도 떠나지 못하겠다고 하여 한 참이나 애를 먹었어요.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언제인가는 우리를 찾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당장 보위원들이 들이닥친다는데 절대로 그대로 있을 수은 없었어요. 석호아저씨와 저는 언니를 끌다시피하여 집을 나섰어요.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였어요. 우리가 막 낮으막한 산등성이에 올라서는데 마을 산굽이 쪽으로부터 자동차 한 대가 부릉거리며 나왔어요. 그 자동차가 힘들게 기어 나오더니 우리 살던 집 앞에 가 멈춰서는 것이었어요. 차에서 전지 불 몇 개가 뛰어 내렸어요. 집 안팎은 물론 우리가 오르고 있는 산 쪽을 향해 비쳐대면서 뭐라고 말하는 게 보이었어요. 측은한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들이 무슨 큰 죄인이라구 그렇게 잡지 못해 야단인가 말이에요.
눈발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어요. 눈물이 흘러 나왔어요. 우리는 도대체 어디 가서 어떻게 산단 말이에요...

(다음호에 계속)

탈북자동지회 회보 2003년 7월[탈북자들] 연재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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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즈미 ip1 2016-09-19 14:56:22
    참으로 불쌍하고 한심한 사회, 정말 못난이 머저리 사회~~ 쯧쯧.

    김일성이란놈이 완성했다는 *사회주의틀*을 돌리기만 하면 저 모양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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