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 제1·2·3호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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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대표적인 고구려 시대의 벽화 무덤들이다. 황해남도 안악군 상지마을에 있는데 1호고분의 외부 크기는 직경이 약 12m, 높이 3m이며 현실(玄室)의 크기는 남-북이 2.88m, 동-서가 2.54m, 높이는 3.35m이다. 내부는 현실과 함께 연도로 구성돼 있으며 천정은 「고임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현실은 석회석·화강석 등의 조각을 진흙과 석회를 섞어 반듯하게 쌓아 올렸고 그 위에 4.25m 두께로 회를 발랐다. 현실 사방의 벽과 천정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종류는 △행진하는 군중 모습 △사냥하는 그림 등이다. 또 연꽃무늬·구름무늬 등과 함께 주작·현무 등 「환상적인 동물」, 그리고 하늘·사람·해와 달을 상징하는 그림도 그려져 있다. 1949년 6월 발굴됐으며 여기서 출토된 관과 못 및 금으로 만들어진 장식품들은 평양의 국립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2호고분은 1호고분에서 북쪽으로 약 4백m 떨어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둘레는 약 1백m에 달하며 높이는 5m이고 현실의 규모는 남-북이 3.5m, 동-서가 3.4m, 높이는 3.7m이다. 내부 구조와 천정의 형태는 1호고분과 똑같으며 벽화 가운데는 고구려 귀족들의 생활을 그린 것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벽화는 1호고분의 벽화에 비해 『색조가 다양하고 회화의 기법이 매우 세련되고 원숙한 느낌을 주고 있다』고 한다. 3호고분은 특히 내부 구조의 양식과 기교가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덤의 크기는 남-북의 길이가 33m, 동-서는 약 30m, 높이는 7m이다. 연도에서 현실로 들어가는 곳에는 유명한 「쌍닫이 돌문」이 있는데 이 문의 높이는 2.34m이다. 현실은 남-북과 동-서의 길이가 똑같이 2.17m이고 벽의 높이는 2.53m, 천정의 높이는 3.47m이다. 벽화는 87㎡에 달하는 전체 묘실에 그려져 있는데 서쪽 옆방에는 고구려 귀족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그림이, 남쪽 벽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 모습과 시녀가 그려져 있다. 서쪽 옆방 입구 좌·우의 벽에는 칼을 짚고 서있는 무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벽 위쪽에 「장하독」(帳下督)이라는 당시의 관직명이 붉은 색으로 씌여져 있다. 벽화 중에서 특이한 것은 복도에 그려져 있는 「대행렬도」인데 여기에는 약 2백50여명의 각종 인물이 묘사돼 있다. 이 「대행렬도」는 높이 2m, 길이 6m의 규모로 커다란 판석에 그려져 있다. 이 3호고분은 왕릉이며 그 주인공은 이제까지 알려진 「동수」(冬壽)나 미천왕(美川王)이 아니고 고국원왕(故國原王)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동수」는 중국에서 고구려로 망명해와 고국원왕 밑에서 21년간 「장하독」을 지낸 인물이고 미천왕은 낙랑을 멸망시킨 고구려의 제15대왕, 그리고 고국원왕은 미천왕의 아들로 남하정책을 펴다가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고구려의 제16대 왕이다. 이곳이 왕릉이라는 근거로는 △고구려 양식으로 축조됐을 뿐 아니라 같은 유형의 고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점 △무덤의 서쪽 벽면에 그려져있는 주인공이 쓴 관모가 백나관(白羅冠)이라는 점 △무덤·동쪽 회랑에 있는 행렬도에 王이 탄 수레앞에 「성상번」이라는 깃발이 있는 점 등이 제시되고 있다.「백나관」과 「성상번」은 고구려의 국왕만이 사용하던 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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