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비용은 약 18%로 복지강국인 노르웨이의 16.2%보다 높으며 한국에 비해서도 5배 가랑 많다. 이처럼 복지재정의 대부분을 연금에 쏟아붓다 보니 정부재정은 어려워졌고 국민은 일을 열심히 하려 들기보다는 연금 개시 요건만 충족하면 즉시 퇴직을 해 일을 안하면서 받는 두둑한 연금의 달콤함을 즐기게 됐다.

그리스 정부가 ‘너무 좋은’ 제도를 만들어 놓고 이를 책임지다 보니 결국 국가가 빚을 내서 연금을 지급하는 상황도 나타났다. 이렇게 증가된 국가채무는 GDP의 150%에 육박한 그리스가 전세계를 뒤흔드는 국가 재정위기의 도화선이 되면서 세계적 조롱거리가 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서 유로라는 공통 통화도 오히려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만일 드라크마가 사용되고 있었더라면 그리스는 자국 화폐를 화끈하게(?) 평가절하해 자국 제품의 국제 가격을 싸게 만들고 수출을 늘릴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드라크마 가치가 절하되면 싼 관광비용 덕분에 외국 관광객도 크게 증가해 외화벌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화 부족으로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는 동시에 원화를 대폭 평가절하해 수출품 가격을 싸게 만들 수가 있었고 이렇게 증가된 수출과 감소한 수입 덕분에 1998년 400억달러가 넘는 수준의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올릴 수가 있었다. 이러한 대규모 흑자는 IMF 지원 자금의 조기상환을 가능케 했고 위기 극복의 동력이 됐다.

 
그러나 그리스는 다르다. 자국의 통화가 따로 없이 유로를 공통 통화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자국 화폐 평가절하는 아예 불가능하다. 더구나 유로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도 없기 때문에 지원을 받더라도 이를 갚을 수 있는 대규모 흑자를 내기가 어렵다. 이런 이유로 미스터 둠(Mr. Doom)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같은 학자는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키고 드라크마를 부활시킨 후 대규모 평가절하를 통한 구조조정과 무역흑자를 유도해 경제회생을 도모하도록 하는 게 낫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물론 너무도 어렵게 이뤄낸 유럽 통합이기에 막상 그리스를 탈퇴시킬 경우 이것이 신호탄이 돼 통합이 와해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논의가 주춤하는 분위기지만 이러한 논의가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충격을 주고 있다.

 
카오스 이론에서 제시하는 나비효과를 보면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스 좌파정부는 국민의 노후를 안전하게 보장해 복지를 제고하겠다는 ‘선한 의도’로 ‘후한 연금제도’를 도입했고, 이에 대해 국민은 열광적 지지를 보냈다. 포퓰리즘이 표(票)퓰리즘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상당 기간 정부와 국민은 밀월(蜜月)을 즐겼다.

그러나 이제 잔치는 끝났다. 그리스가 도입한 ‘지속불가능한’ 복지제도로 인해 세계 경제는 추락하고 50여년에 걸쳐 어렵게 이뤄낸 유럽 통합의 와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복지 포퓰리즘’과 ‘표(票)퓰리즘’이 국가는 물론 세계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그리스 사태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