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토론게시판

상세
천리마 운동과 비슷한 대약진운동의 결과
Korea, Republic of 민복 0 290 2015-03-05 00:03:07

마오가 인민의 힘을 통한 즉각적인 산업화를 선포하다.

1958년 중국 주석 마오쩌둥이 선언한 새로운 경제 정책은 원대한 야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약진운동"이라고 명명된 이 정책은 대중의 혁명에 대한 열정을 동원하여 중국을 산업화한다는 하나의 새로운 혁명으로 발돋움했다. 사실 이로써 농민들에게서 잉여 곡물을 마지막 한 톨까지 모두 짜내어 수출한 돈으로 기계 값을 갚았던 러시아식 산업화가 중국에서는 먹힐 수 없다고 인정한 셈이었다. 중국 인구로는 생산한 작물을 수출은커녕 소비하기에도 모자랐다. 기술을 돈 주고 살수 없는 상황에서 이용이 가능한 자원이라고는 농민들의 노동력밖에 없었다. 농민들을 공동 생활체로 조직하여 집단 노동을 부과하였다. 처음에는 중국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신념으로 상당히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열정이 기술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으로 끝났다. 사람들은 뒷마당에 설치한 용광로로 대량의 강철을 생산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 이렇게 생산된 강철은 너무 질이 낮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시멘트, 화학 제품, 면(綿) 같은 물자의 생산 같은, 매우 실제적인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품질은 대체로 매우 조악했다. 자원, 특히 노동력이 농업으로부터 이탈된데다 흉년까지 겹치면서 1960년에는 2,000만 명이 아사하였다. 결국 마오는 대약진운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마오쩌둥에게 상당한 타격이었으며, 결국 마오는 자신의 권위를 재확인하고자 1966년 문화대혁명의 재앙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좋아하는 회원 : 0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北 리수용 외무상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탈북자 인간 쓰레기 막말.
다음글
북한의 대고조와 중국의 대약진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