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일생과 <정치는 최대의 협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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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절은 노동절이자 우리 아버지의 생일이다.
아버지는 공산당이 좋아 북으로 가셨고
그 아들인 나는 공산당이 싫어 남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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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에서 면장감은 저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똑똑하고 말 잘 했다는 아버지.
그래서인지 평등사상에 매료되어 17살에 공산당에 든 아버지,
1946년에 벌써 중앙당에서 남한적화를 위해 공작원(김복동)이 내려왔는데
그 첫 포섭대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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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 망국선거(북한식표현) 후 지하로 들어간 남로당.
무덤을 아지트로 삼고 지하투쟁을 했다고 하신다.
리리, 군산 감옥에 갇히시기도 했다.
<너는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비>라고 어른들이 지적해도
굳히지 않았던 공산주의 신념과 활동.
625전쟁으로 인민군이 내려오자 군 선전비서로 짚차를 타고 다니셨다고 한다.
지방빨갱이가 더 나빴다고 하나 특이한 것은
아버지 관할 구역에서는 학살이 없었다고 한다.
<동네사람을 죽이는 것은 자기 식구를 죽이는 것과 같다>라는 아버지의 명으로
자제시켰고 그래서인지 동네 부자들이 아버지 집에 숨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미군의 인천상륙으로 공산당이 쫒겨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보고 자신들이 보증서겠으니 가지 말라고 할 정도였으나
워낙 신념과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북으로 향하여 희천, 강계까지 후퇴,
중공군에 의해 1.4서울 점령시에는 공작대로 서울까지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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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후 공산대학 수석졸업, 군당비서로 임명간부 받을 정도.
그러한 공산당을 일생을 바쳐 겪어보신 결론.
<정치는 최대의 협잡이다>
아마도 김일성보다 더 반일독립운동했던 박헌영남로당당수를
하루 아침 미제의 간첩으로 몰아 죽이는 것으로 부터 해서
일제를 타도한 해방의 은인, 전범자이면서도 미국이 일으킨
625전쟁 승리자, 생지옥을 인민의 지상락원 등 등 을 책으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하나밖에 없는 일생으로 겪으신 결론이신 것이다.
여기에 내가 겪은 것 까지 합쳐 결론 한다면
<공산주의는 공상주의, 사회주의는 사기주의 이다.>
이런 경험의 진리를 삐라로 열심히 북에 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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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고좃놈을 몰아내는데는 이분만한 전문가는 없다고 봅니다. 화이팅!
좌파들 득실거리는 밤에 항상 조심하시고 또 조심하세요.
통일을 위한 민복님의 역할은 남한의 정치인 몇백명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분이니까요...
항시 민복님의 몸은 개인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몸이며 통일의 꽃이라는 점 명심하세요.
좌파가 떠드는세상에서 용기있게 일해주시고있는 점 너무 고맙습니다.
정치인 몇백명 보다도 훌륭하신 민복님의 몸은 아주 귀중하니 몸 건강에 유의하시고 좌파놈들 간첩들 조심하세요.....
조심은 하지만 그리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김부자외에 모든 북한사람이 삐라를 좋아하니까요.
라디오인테넷없는 유일폐쇄땅에 얼마나 외부소식이 궁금할가요.
내가 그랬지요. 삐라보기 위해 보름이나 출장을 연기하고 보았고 탈북결심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