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토리가 싫습니다 - 김태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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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남한에 와서 알게 된 형님 벌 되시는 친지 한분이 오랜만에 지방에나 한번 다녀오자고 전화가 왔었다. 마침 주말이라 쾌히 합의가 이루어지고 다음날 중낮이 될 쯤에 즐거운 기분과 함께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달렸는데 친지분이 이제 조금 가면 아는 집이 있는데 거기에 들려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잔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응했고 얼마 후 자동차는 큰 도로에서 벗어나 어느 외진 마을의 평범한 주택 마당가에서 멎어섰다. "내리게" 라는 친지분의 말과 함께 나는 "여긴 뭐 하는 집입니까?" 라고 물었다. "응, 이집이 을 아주 잘하는 집이야. 그래서 나는 여기를 지날 때 마다 들려서 점심을 먹고 가군 하네. 자 들어가자구" “도토리묵”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신경이 곤두서고 그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 꿈틀 거렸다. "도토리요? 나는 싫습니다. 그냥 갑시다." 의외의 나의 태도에 놀란 친지 분은 "아니 왜 그러나? 도토리가 건강에도 좋고 ...또 이집 음식은 다른 집과는 달라. 자 빨리 들어가자구." 이 소리와 함께 주인집 마당에서 개가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고 주인아주머니의 반가워하는 인사말 소리가 뒤를 따랐다. 그러하니 내고집이 아무리 센들 어찌하랴 .., 할 수 없이 인사를 대충 나누고 그들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오가는 웃음 섞인 말들과 함께 빠르게도 요리가 들어 왔다. 손님으로 따라 간 나는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한 대접 앞에서 불편한 심기를 보일수도 없고 하여 할 수 없이 썩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여러 가지 요리들을 먹어 보았다. 그런데 모두 참 맛이 있었다. 나를 데리고 간 친지분 보다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아니 처음엔 싫다더니 이게 웬 일인가? " 하는 친지분의 농담도 귓등으로 흘러 보내면서... 또 내 입이 참으로 요사스럽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러나 나는 그날 도토리 음식을 울면서 먹었다. 나는 1950년대 초에 북한의 어느 외진산골에서 평범한 뗏목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아버지가 임산 노동자여서 우리 집은 국가의 배급을 타먹는 집이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혼자 일을 하시니 집에서 아버지만 혼자 700그램 배급을 타시고는, 우리 형제들과 신병으로 일 못하시는 어머니는 모두 하루 300-400그램씩의 배급을 받았다. 그러니 항상 먹을 것이 모자라 우리들은 굶주림에 허덕이었다. 봄철에 몰래 산 밑이나 강뚝을 뚜지고 옥수수나 감자를 조금씩 심어도 어떻게 귀신 같이 아는지 안전원과, 리 와 군의 간부들이 찾아 와서는 < 배급을 자른다.>라고 호통치고,을 없애버린다며 커가는 농작물들을 짓밟아 버리군 했다. 해마다 우리 집은 할 수 없이 봄부터 여름동안은 알곡절반에 풀 절반으로 살았고 가을에는 어머니가 산에 가서 주어오신 도토리로 다음해 봄, 새 풀이 돋아날 때 까지 겨울을 지내군 했다. 가을에 주어온 도토리들을 삶아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는 그것을 물에 며칠 우려낸 다음 강냉이 쌀과 도토리 쌀을 5:5로 섞어서 밥을 해 먹군 했었다. 그러나 그 도토리마저도 많이 열리지 않는데다가, 북한사람들 모두가 주어다 먹는 판이니 그것마저도 흔치가 않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점심은 항상 굶다시피 했었다. 북한의 속담에 “개밥에 도토리 격”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굶주린 개도 제 밥그릇에 섞인 도토리만은 씁쓸해서 먹지 않고 골라낸다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 어찌 짐승도 아닌 사람이 그것을 맛나게 먹을 수가 있었겠는가? 철없는 그 시절에 나는 도토리 밥이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려 매도 많이 맞았고, 어머니를 많이도 울렸다. 유년 시절을 으로 살아온 나는 그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후대에게 만은 꼭 쌀밥을 배불리 먹이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그 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외 부문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나의 결심은 실현되어 갔었다. 그러나 을 요란히도 떠들어 대는 속에서도 수백 수천만의 북한 인민들은 여전히 도토리도 없어서 지금도 굶어죽어 가고 있다. 나는 가을에 떨어진 도토리가 수북이 쌓여 그대로 썩어져가는 외국의 들판을 거닐 때 마다 항상 배가 고팠던 나의 지난날과,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나의 조국 북한을 생각하군 했다. 그 후 나는 대한민국으로 왔고, 일생에 다시는 입에 대고 싶지도 않았던 도토리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해방 후 같은 시각에 출발선을 떠난 남과 북이 어찌하여 아래쪽은 너무 배가 불러 도토리를 건강식품으로, 별식으로 먹을 정도로 되었으며, 위쪽은 도토리묵은 고사하고 생 도토리마저도 없어서 민족이 굶어 죽어가는 나라로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결심했다. 내 살아생전에 고향으로 갈수만 있다면, 이제는 나의 자식들뿐만 아니라 북한 동포들 모두가 도토리를 건강식품으로, 별식으로 먹는 나라를 세우는데 나의 혼 심을 다 바칠 것이라고. 또 생각했다. 탈북자들 거의 모두가 도토리도 없어서 혹심한 굶주림에 가족들을 다 잃고 정든 고향을 눈물로 떠나온 인생들일진대 어이하여 한순간의 괴로움과 고통을 뿌리치지 아니하고 가슴 저린 옛일을 쉽게 잊고 하루하루를 허송세월 할 수 있을 테냐고... 나는 그 집을 나오며 말했다. "주인아주머니 저는 오늘 정말 귀중한 걸 먹었습니다." 2007년 10월 11일 김태산 자료제공 : 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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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아픈기억의 도토리가 좋은 추억의 도토리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힘내시구요 아자~~아자~~!!!!
그런 능력과 소망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에휴.... 북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저두 그렇게 생각했어요 ㅋㅋㅋ
음식을 남기지 맙시다 한국인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