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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최대의 미스터리 드디어 베일벗다
Korea, Republic o 퍼온글 0 606 2010-06-26 21:34:19
6.25 최대의 미스터리인 북한군의 ‘의문의 서울 3일 체류’ 이유가 밝혀졌다.
전면남침을 시도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 단 3일만에 남한의 심장부인 서울을 점령했다. 북한군이 서울을 완전 점령한 것은 6월 28일 오전이었고 그들이 한강을 넘어 남하한 것은 7월1일이었다.
왜 북한군은 서울에서 3일을 머물렀을까. 이는 한국전쟁 최고의 미스테리로 남아왔다.


탈북시인 장진성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이에 대한 해답을 자신이 직접 읽은 김일성의 친필 메모를 통해 밝혔다.
장씨는 지난 2000년 북한에서 ‘김조실록’조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김정일이 이씨 조선시대에도 이조실록이 있었는데 위대한 김일성 시대에 ‘김조실록’이 없다는 것은 죄악이라며 편찬을 지시한 것.

‘김조실록’조는 통전부 필진 8인으로 구성되어 평양시 대동강구역 청류동 문수초대소에서 근 2년동안 집필했다. 장씨는 조선노동당역사문헌고에서 실려 온 수많은 과거 자료들은 당시 흔적이 역력한 그대로였다고 밝혔다.
장씨는 “기관들의 도장이 새겨진 문서들과 가끔 김일성의 자필 문서도 있었는데 한문과 로어를 섞어가며 쓴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그 중 1976년 경 외무성에서 기록 정리한 김일성의 교시가 있었는데 북한 정권의 친소정책만을 알았던 장씨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김일성의 그 교시란 것은 스탈린에 대한 분노로 일관된 내용이었는데 장씨는 기억나는 대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내가 조국전쟁 이후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그 다음에 농업과 경공업을 다 같이 발전시키자는 정책을 내놓았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는가? 스탈린 때문이었다. 스탈린은 우리나라의 조국통일을 방해하고 가장 치명적 상처를 남긴 제일 나쁜 사람이다. 내가 늘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었는데 하고 가슴 치며 통탄하는 것이 바로 서울점령 3일이었다. 그때 우리가 서울에서 3일 동안 쉬지만 않았어도 그 기세로 쭉 밀고 나가 미국놈들의 생각도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에서 주겠다던 무기를 주지 않았다. 그때 가진 것으로 밑에까지 쭉 내려가기엔 도무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소련놈들은 서울이 그렇게 빨리 점령당할지 몰랐다고 후에 변명을 했지만 그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애당초 스탈린은 미국이 무서워 줄 생각을 안했다. 그 무기를 기다리며 3일 동안 서울에서 엎어져 있는데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스탈린은 장사꾼이다. 전쟁 이전에 준 무기들도 사실 우리 무장력을 그냥 지원한 것이 아니다. 일본 놈들이 남기고 간 발전소, 제철소, 주요 설비들과 설계도면을 대신 다 가져갔다. 심지어는 철도 레루(레일)까지 뽑아가겠다는 것을 내가 안 주었다. 조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그 3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밤잠을 자지 못한다. 내가 그래서 자주국방공업만이 조국통일이라고 생각하고 국가 제일정책으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장씨는 “김일성이 말한 것처럼 서울에서의 3일 때문에 북한이 진 전쟁이었을까”라고 묻고 “분명한 것은 KBS가 최근 단독 공개한 기밀문건처럼 스탈린이 김일성 때문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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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rsery 2010-06-26 22:30:24

    - starsery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06-26 22: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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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rry1 2010-06-26 22:31:42
    위 장진성씨의 얘기는 좀 이상한 점이 있는데, 왜냐하면 김일성이 3일 이상 전쟁을 지속할 만큼의 군 자원도 확보가 안되었는데 남침을 시작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보다는 김일성은 수도인 서울만 점령하면 전쟁은 곧 끝나는 것으로 오판한 것이 아닐까요.

    제가 오래 전에 들었던 설은 박헌영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남로당 당수였던 박헌영은 남로당이 다 들고 일어나 호응할 것이라고 그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헌영의 월북 이후 남로당은 곧 붕괴되었으며 남에서는 숙군작업을 벌여서 국군 내의 남로당 당원들은 죄 숙청이 되어 버립니다.

    당시 남로당 중간 간부급이였던 박정희도 체포가 되었는데, 남로당원들의 명단을 넘겨주고 살아 남습니다. 그는 일본육사 출신이였기 때문에 훈련받은 군 장교가 부족했던 당시의 미 군정으로서도 그를 살려줘서 활용하는게 더 낫다고 판단했었을 겁니다.

    결국 서울 점령 후 3일 동안 남하를 안하고 기대했던 남로당의 봉기는 없었으며, 나중에 미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기울자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책임일 돌려 잉크병을 던지고 싸웠다라 뭐래나. 나중에 김일성은 박헌영을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숙청해 버렸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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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pfl2 2010-06-27 02:30:29
    게리는 혹 빨치산의 손자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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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2010-06-27 10:28:31
    왜 괴리라고하는지 알것다 괴리야 네말이야말로 비논리적인데 왜 남의글을 부정하고부터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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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nkey 2010-06-30 16:46:57
    북한의 김일성저작선집에도 일성이가 총 1만정이 없어서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서술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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