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잊지 못할 1990년 5월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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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의 2大작물인 벼와 옥수수 종자는 우수한 것이다. 심지어 옥수수 생산대국인 미국수준이다. 이 사실은 2001년 한미곡물협회 박영인회장님의 추천으로 미 농무성 초청 한국농업대표단 일원으로 필자가 미국 방문하여 확인한 결과이다. *남한 옥수수연구가 북에 뒤쳐진 것은 쌀이 남아도는 형편에서 연구할 필요성이 소외된 결과였다. 남한의 옥수수연구원이 5명 안팎 이라면 북한은 수백 명에 이르고 보조노동자까지 합치면 몇 만명 이나 되기에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왜 북한은 식량난에 허덕이는 가 문제이다. 종자는 좋은데 심을 땅이 적어서, 아니면 기후가 나빠서 일가?! * 종자+경지+기후=농업생산의 3大요소하고 한다. - 북한은 경지면적이 남한과 비슷한 200만 정보로 알고 있다. 인구가 남한에 절반이므로 1인당 경지면적은 2배나 된다. 기후 역시 나쁘지 않다. 귤나무를 제외한 아열대식물, 온대, 아한대 식물까지 심을 수 있는 기후이다. 기후가 남한보다 춥다고 의심된다면 북한보다 위에 있는 중국만주를 보면 농사가 잘되고 있음을 결코 기후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 1974년 농업대회에서 한 김일성의 교시를 보면 북한에서 한해의 배급식량은 350만 톤이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북한경지에서 주 작물인 옥수수가 70만정도인데 정당 5톤만 생산 되도 북한의 한해 식량은 해결되는 셈이다. 북한의 옥수수종자의 생산능력은 1정보에 10톤이 가능하다. 이대로 계산하면 한해 소요식량의 2배인 700만 톤 생산하는 것으로 된다. 여기에 벼와 기타 농산물을 합치면 한해에 1천만 톤 생산하는 것으로 된다. 실제로 1980년 노동당6차대회를 맞으며 공표한 숫자는 1천만 톤이다. - 그럼에도 수수께끼와 같은 현상을 당시 체험한데 의하면 1980년대 들어서면서 식량부족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과대선전하기 좋아하는 북한도 이때부터는 한해 식량생산량을 공표하지 않았다. - 수령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으로 불타오르던 20대 청년 과학자인 필자는 안호한 연구소를 떠나 생산현장에 나가게 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옥수수연구소 분소인 룡덕분장(함경북도 화성군 룡덕리)에, 1986-1990년까지는 량강도 김정숙 풍향리에서 현지시험을 진행하게 되었다. - 왜 종자도 좋고 땅과 기후도 좋은데 농사가 안될 가?! 이는 외부세계에서보다 당사자인 우리가 더욱 절실하게 던진 질문이다. 정보당 10톤 날 수 있는 종자가 생산현장에서 3톤 즉 30% 정도밖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 현재는 10%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 고 있다. - 농민들에게 허심 탄의 물어보았다. 그들은 한마디로 말한다. <(중국처럼)개인농하면 되디요.> 정말 압록강 넘어 중국의 오곡들은 땅이 꺼져라 충실하게 보였다. 아니 바로 곁의 북한의 <개인뙈기밭>과 <텃밭>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 말이 아니라 수치로 말하는 과학자로서 시험을 해보았다. 농장(협동농장)에서 관리할 때 정당 1-2톤 나던 옥수수가 <개인농>을 해보니 7톤의 소출이 났다. 약 5배의 소출이라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사진> 압록강변의 시험포(김정숙군 풍향리 5반; 일명 보파리) 10-20년 연구해야 기존품종에 비해 1-3%의 증산효과 나는 종자를 개발하여 발명했다고 큰소리치는 데 비해 5배 즉 500%의 숫자는 과히 천문학적이었다. 종자연구가 문제가 아니라 경영방법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수치로 알게 되었다. 모름 직이 시험포가 아니라 전국에 도입하면 5배는 몰라도 2배의 증산은 이루어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 이 사실은 이미 거대한 중국대륙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탈북 후 중국체류기간 안 사실이지만 모택동 집단농장시절 2억 톤 농산량은 등소평의 개인농 정책으로 4억 톤으로 증산되었던 것이다. - 북한식량난 해결의 비법을 알게 되었고 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 가가 고민이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 밖에 해결할 주인공이 없다는 생각이 즉시 들었다. <이밥에 고깃국>, <쌀은 공산주의>라고 하신 인민의 어버이가 이 비법을 들으시면 얼마나 기뻐하실 가. 이렇게 몰입된 나는 집안 망한다는 갓 결혼한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제1호편지> 즉 김일성 앞으로가는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 날자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1990년 5월3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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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권박사가 북한에 보급해 준것으로 알고 있는데
북한에 뛰어난 박사들이 많은가 봅니다..
욕수수는 식용과 사료용으로 구분됩니다.
식용은 전분함량이 많고 니그닌함량이 적은 반면
사료용 옥수수는 니그닌함량이 높아야 대체로 높거나 아주 높아야
소우 경우 소화를 잘 시키죠...또한 비료의 공급 뿐 아니라 옥수수는
다량의 일조량과 더불어 수분공급을 필요로 합니다.
물을 계속해서 공급하면 수확량이 월등히 높고 옥수수의 질이 좋아집니다.
유전자가 확실히 뒷받침 되더라도 재배노력과 기술이 후지면 수확량이 형편없는
것이 옥수수죠...북한은 이제 단순히 체제변화를 통해 농민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서
옥수수 수확량을 늘려 식량을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넘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떤 제도를 정착시켜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정주영 회장처럼 모래밭에서 배만들겠다며 배를 수주하러 가는 것과
같은 마인드지만 농업을 알고 시장을 알기에 제가 볼땐 매우 현실적인
발전방향입니다...과거 차도 몇대없는 한국이 고속도로를 만든 것처럼...
나름 애국심으로다 그편지를 했었네여~~뒷일은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래서 민복이햄 한국에 오게되었나보네여.
참나~~웃다가 술퍼지는 스토리이근요...여튼 존경합니다. 그 애국심...
지금 북한 제일 급한것은 체제개혁입니다.
체제개혁하고 방법을 달리하지않는이상 억만금을 붙는다해도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두 북한서 조구만 텃밭이 있었는데 그 조그마한 땅때귀에 가울에시금치심어
봄시금치먹고 그땅에 이랑에감자 고랑엔옥수수 6월에 감자캐고 8월에 옥수수
사이에 김장용 무,배추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빼곡히 심어도 매해 풍년만 듭니다.왜? 내집일이니까. 열심히하니까...
체제개혁만 된다면 다음일은 농부들이 서서히 알아서들 다 잘할것입니다.
현재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북에 나무를 심고있는데 그것역시 북한주민들을
말려죽이는 행위입니다.
산에 뙈기받에 옥수수심어서 연명하던 북한사람들 아무대책도 안세워주고
그들의 터전에다 나무를 심어놓으면 그사람들 어디서 식량을 해결하나여?
지금 북한에 나무심는 행태는 북한주민들의 쪽박마저 깨는 행태입니다.
아무리 것지않다한들 북한에관한문제는 탈북인들과 상의함이 맞다고봅니다.
이말은 북한 로하는사람 1인에에 빈대먹는 기생충이 9홉마리라는뜻이다.
그 이유는 북한체제구조상 일하는사람보다도 지도하고 감시하고 통제하는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집단경리체계를 개인경리체계로 바꾼다면 관리위원장,리당위원장,작업반장이
왜?필요할가?농사나 짖는데 보안원,보위원이 왜필요할가?
그외에도 리당 부름꾼들에서 관리위원회 심부름꾼들 많고많은 공무원들.....
다~~~농민들이 벌어 먹여살려야하는 빈대새키들인것이다.
공장기업소들도 실정은 매한가지...........
북한이 잘살기위해서는 제도개혁이 우선이며 그 제도개혁을 하기위하여서는
먼저 정권교체가 선행이 되어야 한다.
북한도 현재의 정권구조가 경제를 발전시키기위해서는 불합리한 구조라는것을
모름지기 알고들있으리라고 본다.
그러함에도 제도개혁을 못하는이유는 이제와서 개혁을 하면 북한의 인민들이
정권을 향해 머라고 하겟는가?
북한의 인민들은 아마도...<당신들 지금까지 잘못된정치를 우리에게 강요하여왓는가?
더이상 당신들을 못믿겟다... 힘들게 개혁할바치고는 동족의나라 남한에 병합되자!.>
라고 할가봐 두려운것이다.
결국은 김일성정치의 패배를 인정하는것이다.
김일성의 손자인 김정은이 과연 할아버,아버지의 정치적 실패를 인정할수가 있겠는가?
그것을 인정하는순간 정은은 정권에서 하야하고 인민의 판결을 받아야하는데..........
이것이 북한의 정권이 교체되어야하는 이유이다.....
동족상잔의 원훙, 북한 경제와 정책실패의 원흉 김씨일가가 타도되야하는 이유이다...
정권교체가 없는 북한에대한 지원은 밑빠진항아리에 물붙기이며 헛짖거리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