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들의 눈에 비친 임수경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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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라고 하시는 분들이 임수경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보여주는 글 이라고 생각됩니다. 출쳐는 데일리안 토론방으로 알고있습니다. - 쓰레기통의 "통일의 꽃"- (2006년 1월24일) 다시 임수경이 언론에 나왔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피는 ´통일의 꽃´이다, 몇년 전에는 518 전야제에 참가한 화염병386들이 술집에서 아가씨들을 끼고 광란의 축제를 벌인 것을 폭로하는 그녀의 글이 인터넷에 도배되더니 작년에는 아들의 죽음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녀의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을 때 인터넷에서 악플을 단 네티즌들을 고소했다고 한다, 그녀는 연예인보다도 더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정치인보다도 더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북한에서도 통일의 꽃으로 불리며 영웅 대접을 받고, 남한에서는 반미를 부르짖는 인간들에 의해 통일의 물꼬를 튼 열사로 추대받으면서도 그녀의 선택은 가장 친미적이었다, 지금의 열우당 인간들 처럼 가장 이중적이었다, 이혼과 미국유학, 방송 출연, 외국 휴양지에서의 아들 영어연수, 그녀는 대한민국의 보통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을 부르짖는 주사파 빨갱이면서 그녀는 가장 부르좌지적인 삶을 살아온 셈이다, 그녀의 아들 죽음에 악플을 단 네티즌들은 그녀의 비극을 조롱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을 조롱한 것이다, 1989년 당시 전대협 의장 임종석의 명령으로 평양축전에 참가를 결정했을 때 그녀는 대학 4년생이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입북이 무엇을 뜻하지는 알만한 나이이다, 불법입북이 그녀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이며 그녀의 가족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국민들에게는 어떤 충격을 주는지 그녀가 몰랐다면 그녀는 멍청이일 것이다, 그녀의 입북은 대한민국 현행법을 짓밟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법을 능멸하는 것으로서 그녀의 출세의 발판을 삼았고, 대한민국을 능멸하고 법을 우습게 아는 무리들에 의해 영웅으로 받들어지며 한세상 호의호식했다, 법을 능멸한 자가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린다면 그것은 정의가 없는 세상이다,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으로 밀입북한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돌팔매질이었다, 북한에서 평양축전에 참가하여 거대한 운동장의 카드색션에 열광의 눈물을 흘릴 때 남한에서는 북한의 만행에 혈육을 잃은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법과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짓밟고 조롱하고 능멸했다, 북한의 마수에 장단을 맞춤으로서 그녀는 대한민국의 법보다는 북녁의 위대한 수령법을 더 존중했으므로 우익에게는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고, 518 단란주점사건 공개로 인하여 좌익 일부에게는 배신자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들이 죽었을 때 그녀에게 위로를 보내는 사람보다 그녀를 조롱하고 능멸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투옥과 이혼과 자식의 죽음이라는 그녀의 평탄하지 못한 삶, 그녀의 인생은 임종석이라는 인간을 만남으로서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났고 대한민국의 운명은 화염병386 주사파들과 상봉함으로서 팔자도 더러운 팔자가 되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자기가 뿌린 자기의 운명인 것을, 증오와 멸시는 본디 우리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북한에서 묻혀온 세면바리였다, 그들이 숭상하는 주체사상과 혁명에서 태어난 그들의 새끼였다, 그러나 그 증오가 자라나 그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을 때 주체사상도, 통일의 꽃으로 떠받치던 좌익무리들도 그녀를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민주´와 ´통일´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던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것인가, 그녀도 이제 사십을 코 앞에 바라보는 나이에 들면서 이제는 불혹에 들려는 것인가, 남편도 떠나고 아들도 잃어버린 허허벌판에서 최후의 순간에 그녀가 기댈 곳은 결국 대한민국의 ´법´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인가, 그녀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두 눈을 똑똑히 뜨고 당당하게 쳐다볼 수 있을까, 돈만 있으면 금강산에도 가지만 정작 만나야 할 사람, 보고싶은 사람들은 만날 수가 없고, 그녀가 판문점을 넘으면서 몸에 감았던 태극기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오리무중 행방불명의 운명을 맞고 있다, 그 때 외치던 통일은 어디 있는가, 그 때 주장하던 민족은 또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에도 통일은 찾을 수가 없고 위대한 수령만이 난무하고 있을 뿐, 굶어죽는 북녁의 민족과 자살하는 남녁의 민족이 있을 뿐, 이산가족의 애끊는, 울부짖는 민족만이 있을 뿐, 대한민국의 법은 대한민국의 법을 존중하는 자에게만 말을 하고, 대한민국 국민은 그녀의 ´무법´과 ´불법´을 조롱하고 능멸한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법 앞에 서기 전에 대한민국의 역사 앞에 조아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법 앞에 피해자임을 호소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역사 앞에 엎드려 가해자였음을 참회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족과 통일´이라는 환각에서 깨어나 냉철한 이성으로 돌아와 거대한 사기극 앞에 서야 한다, 아무리 다가가도 실체는 어디에도 없는 신기루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통일의 꽃´은 한때의 신기루였고 빨갱이의 꽃이었을 뿐, 이제는 말라 삐틀어져 쓰레기통에 버려진 썩은 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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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인민들은 자유대한의 새로운모습을 느꼈다.." 임수경씨가 비둘기로님의 글을 본다면 상당한 위로를 받지않을까 싶습니다.
북한의경직된사고와 남한의 민주화.
두던하는건 아니고 사실나도 그당시 대학생이였는데 북한에게는 득보다실이더큰것같습니다.
왜냐면 북한대학생들이 인식이 바뀌기시작하였으니까요?
임수경씨를 이러의미에서는 적진에 뛰여든 여군장이라할수 있죠.
80년대 남한의발전상과 북한의모습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평화의 새청년들의 모습.
나도 기회가되면 88축전에 오려고 했는데 길이없어 못왔죠.
보통시민님이 말씀하시듯,본인이 다시 대중앞에 불려나오기를 원하지 않을 것 같고,정일이와 남한내 좌파단체에 이용돼다 버려지고,나머지에게 조롱받는 외로운 처지이니깐...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그녀의 방북을 어떻게 느꼈는지는 100% 다 알지는 못하지만,여전히 북녘땅에는 자신이 보고,듣고,느낀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없고...남한내에서 당시로서는 그행위가 법적으로 불법이였다지만,한국에 돌아와서 당시의 사법적 판단에 따라 책임을 진걸로 알고있어요.
어떤이유에서건,그녀를 싫어하건,좋아하건...그녀가 이제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그녀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임수경이를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 그녀는 20년전 그날에도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이세상 어느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위대한 통일영웅이다.
우리는 임수경언니를 생각할때면 마음이 아프다, 그녀가 왜 자기안락만을 생각할줄 모르고 자기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줄 모르겠는가,
그가 그렇게 장한 일을 해놓고도 쓸쓸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우리의 마음은 미여지듯 아프다, 임수경이는 그누구의 말밥에 올라서는 안될 위대한 통일영웅이다
또한 그녀는 우리의 심장속에 아름다운 통일의 꽃으로 더욱 활짝 피여있을 것이다.
그것이 궁금하네...
임숙영의 북한입국은 당신들이 탈출하여 온 이나라에 있어서는 분명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대한민국국민인 임숙영에 대한 모든문제는 한국의 법으로 행하고 또 한국의정서에서 평가되여야합니다
남조선의 실태파악은 13차가아니라 518광주봉기때였습니다.
임숙영의 북행은 당시북한주민들을 더욱더 김부자의노예로전락시킨 발판으로된것입니다
하다면 현재 안보강연다니는 강사들의거침없는 말주변에 북한에대한새로운인식주었겠군요...
세세하게 설명드리자면 길지만,간단히 요약 정리를 한다면,한국은많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희생속에, 87년이 돼서야 국민들이 자신들의 최고지도자를 자신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서 뽑을 수 있게 돼었읍니다.
그결과 대통령이 됀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회,언론,학교,산업현장 등에서 그동안 강제로 억눌려져 왔던 여러가지 민주적 요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말하자면 체제변혁기를 맞이하게 돼었고요.
대통령이나 공권력의 권위는 도전받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극단적인 투쟁을 하는 여러단체들은 늘어만 가던 상황이었고,그런가운데 이른바 '하나회'라고 하는 정치군인들이 일선부대의 주요지휘관으로 존재해 있을때에요.
노태우 대통령자신이 79년12월에 헌정을 중지시키는 군사쿠테타에 11사단장으로서 참여한 군인출신이고,심지어 하나회의 창립 맴버였어요. 그런 그로서는 당시 한국의 정치,사회상황을 후배군인들이 어떻게 인식할지는 아마도 그가 제일 잘 알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 상황속에서,임수경이라는 여대생이 평양으로 간 겁니다.
임수경의 평양에서의 활동을 북한동포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몰라도,tv나 언론으로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는 한국국민들로서는,안그래도 살얼판같은 국내정치현실에서, 우려와 걱정을하게 만드는 철없는 행동으로 비추어 질수 밖에 없었죠.
잠안와서 들어왔는데 님이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위에 글올리신분 문법이 남한태생 아닙니다.
남한사람 임수경과 임숙영 구분못하는 사람없습니다. 아니 북한사람 이라도 마찬가지겠지만요...
따라서 한글 맞춤법이나 글쓰는것으로 봐서 한글교육 못받은 타동네 사람
이라는 판단입니다. 님도 남한사시니깐 충분히 구분하시겠지만 위에글의 어법은 전형적인 북한쪽 어법입니다.그런데 북한분들이 림수경을 임숙영이라고 쓸까요?....
당시 남한의 노태우정부 역시 전임 전두환 정권과 마찬가지로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언론통제를 통한 한정적인 정보만을 남한국민들에게 제공했으므로 적대적 남북관계에 놓여있던 거의 대다수 국민들은 임수경 방북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수 없었습니다.아니 그당시 남한사회 전반적인 흐름이었던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국민 대다수의여론은 통일에 대한 정확한 상황판단력이 없는 철없는 여대생이 북한김일성정권의 술수에 놀아나 북에서 꼭두각시 노릇하는구나 하는 걱정과 염려가 더 많았던게 사실입니다.또한 김일성독재체제하의 북한에가서 자칫하면 신체의 위협을 받을수도 있는데 임수경이 안죽을려면 김일성이 시키는대로 하는수 밖에 없을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그게 바로 북한의 노림수 였고 여기에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여대생이 천지분간 못하고 좌파운동권들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임수경의 방북은 거의 대다수의 남한국민들로 부터 환영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임수경의 방북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살아있는 북한정권의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통일에 대한 남남갈등만 더부추기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임수경이 방북당시 보여준 성숙하고도 균형잡힌 태도는 당시의 그녀의 행동을 예의주시 하고 있었던 남한의 대북정보당국자들 조차도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후일 나중에 그녀의 북한에서의 행적들 시간이 경과하면서 하나둘 드러나기시작하면서 그녀가 북한에서 보여준 행동들 조금도 나무랄데 없었다는 평가를 차후 받기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목숨건(?) 방북성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이러니 하게도 남한으로 들어온 님과같은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에 의해 내려지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임수경 방북의 산증인들이며 여러분들에 의해 내려지는 평가가 그대로 임수경방북의 최종목적지 입니다.
한여대생의 통일에 대한 가식없는 순수한열정 반드시 차후에 이루어질 통일에 밑거름이 될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않으며 남북 대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마음가짐 어떠해야 되는가 하는것을 보여준 살아있는 표본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당시 남한에 살면서도 임수경의 한국에서의 소식을 거의 들을 수 없었거든요. 물론 그때 제가 수도 사단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음에도요. 물론 군발이라 바깥세상을 거의 알 수 없었던 점도 있었지만요...
헤쳐보시지요 그럼이번에는 통일이되겠군요
그 후 갔다는 소식만 듣고 와선 처벌 받겠지 하고 사실 모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질문을 드렸던 겁니다. 최근 북한관련 다큐를 보며 한국을 방문했던 북한의 어린이들이나 이산가족 상봉자들, 선수들 기타 등등.. 많은 북한 분들 북에 가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분들도 님과 같은 생각을 하시겠지요?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
감히 임수경의 영향력과 비교가 안되겠지만요.
둘다 남북은 하나다라는 생각을 심어준 동기가 되었지요.
물론 순수한 통일에 대한 열정에 의한 방북과 정치적 선전의 목적을 지닌
방남의 의도는 달랐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