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사람들을 좋아하는가'라는 국제조사에서 항상 1~5등 사이에 들어가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인이다. 20세기에 큰 침략 전쟁을 여러 차례 일으키고 他민족에게 대학살을 자행하였던 두 나라 국민들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장점이 많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75년 4월 어느 날 저녁 일본을 혼자서 여행하던 나는 유명한 해안 휴양지 아타미(熱海)의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근처의 여관에 들었다. 저녁을 먹을 겸 도시 구경에 나섰다.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여관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차'했다. 여관 이름을 기억해두지 않았다. 명함이나 성냥 곽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우선 택시를 잡아탔다.
'아다미에 여관이 몇 개입니까.'
'400개입니다.'
택시로 그 400개를 뒤지다간 날이 샐 것 같았다. 택시 운전자에게 여관을 잊어버렸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말했다.
'같이 찾아봅시다. 그런데 역으로 돌아가서 거꾸로 내려옵시다.'
택시기사는 역에서 바다쪽으로 내려오면서 골목을 누볐다. 여관마다 들른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아닌데요.'
'혹시 바다가 보였습니까.'
'기억이 안나요.'
이런 식으로 한 시간 정도 헤맨 끝에 눈에 익은 한 여관 앞에 닿았다. 내 여관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택시 기사도 '야, 참 잘 되었습니다'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요금도 더 요구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첫 일본여행에서 만났던 이 택시 기사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만큼 일본 홍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 택시 기사가 나에게 베풀어준 好意(호의)가 몇 배의 효과를 보고 있다.
일본회사와 오랫동안 거래하면서 돈을 벌어온 한 기업인은 “나는 일본이라고 하면 세 단어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정직, 청결, 친절. 평소 생활이 청결하니 정직하고 친절한 것이다. 淸潔은 남에 대한 배려이다. 친절의 표현이 청결이다. 청결하지 않는 음식점이 친절할 순 없다. 청결은 형식이고 정직은 내용이다. 내용에서 형식이 생기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수년 전 일본 북해도 삿포로 근방의 新치도세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4박5일 동안 尙美會(상미회) 여행단을 태우고 다녔던 관광버스 운전사는 30대의 말 없는 사나이였다. 눈이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그렇게 부드럽게 달릴 수가 없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暴雪(폭설)과 한파 속의 장거리 운전을 해준 것이 고마워 여행객들이 헤어질 때 박수를 쳤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헤어졌던 운전사가 뛰어오더니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짓고 있는 尙美會 여행단을 찾았다.
버스를 주차장으로 몰고가서 정리하다가 손님이 놓친 물건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운전사는 아마도 한 30분간 차를 몰고 가 車內 청소를 하다가 이 안경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달려온 듯했다. 그가 내어놓은 것은 돋보기 안경이었다.
주인을 찾아보니 40代 주부가 버스 안에 놓고 내린 안경이었다. 이 주부는 그때까지도 놓고 내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년 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한 여성이 버스 안에 막 구입한 화장품 세트를 놓고 내렸다. 버스 회사에 연락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한 평범한 일본인 운전자의 정직과 친절은 수십 명의 한국인을 감동시켰다. 이런 친절이 국제경쟁력이다. 안경을 찾은 한국인은 자주 일본을 찾을 것이고, 화장품을 잃은 한국인은 이탈리아에 대한 險談(험담)을 열심히 하고 다닐 것이다.
나는 일본의 혼슈 남단 야마구치縣의 新야마구치역에서 하카다(후쿠오카)로 가는 新幹線 열차를 타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깨끗했다. 종착역에 가까이 왔으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여 지저분한 법인데 출발역인 것처럼 청결했다.
나는 KTX 열차를 자주 탄다. 특실 화장실도 출발하여 몇 정거장 가지 않으면 지저분해진다. 사용하는 이들도 함부로이고 열차 관리자들도 청소를 소홀히 한다. 화장실이 그 모양이니 KTX 전체가 불결해 보인다.
일본의 新幹線보다도 40년이 지나 개통했으면 모든 면에서 더 좋아야 한다. 定時출발률도 더 높아야 하고 더 깨끗하고 더 편해야 한다. KTX는 7~10분 연발착이 보통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지도 않다. 新幹線은 아마도 1년분 연발착 시간을 다 모아도 10분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은 무슨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종업원들의 정성, 서비스 정신의 문제이다. 그러니 더 창피한 일이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러서 안하는 것이니 더 문제인 것이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일자리와 공공장소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은 인간의 기본이다. 이 기본을 가르치는 일이 국민교육이고 公民(공민)윤리이다. KTX의 특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한국의 지도층일 것이다. 그들이 화장실을 깨끗하게 이용할 줄 모른다면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불까지 올라도 一流국가가 될 순 없다.
2006년 초 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도시인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카르미네 성당을 찾아가 르네상스 畵風(화풍)의 선구자 마사초의 15세기 프레스코 벽화를 구경했다. 이 벽화는 베드로의 일생을 그린 것인데 도입부에 '아담과 이브의 추방'이란 유명한 그림이 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드 다 빈치는 마사초의 그림 기법을 연구하기 위하여 이 성당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尙美會 관광단이 이 성당에서 곤욕을 치렀다. 입장을 기다리면서 화장실에 갔다온 여성 한 분이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도저히 용변을 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남자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도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취재차 가 보았다. 중국 화장실 수준이었다. 일행중의 한 분이 가이드를 통해서 성당 관리자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켜달라'고 했더니 답은 '청소부가 나오지 않았다'였다. 비싼 입장료는 어디 쓰는지, 이 세계적 문화재가 불쌍했다.
문득 그 며칠 전에 다녀왔던 일본 니가타 지방의 청결한 화장실이 생각났다. '일본인은 청결을 善, 불결을 惡으로 생각한다'는 말도 떠올랐다. 왜 이탈리아에선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지 알 듯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더럽고 불친절하고 비싸며 정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세계 여론으로 확산된 듯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조상들이 워낙 위대했으므로 공짜로 어마어마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오늘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조상들의 위대한 유산이 거대한 공짜 자산이다.
문득 중동에서 돌아온 한국인의 말이 생각났다.
'중동에선 석유가 천벌이 되고 있습니다. 석유라는 공짜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은 의외로 기후가 나쁘고 자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그렇고, 영국과 독일도 자원이 부족한 편이다. 인간은 공짜를 얻게 될 때 타락하고 어려운 처지에 던져질 때 총력을 다해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강해지고 부유해진다.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주변 나라를 신하국가로 통치한 이른바 황제국가 즉 제국주의의 시조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 잡초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5-07 12:50:06
- 잡초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5-07 12:5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