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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명철 NK워치 대표 -3
Korea, Republic of 림일작가 0 527 2015-10-28 05:45:38

          

 

- 휴가 때 심경변화를 느꼈다던데.

“10년 군사복무기간 8년 만에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갔었다. 식량배급이 되지 않아 아사자가 속출하던 때이다. 김정일 정치에 분노를 느낀 부친은 몇 달 전 국가정책을 비판하며 자살했다. 충격이었다. 이때 간접적으로 내게 감시가 붙었음을 눈치 챘다.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정치범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내 아버지가 정치범이 되었던 것이다. 즉시 부대로 복귀한 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에게 절대 충성하겠다는 내용의 자필혈서로 결의를 다졌다. 우선 나를 감시하는 눈길을 떼놔야겠다는 생각이 우세했다.”

- 고민을 많이 했겠다.

“그렇다. 내가 정치범이 누군지 몰랐다면 탈출생각을 안했거나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8년간 짐승처럼 일하다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했다. 오로지 당과 수령을 비판하고 배신했다는 이유로 세상과 격리된 악마의 소굴에서 생을 마치는 수감자들이 정치범인데 나도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 탈북 경로를 말해 달라.

“나는 경비대 운전병이었다. 수용소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이 더러운 김정일 독재국가를 벗어나겠다는 최종결단을 내렸다. 그때 인간적으로 동정이 많이 갔던 수감자 2명과 함께 차를 타고 수용소를 벗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못가 겁이 나서인지 나와의 동행을 거부했다.”

- 그때가 언제인가?

“1994년 9월이다. 어두운 밤 압록강을 넘어 중국 땅에 발을 디뎠다. 아마도 북중국경 연선에서 인민군 군복차림에 완전무장하고 탈영한 사례가 처음인줄 안다. 놀랍게도 중국의 국경지역에 나에 대한 수배전단이 인가마다 뿌려졌다. 자세한 경로는 한중외교관계상 생략하겠다. 그해 10월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 서울의 좋은 직장에서 일한 줄 안다.

“조사기관에서 상세한 조사를 마치고 이듬해인 1995년 농협은행에 취업하였다. 지금 같으면 정말 힘들었겠는데 당시는 1년에 20~30명 정도 탈북민이 입국하던 시대이다. 농협에서 대리에서부터 과장까지 15년간 직장생활을 하였고 뭔가 새로운 사업을 꿈꾸어 2009년 희망퇴직을 하였다.”

- 어떤 사업을 하였는가?

“한 곳의 직장생활 15년이면 지긋지긋한 것도 사실이다. 뭔가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고 싶었다. 선배사업가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수산물유통사업, 치킨체인점 등을 하였다. 돈 벌 때도 있었지만 못 벌 때가 더 많았다. 5년간 몸으로 부딪치면서 이런 일 저런 일 해보면서 느낀 점은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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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림일작가 ip1 2015-10-28 05:51:45
    사진은 베를린시청 부설 인권도서관 내부입니다. 여기에는 과거 동독에서 이뤄진 인권탄압행위를 기록한 책들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분단시절 동독귀순자들이 서독에 와서 쓴 책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해설원의 말에 의하면 서독정부에서는 그런 책 출판지원을 적극적으로 하였으면 서독주민들의 구독률이나 관심도 높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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