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자백받은 법(조선일보 박정훈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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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특대형 모략극"이니 "전쟁국면 간주"니 하며 펄펄 뛰는 것은 사실 놀랄 일이 아니다. 북한은 그동안에도 우리의 생명을 해친 범죄를 숱하게 저질렀지만 전부 '남조선 모략극'이라고 해왔다. 멀게는 1·21 무장공비 공습(68년)과 아웅산 폭탄테러(83년), 가깝게는 KAL기 폭파(87년)와 강릉 잠수함 침투(96년)까지 북한은 어느 것 하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명백한 증거와 증언이 쏟아지고, 전 세계가 성토해도 북한은 사과는커녕 "날조"라며 되레 큰소리쳐왔다. 그런데 딱 하나 예외가 있다. 북한이 저지른 반(反)인권 범죄에 대해 유일하게 공식 사죄를 받아낸 것이 일본이다. 무조건 딱 잡아떼는 북한이 일본인 납치 범죄만큼은 깨끗하게 시인하고 사죄와 재발방지 약속까지 한 것이다. '주체'와 '우리 민족끼리'를 입에 달고 사는 북한이, 같은 동족에게 억지 부리면서도 일본엔 고개 숙여 사죄했다. 2002년 9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교 정상화 카드를 들고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과거 일본인 14명을 납치했음을 시인했다. 김정일은 "(일본인 납치는) 70~80년대 일부 망동주의·영웅주의가 저지른 일이다. 솔직히 사죄한다"고 '통 크게' 가면을 벗어 던졌다. 물론 김정일이 갑자기 개과천선(改過遷善)한 것은 아니다. 그가 노린 것은 일본의 돈이었다. 김정일은 일본과 관계 정상화가 이뤄진다면 경협자금 100억달러가 들어온다고 계산했다. 경제가 파탄 난 북한으로선 몹시 애타는 목돈이었다. 문제는 북한이 이 돈을 받아 내기 위해선 납치 이슈를 피해갈 길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평양에 간 고이즈미는 납치문제 해결이 없으면 교섭이 한 발도 나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없으면 교섭 결렬을 불사하고 돌아가겠다며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고이즈미의 승부수도 일본 내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발에 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여야 정치권은 물론 좌파·친북 진영까지 한목소리로 고이즈미의 압박 외교에 힘을 실어 주었다. 북한이 납치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거나, 날조 의혹이 있다며 내부에서 발목 잡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다. 온 나라가 일사불란하게 뭉쳐 북한이 도망갈 도피로를 차단해버린 것이다. 아마 김정일은 100억달러냐, 납치 시인이냐를 놓고 엄청 고민했을 것이다. 결국 납치 사실을 까발리는 실리(實利)의 길을 택했으나, 그 뒤 상황은 김정일의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일본 여론이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관계 정상화 교섭은 진전되지 못했고, 목이 탔던 경협 자금은 한 푼도 받아내지 못했다. 북한이 얻은 것은 남의 나라 국민을 마구 납치해간다는 야만성의 낙인(烙印)뿐이었다, 일본이 자국민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쓴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그저 100억달러의 '냄새'만 풍겼을 뿐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먼저 해결해야 지원한다'는 상호주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키고, 일본 사회는 정파와 진영을 넘어 똘똘 뭉친 결과였다. 한국이 지난 12년간 "선(先)지원하면 북한은 달라진다"며 북한에 준 협력 자금은 100억달러가 훨씬 넘는다. 100억달러가 아깝다기보다, 북한이 적반하장 날뛰게 내버려 둔 12년 세월이 통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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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느려터진 풍선현장에서
급하게 복사하여 올리느라 ...
동아일보에 칼럼기사를 복사
필자는 좀 찾아보고 다시 올리겠습니다.
김정일이 원하는것을 안해줬기에 사과를 받은것처럼
김정일이 원하지 않는 전쟁을 일으킬 기세로 북한 잠수함 지만 타격해도 사과를 받을 수 있고 잘하면 외국으로 도망갈수도 있는 현재 상황이라 사료됩니다
지적해주신 분께 재삼 감사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