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망명작가의 작품활동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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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불현듯 떠오른 질문 박덕규 소설가, 단국대학교 교수. 탈북시인 장진성의 시집"내딸을 백원에 팝니다"의 해외 번역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를 여러차레 접한다. 북한의 정치와 인권문제가 세계뉴스의 표적이 되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탈북자들의 작품이 날이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다. 북한의 열악한 상황을 기본 내용으로 탈북자나 꽃제비 생활상. 만연된 장마당 풍경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을 예사롭게 만나게 되었다. 여기 눈길을 끄는 한편의 단편소설을 소개한다. 이제 한시간만 있으면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다. - 그래 기차만 들어와라. 몽땅 내거다 내거!- 객기를 부리는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 돌아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수는 노래를 부른다. 우리당이 제일이요. 사회주의 제일일세. 붉은기 높이 들고 사회주의 지키세. 끝도 없이 같은 곡조를 반복해 주절대는 노래소리가 잠잠해졌을 즈음 열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창수는 그소리를 듣지 못했다. 술취한 쇠새끼가 덜덜 떨며 깨어났을 땐 몸이 구루마 위가 아닌 콘크리트바닥에 있었다. 누군가가 구루마를 훔쳐간 뒤였다. 하늘에선 새벽별이 깜빡이고 창수는 얼음판에 자빠진 소처럼 휑한 눈을 껌뻑거렸다. 위 작품은 탈북작가 도명학의 "재수 없는 날"("망명북한작가PEN문학",179~193쪽)이다. 가진 것은 힘밖에 없는 창수는 동네 사람들한테 불려가 힘쓰는 일을 잘한다해서 "쇠새끼"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래도 겨우 배만 채우는 정도의 벌이다. 그런데 요즘 제법 뻐길만한 일이 생겼으니 구루마를 가진 금옥이와 7대3으로 짐꾼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불리한 계약조건임에도 아내와 아들 둘한테 국수라도 넉넉히 사주며 살게 됐다. 마침 금옥이가 악독한 구루마꾼에게 얻어터져 몸져눕게 되어 창수마저 일을 못 할 상황이 된다. 뚯밖에 금옥이는 구루마를 좋은 조건으로 혼자 쓸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창수는 구루마를 자기 것처럼 쓰면서 양식을 꽤 챙길 상황이 됐으나 '재수 없게도' 보안원에게 걸려 시체 치우는 노동을 하고 나오느라 하루를 공친다. 그런판에 배가 고파 먹은 술기운으로 기차 손님을 기다리다 깜빡 졸다가 구루마를 도난당하고 만다. 위 대목은 소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짐작하셨듯이 위 작품은 놀랍게도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1924)를 닮아있다 못해 제목마저 "재수 없는 날"이다. 제목으로는 '반어'를 모르는 '체제고발'쯤 되겠거니 싶지만 내용은 아니다. 이 작품은 배급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북한의 2010년대 사회체제를 썩 '반어적으로'그려내고 있다. 그동안 '수기'의 변형이거나 '정치적 고발'에 치중해 온 픽션 형태에 비하면 한결 짜임새 있고 개성도 선명하다. 리얼하기로 말하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보아온 한국 작가들의 '탈북소재 소설'이상이다. 탈북문제를 문학을 통해 접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나 문학은 사회적 담론을 끌어낼 수 있는 대표적인 쟝르라는 점에서 탈북을 소재로 한 작품은 탈북문제를 쟁점화 할 수 있는 하나의 소스로 주목되곤 했다. 일찌기 탈북시인 장진성의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가 유럽에서 인기를 끈다는 뉴스를 여러차례 접해온바, 문학을 사회적 담론으로만 이해한다면 '재수없는 날"의 리얼리티는 외국인들의 관심사 안에서는 충분한 담론 소스로 세공될 수 있다. 탈북은 한국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낳은 역사적 변동의 실제적 사실이었다. 분단의 골을 헤치고 나와 이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그런데 한국 작가의 탈북소재 소설과 "재수 없는 날"은 사회적 담론의 소스로 치면 어느 편이 더욱 강렬한 것인가. 불현듯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우리의 '탈북문학'을 설명하면서 통일되는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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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잘써요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4-12-15 15:18:01
- ip1입니다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4-12-15 15:17:16
이것도 엄연히 경력위조, 아니 직함위조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