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하여 1년 - 미소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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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원에 있으면서 “지금 탈북자들 이미지가 나쁘다” 또는 “중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살던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하기만 하면 정부에서나 누가 해주기 바라며 취업하지 않고 놀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등등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빈 몸으로 중국에 숨어들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취직부터하고 자신스스로 생활을 개척했던 수년의 생활을 떠올리며 그때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힘든 일은 혼자 다 떠 맡아하며 소처럼 일해 온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이 좋은 세상에서 왜 못살아가랴. 이것이 내 결심 이였고 이렇게 열심히 살면 언제든지 진로가 열리고 비전이 있는 생활을 꾸려갈 수 있으리라 마음을 다졌다. 하지만 내 앞에 가로막은 장애는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편견도 아니었고 내안에 있는 거지 근성도 아니었으며 하나님을 믿어온 집사로서의 사명감 때문은 더욱 아니었다. 한국사회는 너무도 좋은 사회였고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나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나는 누구에게 의지하려고 생각도 안했고 북한사람 누구나 그러하듯이 쓸데없이 자존심은 강해서 누구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나를 동정하는 것이 싫어서 쓸데없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모든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다. 지난날은 이제 나에게 없었다.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는 철리만을 맘에 새기고 자기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을 시작하였다 헌데 나를 잡아당기는 아주 치명적이고 가슴 아픈 이유가 앞에 가로막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수년 동안 쫒기며 뜯기며 노예보다 더한 피난민 수배생활을 해온 후유증이 악마처럼 나의 온몸을 괴롭히고 덮쳐들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이제 지난일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어이없게도 지나간 나날이 나의 앞날에 진한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야 숨어살던 시효기간이 끝났나부다 안심하고 긴 숨을 내쉬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매일 매일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오면서 긴장되고 토할 듯 메슥거리고 조금만 새로운 일에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흥분 하군 하였다. 남들이 보기에 몹시 들떠있는 듯 한 인상을 줄 것 같아 애써 맘을 가라앉히자고 못 먹는 커피도 마셔보고 비타나 주스, 차종류도 이것저것 그때그때 바꾸며 마셔보고 약국에서 진정제를 사먹어도 소용없었다. 늘 기운이 없고 눈앞이 까맣게 보이지 않았고 컴퓨터검색도 하기 힘들었고 밤에는 북한 꿈과 중국에서 경찰이 달려드는 꿈을 꾸고 소스라쳐 놀라서 가위눌려서 가슴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리곤 하였다. 남한에서 살지만 밤에는 북한에서 사는 듯 집요하게 밤잠을 설치게 했다. 출근 했다가는 구실을 대고 병원과 집으로 전전긍긍하면서 참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아직은 30대 중반이라 생각도 할 수 없는 갱년기가 빨리 오는가 의심이되여서 부인과에 진찰을 받아보았지만 이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원에서 함께 지녔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이곳의 물이 맞지 않을까요? 아니면 공기가 나쁠까요? 북한에서나 중국에 있을 때 이렇게 무력하지 않았는데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몽롱 할 때가 많고 기억력이 없고 식당에서 써빙하는데 주문 받은 것도 자꾸 잊어먹어서 일에서 지장이 많아요. 언니는 그런 증상 없나요?” 전화를 받고 보니 그럴법한 일이여서 아는 북한친구들에게 증상을 얘기해보았다. 이미 전에 이곳에 와서 전도사가 된 한 친구는 메슥거리는 것은 스트레스 받으면 그럴 수 있는 거라고 당신도 이곳에 와서 얼마정도 아팠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 같이 있을 때 꽃 같던 그의 얼굴이 주름투성이가 되어 있고 찜질방에 가서보니 유난히 크고 예쁘던 그의 가슴이 많이 늘어졌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늙어버린 그의 모습이 단지 세월과 수고한 탓일까?. 그 나이의 남한태생 여성들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차이 나 보이는 그의 모습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이란 말인가?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에 물이나 공기, 지역의 바뀜 때문이라면 중국이나 외국에서 연수 온 외국인들의 경우는 사람마다 상황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모습이 달랐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탈북인들이 겪는 이 고통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고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는 탈북 후유증 이였다. 나는 1998년 탈북 하여 2003년까지 중국에 숨어살았는데 늘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 내가 그들의 희망이 되여 주고 행복이 되어줄 날을 꿈꾸면서 열심히 두더지처럼 일만했다. 예술가의 집안에서 나서자랐고 북한에서는 나름대로 고등교육을 받은 나는 10년 전이라 아주 젊었었기에 노래방이나 유흥업소의 유혹이 많은 중국 땅에서 자신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곳에 놀러 가보지도 않았고 노예처럼 일만하였다. 위장신분증을 만들어 아슬아슬하게 잡혀갈 위험 때문에 내내 숨어살면서도 어리석게도 그 땅을 조국이라 생각하였고 돈을 많이 벌어서 언제든지 고향에 돌아가리라고 한국 보내주겠다고 길이 있다고 하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3년 친구들이 다 한국에 간다고 하여도 이 무지한 여자는 북한에 있는 가족과 애가 보고 싶어 북한으로 향했다. 브로커의 단단한 약속을 받고 5년 중 거의 일 년 번 돈을 주고 ‘천국의 국경을 넘다’의 여자애처럼 북한으로 향했다. 만약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오는 사람을 조금 조사나 하고 놔주겠지 하고 맘을 다잡고 들어가려다 체포된 나에게 조국은 감옥살이를 선물했다. 그렇게 돌아가고 싶던 ‘조국’, 꿈에서도 잊은 적 없는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상봉의 꿈은 이렇게 짓밟히고 지옥보다 더한 곳이 나를 맞았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지옥도 그곳보다 나으리라... 4달 동안 보위부 조사를 받은 후 집결소에 이송되는 도중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되였고 기적적으로 북한을 탈출 하였지만 연길에서 중국 사람의 신고로 또다시 체포되어 도문수용소에 갇히었다. 좋은 옷에 열두 대문이 열린다고 중국에서 살면서 5년 동안 한 번도 잡힌 적 없었는데 남루한 옷차림에 가죽만 남은 야윈 몸둥아리, 그리고 겁에 질린 눈동자는 아무리 중국말을 유창하하여도 그들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중국 사람이라고 우기다가 경찰에게 뺨을 호되게 얻어맞고 정신 잃고 쓰러졌는데 깨여나 보니 간수소의 병원 이였다. 어떤 사람은 8회나 잡혀갔다고 하더니 나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도문을 통해 또다시 북송 되였는데 이번에는 정말 살 가망이 없었다. 보위부, 집결소, 관리소(교화소), 안전부 등등으로 이관되며 3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너무도 징그럽고 더러운 북한이라는 악마의 세상을 새롭게 알게 되였고 내가 다시 한 번 자유를 얻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 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더는 나 같은 희생양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아직 계속 우리 사랑하는 민족과 형제들이 이 같은 피눈물 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글이 원하는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나의 감옥서신은 따로 적으려한다. 하늘의 도움으로 악마의 소굴에서 벗어나게 된 2006년, 몸은 여위다 못해 가죽이 질질 밀렸고 정상적일 때 50kg 이던 몸은 26kg 밖에 없었고 온몸은 상처투성이고 예쁘던 손과 발은 얼고 데고 썩어문드러졌으니 지금도 흉터투성이여서 부끄러워 손을 내놓지 못한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다시 탈북에 성공하였고 중국에 숨어 살면서 고무풍선처럼 팅팅 부어오른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다. 그리고 일 년 전 우리나라에 입국하였다. “이제는 살았구나. 이제는 누구도 더는 나를 괴롭힐 수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오랜만에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많이도 쏟아 내였다. 힘들게 얻어낸 것 이여서 자유는 너무도 소중했다. 그래서 잘살아보려고 무척이나 열심이다. 이제라도 좋은 사람 만나면 사랑도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희망은 무궁무진한 것이었고 언제나 즐거웠다. 그리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러나 기뻐하기는 일렀다. 이제 다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해 보아도 참 안됐다. 남달리 좋은 취직을 했지만 출근을 하지 못하여 잘리기 직전이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 일어나 앉을 맥도 없다. 게다가 보위부에서 쪼그리고 앉았던 무릎은 이제 더는 걸을 수 없이 시큰 거렸다. 그렇게 바라던 자유를 찾았는데 이 좋은 곳에서 기쁨을 누려 볼 사이도 없이 병마가 찾아왔다고 생각 했을 때 너무도 아쉬웠다. 너무너무 맘이 아파서 숨도 쉴 수 없었고 나 자신이 너무너무 슬프고 가련하고 불쌍해서 서럽게 울었다. 눈물은 맥없이 줄줄줄 나의 얼굴을 적시고 베개를 적시군하였다. 자살한 선배 탈북자들이 떠올랐다. 중국에 두고 온 자식이 그리워서 울다가 자살을 선택한 탈북여성도 떠오르고 이런저런 모습들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제구실 못하여 남에게 얹히거나 앓아눕게 되면 그때는 동정 받고 살고 싶지 않고 신세가 가련하여 나도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현실적으로 닥쳐온 몸의 참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내 몸이 넘 불쌍하였다. 세월을 잘못 만났는지 주인을 잘못만나서 고생하는 내 몸뚱아리... 너무도 혹사당하고 무시당하고 고통당한 것이 내가 아닌 남인 것처럼 내 몸에 미안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었다. 북한의 인권상황이 극도에 달하였고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들이 독재의 사슬에 묶이었는데 앞으로 우리 탈북인들의 역사의 증인이 되여야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죽기는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였다. 이럴 때 탈북자동지회 사이트는 나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어느 날인가 “탈북자가 죽지 말아야 할 이유” 란 글이 눈에 띄었다. “그래, 어떻게 찾은 자유인데 죽지 말고 살아서 빨리 우리 북한사람들도 나 같은 고생을 더는 하지 않고 민주주의 하에서 잘사는 날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그리고 통일된 기쁨도 누려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기위해선 지금의 이 고통의 순간을 희락으로 역전시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내 몸에게 사과하였다. 하늘이 내게 이쁘고 튼튼한 몸을 주셨는데 잘난 척하고 타고난 건강인데 하면서 열심히 번다면서 너무도 혹사시켰던 지난날을 회계하고 지금부터라도 잘 챙기고 아름답게 가꾸리라 맘 다짐 하였다. 그리고 몸에 관련하여 한 가지 한 가지 풀어 나갔다. 밥을 조금도 못 먹으니 거식증이 생겨서 먹을 것 만 보아도 토하고 싶었다. 메슥거리는 현상에 대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스트레스성위염으로 오는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하였다. 온갖 서적과 인터넷을 검색하였지만 뭐 별로 도움이 되질 못했다. 신장이 나빠서 당분과 수분이 머물지 못하고 몸에서 빠져나가고 나쁜 독성이 몸 안에 구석구석 배여 있단다. 한의원에서는 세포가 실타래처럼 둥글둥글 뭉쳐있어서 신경이 차단되고 꼬집어도 제살 같지 않은 거라고 신경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하기야 소금을 씹어도 사탕을 씹어도 차돌을 입에 넣고 굴리는 것처럼 치아에 닿으며 딸그닥거리는 소리밖에는 짠맛도 단맛도 못 느끼면서 살의 감각부터 찾으려하니 한심하긴 하다. 우선 이까짓 아무것도 아니라고 맘을 편하게 먹었다. 먼저 5% 소금물을 끓여서 깨끗이 빈속에 한술씩 떠 마시면서 3일을 보냈다. 누워서 쉬면서 몸이 좀 편해진 다음 사과, 귤, 생강에다 산청을 넣어 색갈이 이쁘도록 성심으로 달여서 따스한 차와 냉차로 아침저녁 번갈아 마셨다. 죽어도 싫어하던 죽을 ‘잣죽, 전복죽, 팟죽’ 으로 매일 바꾸면서 신경 써 쑤어서 다른 사람 환자 간호하듯 위를 놀래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를 위해 이렇게 배려한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참아야하고 힘들게 일해야 하고 남을 먼저 생각해주어야 한다는 거 밖에는 몰랐던 내가 나를 위해서 투자하게 시작하였다. 매일같이 한강변을 한걸음한걸음 걸어 나가 운동기구에 매달리기 시작한 이후로 시간이 갈수록 좋아져갔다. 조금 나아지자 한의원에 가서 보약을 지어먹었다. 먹는 것은 양이 작은 대신 제일 고급하고 내 몸에 좋다는 것으로 골라 먹었고 산해진미를 골고루 섭취하였고 일단 일을 접고 우리나라의 공기 좋고 즐거울 수 있다는 곳은 어디든 떠났다. 꽁꽁 닫혀있던 맘의 문을 열고 남한친구들과 농담도 하였고 힘들어서 물먹은 솜처럼 나른한 내 몸에게 타협하여 양해를 구하며 스스로에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곳을 구경시키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워낙 노래를 잘 불렀지만 .이제는 잊은 지 오랬던 노래실력을 떠올리고 노래방도 찾아서 가끔 노래도 불러보았다. 웃기는 영화를 골라서 영화관에 가고 실컷 웃는 시간이나마 아픔을 잊는 노력을 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될수록 아픈 티를 내지 않았고 늘 괜찮은 양 미소를 띠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절대로 무리하지 않았다. 나는 좀 더 솔직해 지려고 노력했고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자기에게 만큼은 충실하려고 힘들면 들어가 쉬겠다고 당당히 말할 줄도 알게 되었다.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내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호전 되여 갔다. 꼭 일 년이 걸렸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난 아주 딴사람이 되여 버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놀란다. “너무 보기 좋아요” 그들이 들려주는 이 한마디 인사는 나를 정말 기쁘게 해준다. 쉬였던 일도 다시 시작했다. 내가 “입국해서 일 년” 이 글을 쓰는 것은 심심해서나 잘난 척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하나는 서두에 쓴 것처럼 우리 탈북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을 좀 넓혀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중국동포나 외국인들 한국에 오면 빚지고 와서 셋방살이 하면서 하루도 놀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고 빚 다 갚고 중국 돌아가면 큰집 쓰고 잘사는데 너희 탈북자들 정부에서 임대주택 좋은 거주고 정착금 주어서 잘살게 해주면 중국에선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한국 와서 놀고 자빠져있는 탈북자 많다.” 는 얘기 너무 신물 나게 들었다. 그들은 외국인이다. 그들도 여기서 몸이 망가지게 일하다가 자기들 나라 돌아가면 여기서 좋은 시절 다보내고 우리처럼은 아니더라도 많이들 앓는다고 가게 하나씩 해놓고 쉰다고 한다. 그들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우린 조국에 돌아왔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생명을 위협당하며 학대와 천대를 받으며 숨어서 하루도 마음 놓지 못하고 살아온 누적된 피로가 중국이나 외국사람들의 그것과는 비교 할 수도 없는 골병으로 우리 몸에 깃들었다. 간단히 생각하면 어떤 긴장하거나 힘든 일 하든지 충격 받으면 몸살을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데 수년을 그렇게 살았으니 모두들 목숨이 붙어있는 것만도 다행일정도로 병자가 대다수이다. 또 하나 이런 얘기도 들었다. “60년 전 전쟁으로 인하여 갈라진 북한 실향민들은 남에서 열심히 살아서 다 부자가 되였는데 지금 오는 탈북자들 너무 인상이 안 좋다.” 등... 우리는 그들의 후예들이다. 남한사람들과 똑같은 이 땅에서 나서 자랐고 우리의 몸에는 똑같은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민족성은 같다고 본다. 탈북인들을 참고 좋은 눈으로 지켜보며 기다려 주신다면 시간이 약이 되어서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줄 것이고 자기들의 진로를 서서히 찾아가게 될 것이고 벌써 잘 정착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신변노출이 문제가 되여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분도 많다고 본다. 그리고 나처럼 아프신 분들과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외롭고 아프고 힘들 때 당황하지 말고 낙심 말고 마음을 비우고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진단하여 해결책을 찾고 당신에게 시간을 주고 배려하고 당신을 사랑한다면 행복은 곧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돈!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건강하면 돈은 얼마든지 벌수 있고 평생 버는 것인데 서두르지 말고 마음의 부자가 먼저 되여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여러분! 당신도 열심히 사랑하고 우리나라도 열심히 사랑하여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보란 듯이 신나게 한번 살아보자!!! 2008년 3월 12일 미소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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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하신 그 성품 우리 새터민들 모두가 본받아야 할 본보기라 생각됩니다.
저역시 지금 새터민들 위해 일한다고는 하지만 마음에 상처받을때가 많아요.
그들을 위해 일한다고,하나님이 제게주신 사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열심히 할수록 힘들고 상처만 남을뿐이에요.
우리 새터민들 님처럼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며 하나님 허락해주신 생명 소중히 여길줄 알때 남한이 아니라 이세상 어디든지 두려울것이 없다고 봅니다.
참 훌륭하십니다.
몸이 좀 나아지시고 여유가 생기시면 연락주세요.
저도 거의 비슷한 탈북과정을 걸친 놈이라서 제가 직접 뽑는 커피향에 추억을 실어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바램입니다.
암 쪼록 몸건강 잘 챙기시고 연락주세요.
01082111473으로요
(들여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상처)는 오직 겪어본 우리들만이 그심정을 알수있습니다... 락심않고 병마와 싸워 이기신 미소천사님을 감탄합니다.
항상 천사같은 밝은 그미소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연한 기회에 탈북하신 분들의 모임인 이 동지회에 들어와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답니다...
이제는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셔서 자유대한의 자유로움을 맘껏 느끼셧으면 합니다..
미소천사님의 앞날에 행복과 건강 모두 기원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님처럼 긍정적인 사고와 인내력을 가지신분이면 반드시 종은일들이 많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요 인젠 마음을 활짝 여시고 당당하게 살아가는겁니다
우리는 죽고 싶어도 죽을수 없는 몸들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되고 우리민족이 하나되는 날 고향에 계시는 우리들의 부모 형제 자식들을 만날 그날 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소 천사님 부디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셔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더 좋은 내일을 위해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천대받던 이몸이 다시태여나 이렇게 자유로운 심정을 말할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일인가요
글을 올려주신 홈피담당자분들과 사랑하는 가족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르 드립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남북향친구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우리모두 서로에게 위로가 되여서 사랑하면서 진정 하나가 되는 그날까지 잘살아봅시다
힘내세요 !!!!!
하나님을 믿고 안믿고 하는것은 당신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이글에서 하고 싶어하는 말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잖아요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댓글이나 맘대로 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당신도 탈북자인데 그들의 맘을 그렇게 모르신다면 ...자신을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사회에서 법을 위반할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였는데 여기서 법이야기는 왜 나오고 목사는 또 왜 나오나요
당시닝나 현실을 잘 살펴보고 조금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각자가 자기 할일 을 하면 되겠네요
어떤 상처를 받은적이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탈북자라고 하였으니 저도 동포들과 노숙인들, 중독인들을 감당하고이쓴 목사로서 한편 미안하고 한편 가슴답답함을 금할수가없네요. 하나님의 종의 사명으로 일을 하고있지만 때론 실수와 상처가되는 일도있지않겠습니까 부모도 자식을 맘데로 키욱어려운데 부모형제들도 포기했거나 찾지않는 사람들을 돌본다는것은 부보보다 더어렵다는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예수님이된것이아니라 되어보려고 그 발자취를 따라가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주십시요. 사랑이 메마른 사회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두가 나를 생각해주기만을 보다 작은사랑에도 감동하며 열심히살아 갈수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요 그래서 우리는 아침5:30분 기도회만은 꼭가진답니다.기도하십시요
물론 사람이 많으니 별 사람이 있겠지만, 다수의 목사와 성도들이 탈북자를
사랑하고,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말이좀심하시네요
당신이 목사님에게세 어떤 취급을 밭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가아닐까요?
저는 신자가아니라서 목사님들에 대해서는 잘모르지만 누구에게서
어떤취급을 밭는가는자기한테 달렸다고생각해요
본글에대한 님에평가는 님자신에 대한모멸감에평가라고 생각되네요
미소천사님이 아니라 님이 정신을차리고 살아야하겟네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이사회에 잘적응 나가기를 바래요
저역시 혜숙님과 공감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명백하게 말씀드리고 싶은건
우린 어디까지나 확실한 이방인이 맞습니다.
이걸 부인하지 마세요.
삶이 힘들수록 이 현실을 직시하시고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왜냐면 우린 이젠 역사적인 자료에 의해서만 한민족이니 한핏줄이니 하고 떠들고 있지 우리 서로가 50년넘어 살아온 문화가 하늘땅 차이가 나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오기싫은걸 억지로 오라고 끌고온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 현실을 우리가 직시하고 받아들일때 우리를 이방인이라고 보는 상대방도 언젠가는 한민족의 얼을 들여다볼수있는 기회가 생길거구요,
그러다보면 우리도 그들의 문화를 배워가는동안 어느새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들과의 간격을 좁혀가느라면 피차가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해소할것이며 한민족의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보게 될거라 봅니다.
그러니 그 어떤 개인의 말에 넘 상처입지마시고 또 어느한 개인땜에 전체를 매도하느라 마시고 힘들수록 그들을 용서해주세요.
명백한건 우리 한사람한사람을 빚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늘에 계신분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너무도 사랑하고 계신다는걸 항상 명심하시면 아무리 어려운일도 이길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자체이십니다.
미소천사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활기차고 유쾌하게 지내시면 주변 모든 사람이 다 내편됩니다.
그러면 돈과 성공은 자연히 붙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희망 갖고 생활하셔서
통일 되는 날 고향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미소천사님이 말씀하고 저 하시는 내용을 잘 이해하셨음 합니다
탈북자들이 자유국가인줄 모르고 여기온것이 아니며 탈북자들이 손을 내밀고 싶지 않은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새터민 한명이 건강진단서 을 받지못하여 우리일터에서 짤려서 집으로 갔습니다
곁의사람들이 나빠서도 아니며 아픈추억을 못잊어서도 아닐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장애에가까운 아픔을 호소 하고 있는 새터민들의 아픔을... 그리고 그것에서 탈출하기 위한 작가의 모대김을 아주실감있게 표현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과 현실을 긍적적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미소 천사님에게 충고 하기전에 우리 남한사람들의 새터민들을 바라보는시선과 그들의 노력을 참고 기다려주는 여유를 더 가지는 것이 필요할것입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팟을까 생각하게 되니 마음이 찡합니다
앞으로는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신감있고 힘차게 미래를 펼쳐보셨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주인은 대통령 수령님 그리고 중국인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것 즉 미소천사님이 주인이니깐요
오늘도파이팅합시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좀 더 이해하고자 가입하게되었고 한줄 댓글까지 남기게되었습니다.
이 탈북자동지회라는 싸이트 참 사람 울리게하는 싸이트네요 ㅠㅠ
제가 알고 있고 느껴왔던 중국조선족하고 우리 탈북자님들은
정말 확연하게 비교가 되네요 ^^
미소천사님~ !!
부디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기원할게요^^
제 미숙한글이 님들에게 공감되고 사랑하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동시대인으로서 어깨에 내리는 눈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사이트에서 나마 만나서 정다운 예기를 나눌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우리 서로 사랑하면서 이뻐하면서 나름대로 아름 다운 세계 만들고 가꾸어...가요 ...사랑해요 다들 힘내시고 하시는 사업에서도 건강에서도 최고가 되기를 기원할게요 ...^^^
저의 댓글에 다른 대목이 님의 맘에 안드셨다면 제가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부인한다면 우리 개개인은 지금 이자리 자체를 논할수가 없다는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님께 억지로 강요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저역시 중국7년의 생활에 하나님을 입에담지 못할 욕설로 부인하며 지내던 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사는 순간순간,내일의 희망을 그분과 띄어놓고서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그 어떤 신비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러니 그누가 누구를 넣든지 빼든지 그건 본인의 자유이고 또 진심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닐가요?
그 진심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왜 그런 사지판을 넘으며 자유를 갈망했을가요?
자유와 진심...
한번 깊이 생각해보세요.
그 자유와 진심이 어디서 부터 흘러나오는지를...
성경책만 보지마시고 타종교의 특성이나 이런부분도 공부해보시고 기독교의 좋은과거 나쁜과거 현재 우리가 할일등도 생각해보셨으면 하는 제 바램입니다. 기도하고 포교하고 이런것보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아무래도 사랑과 선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탈북자동지회에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가 같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명심하라' 이런식의 지극히 주관적인 말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듯 합니다. 벌써 몇분이 눈살을 찌부리신듯 하네요. 왜 자신은 과거에 하나님을 욕했는지 생각해보세요. 대부분 밑도끝도 없는 무조건 믿으라는 말때문듯 합니다. 말이 좀 길었네요. 말보다는 몸으로 실천합시다.
사랑님이란분은 도대체 중세 십자군 전쟁, 그리고 카토릭의 역사 한단면만 보시지말고 우주적인 넙은 역ㅎ사과 그리고 더깊은하나님의 사랑 나무보다 숲을 보실수있는 눈을아지시면좋겠네요.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하시는데 현제 얼마나 이웃을위해 어떤일을 구체적으로 사랑실천을 하고계신지요?. 참고로 새터민. 한마음. 탈북민을 섬기는 대다수의 앞서있는 분들이 어떤 마은의 동기에서 일하고있는지 살펴보시기바랍니다.
사람은 사는 인생이 달라요, 그래 힘들어살죠, 정해진길도 못가고 잇어요, 쥐보고 고양이 되라면 되나요.아마 수십년세월이 걸려야 할것같아요,
머슴이 지주되면 머슴생활을 생각할가요?,또 그생활이 그리울가요?,,,
우리 민족 정말 안타까워요...ㅠㅠㅠ
전 기독교나 천주교나 이슬람이나를 막론하고 어느 특정 교회를 주장하자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그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랑을 빼놓으면 하나님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가 성립될수가 없죠.
글구 전 포교하려고 그 누구를 설득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 또 그런 부분도 댓글에 올린게 아닌데요.
암튼 조언 감사합니다.
댓글이 넘많이 올려있네요.
환영하고 동감입니다.
저역시 님과 비슷한 경위를 겪었는데 한국나이로는 선배기도 하지요
허나 님과 친숙해지고픈 강렬한 느낌 금할 수 없어지는데요.
허락하신다면 제 멜주소(korea7333@naver.com)인데 연락가지고
많이 친해져요~~~~
그럼 기다릴께요.~~~~~~~~
이글을 안산지역 새터민 모임 으로 퍼 갑니다.
http://kkoo.ohpy.com/main
많은 아픔과 고생을 하셨군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참 좋습니다.
건강하시고 주안에서 평안하세요!
오늘 또 하나 알았네요~ !
탈북휴유증이라...
미소천사님의 긍정적 마인드.. 정말 본받고 싶네요 ^^~
여러분의~ 몸도, 마음도 모두 부자되시길 기원하며..
사실 정도가 약해서 그렇지 한국남성들 많은 사람들이 몸이 허할때 군대다시 가는꿈꾸는것도 이것의 종류입니다. 인터넷에서 퍼왔는데 이 병을 가지신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충격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라고도 한다.
이는 인간의 일상경험의 범위를 벗어난 저항할수 없는 사건 즉 전쟁,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강간, 자동차,비행기, 기차 등 운동수단에 의한 사고, 소아 학대, 삼풍사고나 성수대교 붕괴같은 대형사고등으로 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의 위협을 받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후 발생하는 질환이다.
[ 임상 증상 ]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개인차이가 심하여 충격후 즉시 시작되거나 수일, 수주, 수개월 또는 수년이 지난후에 나올수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분명한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후 나타나는 전신적 증상이다.
증상이 1개월이상 지속되어야 충격후 스트레스 장애라하며 한달이내 증상이 발생하여 최소 2일에서 최고4주간 지속되는 경우를 급성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증상은 크게 3가지로 나눌수 있다.
과민반응 (hyperalertness, hyperarousal)
환자는 항상 안절부절하고 불안스러워 하며 쉽게 깜작놀라면서 수세를 취한다.
베트남 참전 용사는 항상 벽쪽에 등을하고 앉거나 강간을 당한사람은 주위에 범인이 있는가를 경계한다.
잠을 잘 못자고 동요하거 나 집중하기가 어렵다.
충격의 재경험 (Re-experience or intrusion)
사건이 실제와 같은 것으로 느끼는 기억, 꿈, 환각이 재연될수 있다.
때로는 기억이 전혀없거나 거의 희미할수도 있다.
동료가 수류탄으로 사망한 사람은 심질환으로 개심술을 받은후에 가슴에 충격후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하기 도 한다.
강간을 경험한 여성은 승강기에 타서 누군가 들어오면 땀이나기 시작하고 숨이 가빠진다.
감정 회피 또는 마비 (avoidance or emotional numbness)
충격의 감정, 생각, 상황의 기억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정상적인 감정반응이 소실된다.
감정의 대부분이 비현실적이고 인생의 일상일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타락하게 되고 분노, 피해 의식, 수치심, 회피 등으?고립된다.
어린아이들은 경험 그 자체에 대한 꿈 대신에 귀신에 대한 꿈을 꾼다.
위통, 두통, 화장실훈련 망각, 이별 불안, 학교공포, 외부인 공포로 나타난다.
알코올이나 약물남용이나 의존에 쉽게 빠진다.
정서적 불안으로 인한 뚜렷한 자율신경계 장애 가 있으며 착각, 환각 등이 나타나기도 하며 해리증상, 공황발작이 동반되기도 한다.
예 후 는 급성의 경우 빠른 회복을 보이고 아프기 전의 기능, 사회적 지지, 내과적 혹은 정신과적 장애가 없으며 예후가 좋을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정신과적 기왕력이 있는 경우는 만성적 경과를 밟게되어 후유증이 심하다.
대체적으로 30%가 회복되고 40%가 가벼운 증상, 나머지는 중등도의 증상과 사회적 복귀가 어려운 상태로 지나게 된다.
[ 치 료 ]
정신과적 치료
충격후 수일에서 수주이내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
위기 개입이나 단기정신치료가 적절하다. 인지치료, 행동치료
최면치료
그룹요법
약물치료
삼환계 항우울제, 단가아민 산화효소억제제(MAO inhibitor): 우울증 치료, 수면 향진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fluoxetine
항경련제: carbamazepine, valporic acid
Benzodiazepine: 불안, 걱정의 치료
clonidine, propranolol
안구운동법(EMDR :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
신경차단 치료요법
충격후 발생하는 자율신경계 증상이나 공황발작 등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다.
충격후 스트레스장애및 급성 스트레스장애의 진단 기준
[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
A. 개인은 다음의 두가지가 존재하는 외상적 상황에 노출되었다.
1. 개인은 실제적인 죽음이나 죽음의 위협에 대한 사건들, 혹은 심한 부상, 자신과 다른 사람의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위협을 경험, 목격하거나 직접 직면한 적이 있다.
2. 개인의 반응은 강한 두려움,무력감, 혹은 공포를 포함한다.
B. 외상적인 사건은 계속해서 다음의 하나(또는 그 이상)로 재경험된다.
1. 영상 ,사고들 혹은 지각들을 포함하는 사건에대한 반복되고 침습적인 고통스러운 회상
2. 그 일에 대해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꿈을 꾼다.
3. 외상적인 사건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것처럼 행동하거나 느낌(그경험이 되살려지는기분,착각,환각,그리고 해리적인 flash back 삽화를 포함하고, 이런 것은 각성상태 또는 중독상태에서 생길 수 있다.
4. 외상적인 사건의 일면과 유사하거나 상징하는 내부 혹은 외부적인 단서에 노출될 시의 강한심리적 고통
5. 외상적인 사건의 일면과 유사하거나 상징하는 내부 혹은 외부적인 단서에 노출될 시의 생리적 반응
C. 외상과 연관된 자극에 대한 지속적 회피와 일반적 반응의 둔화(외상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음).
다음의 세가지 (혹은 그 이상) 로 나타남.
1. 외상과 관련된 사고, 느낌, 혹은 대화를 피하려는 노력
2. 외상에 대한 회상을 일으키는 활동들, 장소들 혹은 사람을 피하려는 노력
3. 외상의 중요한 측면울 회상할 수 없음
4. 중요한 활동들에서 흥미 혹은 참여의 현저한 감소
5. 다른 사람들에서 동떨어지거나 격리된 느낌
6. 제한된 범위의 감정(예:사랑이란 느낌을 가질 수 없음)
7, 단축된 미래에 대한 감각(예: 직업, 결혼, 자녀 또는 정상적 수명에 대해 기대하지 않음)
D. 증가된 각성에 의한 지속적적 증상들(외상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음)
다음의 두 개(혹은 그이상)로 나타남
1. 입면이나 수면유지의 곤란
2. 흥분성 혹은 분노의 표출
3. 집중장애
4. 과도각성
5. 과도한 놀람 반응
E. 이 장애( 기준 B,C,D의 증상 )의 기간은 한달 이상이다.
F. 이 장애는 사회적,직업적,혹은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들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고통이나 장애를 일으킨다.
급성 : 증상의 기간이 3개월 미만
만성 : 증상의 기간이 3개월 이상
늦은 발병 : 스트레스후에도 적어도 6개월 이후에 증상이 시작
[ 급성 스트레스장애 ]
A. 개인은 다음 두 가지의 이상적 사건에 노출되어야 한다.
1. 개인은 실제적인 죽음이나 죽음의 위협 또는 심한 부상,자신과 다른 사람의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위협을 경험, 목격하거나, 직접 직면한 적이 있다.
2. 개인의 반응은 강한 두려움, 무력감, 혹은 공포를 포함한다.
B. 고통스러운 상황의 경험중이거나, 그 후에 개인은 다음의 세가지(혹은 그 이상)의 해리성 증상을 가진다.
1. 감정 반응의 둔화,이탈 혹은 무반응을 주관적으로 느낌
2. 주위 환경의 인식이 감소(예: '멍하게 있음')
3. 비현실감
4. 이인증
5. 해리성 기억상실(즉, 외상의 중요한 면을 회상하지 못함)
C. 다음 중의 적어도 한가지 방식 이상으로 외상적인 사건이 계속 재경험된다.
반복되는 영상들, 생각들, 꿈, 착각, flash back, 혹은 경험이 되살려지는 기분 혹은 외상적 사건을 회상하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고통
D. 외상을 회상시키는 자극을 과도하게 회피함(예: 사고, 감정, 대화, 활동, 장소, 사람)
E. 과도한 불안, 증가된 각성(예: 잠을 잘 못 이룸, 짜증을 잘냄, 집중력 장애, 과도한 주위 탐색, 증가된 놀람 반응)
F. 이 장애가 사회적, 직업적, 혹은 기능이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고통 혹은 손상을 일으키고 혹은 개인이 가족들에게 외상적 경험을 이야기 함으로써 조력을 구하거나 개인적인 자원을 동원하는 것 같은 몇가지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개인의 능력에 손상을 일으킨다.
G. 증상은 최소한 2일이상 지속되고 최고 4주간 지속되며 사고후 4주 이내에 시작된다.
H. 이 장애는 물질의 직접적인 생리학적인 영향(예: 약물남용이나 처방) 혹은 일반적 의학적 상태에 의한 것은 아니다.
기존의 1축, 2축 장애가 단순히 악화된 것은 아니고, 단기 반응성 정신병으로 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북한동포분들의 고통을 사실 전혀 몰랐는데....그리고 사실 크게 관심도
없었고.....
정말 세상을 보는 눈이 제가 바뀌는거 같아요.......저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주위에 더 어려운분들 도움도주고....그렇게 살아야겠어요
단절되어 있으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대인 공포증 등이 발생할 수도..
지속되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 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가 만드는 병이기도 하죠..
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쉽다는 말처럼
때로는 부드럽게 나아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척 안하셔도 됩니다. 힘들땐 주위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시고 울고 싶을땐 우세요
오랜만네 친구들 얘기를 듣고 싶어서 들어 왔네요
그냥 탈북자들의 세계를 알리고 조금은 서로에게 이해가 되는 세상이였으면 하였습니다
제글로 하여 서로 가까워 지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금이라도 힘이 되였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이제는 입국해서 년반이 지나가는군요
그럼 모두의 행복을 기원 합니다 ^^^^ 하이팅 !!
조국이란 말 어디 부분에 나오는지 몰르겠지만 난 대한 민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하오. 그리고 운동경가도 대한 민국을 응원하죠
왜냐면 북한애들 경기 혹 이기면 장군님 한데 먼저 인사 하더군
나하구는 다르니까
그리고 우린 원래 하나의 조국이였다는 걸 잊지 마시오
조국은 인권이 보장되고 발붙이고 살수 있는 곳이 여야 하오
그 폭력국가테로 국가를 우린 조국이라 할수 없죠 .
님은 조국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터 배워야 겠소 .
당신 이 한국에서 어떤 심산을 가지고 살던 그건 당신의 자유인것 처럼 누가 어디를 조국 으로 의지하고 빼앗긴 조국의 절반땅을 다시 찾아 하나의 조국이라 말하던 그건 그사람의 신념이요
우린 조극에 온 것이지 당신처럼 외국에 와서 내나라를 조국이라 한다구 시비하는 사람들과는 다르지요
그러니 미소님에게 든 누구에게든 그런것 강요 안했으문 합니다
이제서야 한국와서 세상돌아가는것도 알고 북한세상이 잘못된거 알았으니까 당연한거 아닌가...? 그럼 여기와서 지금까지 속고산것도 다알았는데 여기살면서도 김정일 김일성을 부르짖는다면 간첩아니고서야 미친것아니고서야..당연한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님말처럼 북한이 개혁개방해서 북한이 어느정도 산다면 북한을 위해서 어떻게해서라도 남한에서 배운정치경제문화하나라도 더가르쳐줄라고 더욱노력하겠지요..그때는 북한남한 이런거 따지기이전에 한민족으로서 다같이 더나은미래를위해 손잡고 나아가야겟지요.
맞아요. 조국이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존재는 아니죠.
0000님에게 조국은 여전히 북조선이군요.
이해합니다.
탈북자분들이 한국을 온전히 우리나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배신감과 예기치 못한 당혹감이 들었지만
역지사지라고 내가 북조선에 가서 산다고 가정했을 때
저 또한 북조선이 우리나라라는 생각은 안 들 것 같더군요.
저도 그 시를 무척 좋아 했지죠
그렇게 사랑하던 조국을 뒤에두고 산설고 불설은 이역땅을 돌고 돌아 또하나의 조국을 찾아올때 심정이 어떠 했을거 라는것도 알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국의 의미는 그렇게 목가적이고 단순한것이 아닌거 같습니다
왜냐면 북한에 있을때도 우리는 남한을 절대로 남의 나라 땅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조국입니다
만약 영원히 둘로 갈라진다해도 우리는 서로가 그리워 할것 입니다
조상의 땅이기 때문이죠 .......
저는 이 노래를 부릅니다.
검은 구름 속 햇살은 한 줌의 희망인가
풀잎에 맺힌 이슬은 누구의 핏물인가
강이 말라 길이 되고 바위가 흙이 되도록
간절한 그리움 하나 내 어머니의 나라
그 날의 함성은 세월 넘어 갔건만
천년의 별빛은 어머니의 눈물인가
산천초목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노래
다 같이 울고 웃던 노래 풀잎의 노래
어머니의 그 목소리 어머니의 나라 나라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 나오는 주제가입니다.
지금 이 시각도 신음하는 내 조국의 동포들을 하루 빨리 구원하고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고구려땅을 찾자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대에 못하면 후대들대에는 반드시 지금의 중국 동북 3성에서 1억5천여명의 한족들을 몰아내고 빼앗긴 고구려땅을 찾아 가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참말로 모진고생을 이겨내셨어요. 장하십니다.
저도 탈북자이지만 님 같으신 분들의 글을 읽을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군 한답니다. 힘들게 오신 내조국이니 마음껏 활보하면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님같은 분들과 꼭 한번 만나 향수를 달래고 싶습니다.
전 남한 태생이지만 남북한은 같은 겨레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터민 분들을
단지 우리의 이웃이 된 분이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십시요... 항상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고요.
비록 지금은 서로 조그만 나라가 되었다지만
우리 겨레는 5천년이상 같이 해온 민족입니다.
그리고 미소천사님은 그냥 이웃일 뿐이고요.
좀 길긴햇지만요 ㅋㅋ
저도 한 탈북자로써
공감하구 부끄럽습니다..
넘어온지는 약 8년이 되서도
아직도 정신 차리지못하고 방항하는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부끄럽게 생각함니다!
저도 첨에 건너와서 밤잠에 시달리고 그랫엇어요 !
저능 만10세 11살에 1992년 12월24일에 무산으로 통해 중국 화룡을 건너와서 화룡예 계신 할머니 통해 그집 큰아들님과 같이 연길로 들어왓고. 연길에서 이래저래 도피생활하면서 맨날 서시장가서 빌어먹고 밤이되면 아파트 공사현장같은데서 잠을자고 아니면 다리밑에서 잠자면서 지내엿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공안차 소리만 들리면 마음을 조이면서 도피생활을 햇던기억들 나곤 함니다 ㅈ ㅔ가 생각하기에는요 탈북자님들 험하고 위험한 길을 택해서 왓지만요 와서 마음을 놓아버려서 그럴수도잇음니다..이제 그험한 고생을 안한다는 그런생각 등등...
저도 그렇습니다.. 첨에는 죽기살기로 ㅈ ㅔ삼국으로 건너왓지만요..총도 맞아보고 쓰러지고 배고프고 울고 하면서도 죽기살기로 넘어왓지만.. 여기와서 현실은 틀렷음니다 사회적 문제가 젤많앗죠 ! 말과 행동 모든것이
이나리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엿기때문이죠! 그래도 전 힘내고잇음니다!
제가 주제넘게 글 너무많이 적은거 같애서 이만 적겟음니다 '-'ㅋ 힘내시구요 항상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람니다 .. 같은 탈북자로서 기도와 용기를 드림니다 !
자존심이 강한 탈북자들은 남한사람에서 도움을 요청 하지 않습니다. 도음의 손길도 무시해 버리고요. 정작 한 민족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왜 따뜻한 도움을 외면합니까. 이 사회에서 같이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 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자기 자신을 버리세요. 그러면 자유로울 것 입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 마정옥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11-01 12:19:31
힘내시구요 저두 어려운분들 마니 도와주며 살겠습니다
그런데 그 후유증을 어떻게 치료하는 가에 따라 건강이 빨리 완쾌될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치료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소천사님처럼 스스로 마음을 다 잡아가며 자기 건강에 충실하신 다면 얼마든지 치료할수 있는데.
참 그걸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다나니 그렇게 값없게 그리고 맥없이 자살이
라는 걸 하지 않나 봅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필요하지만 본인이 기본일겁니다.
오늘 처음 가입해서 미소천사님의 좋은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성탄절 즐겁게 보내시구요,
이제 곧 새해도 들어서는데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결정 된다고 생각합니다..즉 다른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개척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다른사람들도 좋게보고 응원의 힘을 보낼테지만 그렇지 못하고 자기자신을 스스로 학대하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누가 좋게 보겟습니까..나조선사람들이 물론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겟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로 보시면 됩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처지에 같이 감동할줄 알구 아파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것도 알아 주시구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데 누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된겁니다..자기 자신에가 당당해 지십시요 자신감있는 사람을 다른사람들도 좋아할 겁니다..자신이 위축되면 될수록 다른사람들은 그런생각 안하는데 스스로 다른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생각을 갖는 겁니다..탈북자라고 스스로 숨기는 그 마움속에 벌써 움츠러드는 자신을 작아지게 하는 그런것이 있는거 같습니다..나는 탈북자 입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밝혀 보세요..그러면 오히려 사람들이 친해 지려고 노력할 겁니다 물론 삐딱하게 나오는 사람들두 있을텐데 그런사람들은 그냥 개무시 하면 됩니다 ..개같은 것들 이라 생각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