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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일생과 <정치는 최대의 협잡>
Korea, Republic of 민복 1 430 2014-05-02 00:42:34
5.1절은 노동절이자 우리 아버지의 생일이다.
아버지는 공산당이 좋아 북으로 가셨고
그 아들인 나는 공산당이 싫어 남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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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에서 면장감은 저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똑똑하고 말 잘 했다는 아버지.
그래서인지 평등사상에 매료되어 17살에 공산당에 든 아버지,
1946년에 벌써 중앙당에서 남한적화를 위해 공작원(김복동)이 내려왔는데
그 첫 포섭대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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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 망국선거(북한식표현) 후 지하로 들어간 남로당.
무덤을 아지트로 삼고 지하투쟁을 했다고 하신다.
리리, 군산 감옥에 갇히시기도 했다.
<너는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비>라고 어른들이 지적해도
굳히지 않았던 공산주의 신념과 활동.
625전쟁으로 인민군이 내려오자 군 선전비서로 짚차를 타고 다니셨다고 한다.
지방빨갱이가 더 나빴다고 하나 특이한 것은
아버지 관할 구역에서는 학살이 없었다고 한다.
<동네사람을 죽이는 것은 자기 식구를 죽이는 것과 같다>라는 아버지의 명으로
자제시켰고 그래서인지 동네 부자들이 아버지 집에 숨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미군의 인천상륙으로 공산당이 쫒겨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보고 자신들이 보증서겠으니 가지 말라고 할 정도였으나
워낙 신념과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북으로 향하여 희천, 강계까지 후퇴,
중공군에 의해 1.4서울 점령시에는 공작대로 서울까지 진출.
-
정전후 공산대학 수석졸업, 군당비서로 임명간부 받을 정도.
그러한 공산당을 일생을 바쳐 겪어보신 결론.
<정치는 최대의 협잡이다>
아마도 김일성보다 더 반일독립운동했던 박헌영남로당당수를
하루 아침 미제의 간첩으로 몰아 죽이는 것으로 부터 해서
일제를 타도한 해방의 은인, 전범자이면서도 미국이 일으킨
625전쟁 승리자, 생지옥을 인민의 지상락원 등 등 을 책으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하나밖에 없는 일생으로 겪으신 결론이신 것이다.
여기에 내가 겪은 것 까지 합쳐 결론 한다면
<공산주의는 공상주의, 사회주의는 사기주의 이다.>
이런 경험의 진리를 삐라로 열심히 북에 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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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복님 ip1 2014-05-02 09:54:05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끝가지 나아가 통일관련부분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지금도 최고지만 국가에서 인정을 안해주고 써주지 않을따름이고 진짜 아까운 국가적 인재가 썩고 있으니 앞으로 반드시 빛을 발할때가 반드시 있을것입니다.
    북한의 최고좃놈을 몰아내는데는 이분만한 전문가는 없다고 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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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쾅쾅쾅 ip2 2014-05-02 17:37:19
    항상 건강 생각하시면서 다니세요
    좌파들 득실거리는 밤에 항상 조심하시고 또 조심하세요.
    통일을 위한 민복님의 역할은 남한의 정치인 몇백명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분이니까요...
    항시 민복님의 몸은 개인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몸이며 통일의 꽃이라는 점 명심하세요.
    좌파가 떠드는세상에서 용기있게 일해주시고있는 점 너무 고맙습니다.
    정치인 몇백명 보다도 훌륭하신 민복님의 몸은 아주 귀중하니 몸 건강에 유의하시고 좌파놈들 간첩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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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복 ip3 2014-06-18 12:44:51
    2번님! 감사합니다.
    조심은 하지만 그리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김부자외에 모든 북한사람이 삐라를 좋아하니까요.
    라디오인테넷없는 유일폐쇄땅에 얼마나 외부소식이 궁금할가요.
    내가 그랬지요. 삐라보기 위해 보름이나 출장을 연기하고 보았고 탈북결심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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