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내 공산주의 실험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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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목사 사모 간증 2006.2.3 양수리 수양 관 청소년 겨울 비전 켐프(천 여 명모임)
<골고루 함께 잘 살자!>라는 말은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다. 두레마을공동체가 바로 그런 모범으로 밖에서 많은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그런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가령 오갈 때 없는 할머니들이 두레마을에서 보장받으며 살았는데 그 다음 오는 이들을 먼저 온 이들이 작당하여 내쫒는 것이었다. 지난 자기처지를 생각해서 기쁘게 맞아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두레마을에는 지구상의 인간모형은 다 모였다고 할 수 있었다. 의로운 사람, 순진한 사람, 살인미수, 강간, 절도, 사기, 폭력, 건달, 지체장애인 등 등 따라서 인간의 속성을 다 엿볼 수 있는 조건이었다.
사람은 거저 밥 먹여주고 재워주면 감사해서 더 잘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거저 받으면 더 놀고먹었으며 일하는 이들마저 바보같이 왜 하냐고 잡아당긴다. 따라서 뭘 좀 하자는 열성 가들은 떠나 버리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 없었다.
사랑은 무작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30살을 넘긴 거지 중에 상거지가 찾아왔다. 솔직히 사랑해서보다 너무 더러워 목욕시키고 목사님 옷으로 일체 갈아 입혔다. 그는 전과 17범으로 감옥과 길거리가 자기 집이었다. 10대부터 노숙하며 껌 하나 들고 살았는데 사람들은 대체로 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불쌍하다고 그냥 돈을 주고 가는데 그 돈을 연명하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어설프게 도둑질하다 감옥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매끼 따뜻한 밥과 깨끗한 방의 이불을 쓰고 살게 되었다. 또 만나는 사람마다 오빠, 형님하며 존댓말을 들으며 살게 되었다. 평생 찬밥에 찬 길거리, 감옥, 욕설 속에, 사랑이란 못 받아본 그로서는 오히려 고통이었다. 한 시도 안절부절 못하다가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어 입원하였다가 돌아 온 날 다시 비닐박막을 찢어 노숙상태에서 편히 자더라는 것이다. 간절히 소원하기를 자기를 노숙자 수용소에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다. 자라온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느낄 수 있지만 또한 우리의 자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특별히 부탁할 필요 없이 잘 있었다.
인간은 매우 간사하다. 나의 별명은 공동체마누라이다. 남편 김진홍 목사가 자신에게 별명을 달 만큼 그것이 체질로서 180명의 식구를 거느리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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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댓글 부대냐?
아님 정신지체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