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론. 그것은 무엇인가.(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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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런 정치적인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글에 불쾌함을 느끼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그래도 '쓰겠다'고 했던 글이고, 혹시나 글을 보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까하여 글을 올립니다. 진보와 보수, 양측의 싸움을 끌어내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는 진보이고, 자본주의는 보수입니다. 그리고 지난 냉전시대에 이것은 국제관계에서 기본 논리로 여겨졌습니다. 그렇지만 '국가'단위로 한정짓는다면? 한반도로 한정짓는다면, 어디가 보수이고 어디가 진보일까요? 해방직후 통일정부에 대한 열망은 이미 소(비에트)연(방)을 구축한 러시아와 미국의 분할 주둔으로 인해 좌절되었습니다. 당시 한반도를 지배하던 일본세력이 '자본주의'의 모습을 띄고 왔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은 큰 편이었죠.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남북한은 분할되었습니다. 남한에는 미국의 입김이 강한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것이 이승만 정부입니다. 정권을 잡은 이승만은 권력을 보다 확고히하기위해서 독재체제를 갖추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요, 10년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4.19학생운동에 의해 붕괴되었습니다. 이후 남한은 내각제의 움직임을 갖추려했지만, 박정희의 5.18군사쿠데타에 의해 다시금 독재정권의 길을 들어서게 됩니다. 79년 박정희 사망 후 독재청산을 시도했지만, 전두환에 의해 권력은 다시 군부가 차지하게 됩니다. 이에 반발한 움직임이 광주에서 있었으나, 무력진압하죠. 그리고 이 일은 언론통제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3번의 독재정권에 신물이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시위를 했고, 시위자들에 대한 고문치사가 알려지자 전국적인 반발이 일어났으며, 이때 이한열학생이 최루탄에 직격당해 사망하면서 시위는 극에 달합니다. 결국 전두환은 직선제 개헌을 통해 권력에서 물러날 것을 이야기하죠.(이전까지 대통령은 국민이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선정되었죠.) 이때까지의 이야기는 들은 이야기입니다. 직선제 당시 유력후보는 4명이었습니다. 전두환의 군대동기이자 군사정권의 2인자였던 노태우와 경상도 정치세력을 갖고 있던 김영삼, 전라도 기반으로 민주화세력의 선봉이었던 김대중, 박정희시절의 실세로서 전두환과 척을 졌던 김종필... 그러나 선거 결과 민주화를 바라던 사람들의 투표는 세후보로 갈리고 노태우가 당선됩니다. 그러나 이듬해 총선에서 노태우측 당선자가 너무나도 적어 국정운영이 어렵게 됩니다. 이때 3당합당이 일어납니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합당을 하게 된 것이죠. 거대 여당의 탄생입니다. 이후 거의 10년간 이 거대여당이 집권합니다. 집권의 끝은 IMF였으며, 이 때가 되서야 겨우 군사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에 대해서 처벌을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며, 그 실체가 들어나게 됩니다. 남한은 세차례의 10년남짓한 독재정권이 지속되었고, 그 잔재가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북한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난 60년간 줄곧, 단 하나의 독재정권이 지속되어 왔으니까요. 북한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공산주의를 추구하지만, 실제적으로 획득한 '부'는 공산주의 이념에 맞게 분배되지 않고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집중되어있죠. 공산주의를 표방할 뿐,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소수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 북한이며, 모든 사회 지도계층에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배치한 완전한 독점적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진보와 보수의 의미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니며,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공산주의 통제경제'가 아닙니다. 권력을 갖고 체제를 바꾸지 않으려는 소수의 권력자가 보수고, 이 권력에 대항하는 대항세력이 진보입니다. 남한의 정부는 보수이며, 진보는 빨갱이고, 그러기에 김정일이 진보세력이라는 연결점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는 세력이 보수입니다. 현재의 진보세력들은 북한과의 통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북한의 인권에 신경 쓸 사람들은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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