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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탈북자는 누구?
6 553 2005-10-23 02:47:19
대부분 자본주의 적응못하고 겉돌아


△ 북한 인민군 군의관 출신 한의사 석영환씨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에 있는 자신의 한의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탈북자들이 살아가야 할 남쪽 땅의 현실은 결코 녹녹지 않다. 섣불리 사업에 나섰다 정착지원금을 모두 날리기 일쑤다. 북한에서의 경력이나 학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마땅한 직업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들은 추락의 나락에 빠져 들며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제3의 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공하는 탈북자는 누구? = 소수의 탈북자들만이 남쪽 사회에서 경제적·정신적으로 적응하는 데 성공한다. 윤인진 교수(고려대 사회학과)는 이들 대부분이 동유럽 유학생, 해외주재 외교관, 외화벌이 요원 출신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노출되어 비슷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이전에 경험했기 때문에 적응 속도가 빠르다.

또다른 성공 사례는 대학교육을 남쪽에서 다시 받았거나 또는 처음부터 받은 사람이다. 이들은 대학을 다니며 남쪽사회에서 생활하기에 필요한 상식, 전문지식, 대인관계의 요령을 익히고 사무직,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한의원 원장 박수현(36)씨는 1남1녀의 아버지다. 비슷한 나이의 가장들처럼 커가는 아이들 교육이 걱정이다. 그는 재충전과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한의학과 대학원에도 다닌다. 조금 남아 있는 북쪽 말투를 빼면 이젠 그가 탈북자 출신임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그는 남쪽에 와서 1년 가량 직장 생활을 하다 1995년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처음 시험을 봤는데 채점하는 조교들이 제 글씨체부터 낯설어해요. 시험은 한번에 통과하지 못하고 대부분 재시를 봤습니다.”

서른이 다 되어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는 “탈북자들이 너무 급하다. 한번에 돈도 벌고 사회적 지위도 이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의학과를 다니며 6년 동안 미래에 대해 장기투자를 한 셈이다. 그는 “한의원 원장 소리를 들으니 사회적 대접이 달라지더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북한 인민군 군의관 출신 석영환(37)씨도 지난달 5일 한의원을 서울 종로구 종로5가에 개업했다. 95년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하고 고려의사(한의사) 자격을 딴 석씨는 군의관으로 지내다 98년 10월에 휴전선을 넘었다. 그는 북쪽 고려의학과 남쪽 한의학을 함께 공부한 사람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쪽에 정착한 지 1년 뒤부터 교회에서 만난 한의대 교수들한테서 대학 교재를 추천받아 동네 도서관에서 밤을 새기 시작했다. 남쪽에서 활동하려면 다시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야만 한다. 석씨는 99년 대한한의학회 등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국가고시 응시자격을 얻었다.

시험 준비에 들어가자 한자투성이인 남쪽 한의학 교재를 읽는 게 고역이었다. “북쪽에선 기초한자 수준이었죠. 한 달 정도 도서관에서 옥편을 잡고 나니 조금 익숙해졌습니다.” 그는 북쪽 최고의 의학교육기관인 평양의학대학 고려학부에서 한의학을 공부한데다 남북한에서 한의사 자격을 인정받은 인물라는 소문이 퍼져 환자가 꽤 많아졌다.

◇ 다시 시작하는 사업가들 = 앞의 두 사람이 지식인 탈북자들의 모습이라면 강혁(34)씨는 자본가로 변신한 경우다. 대학 졸업 뒤 인터넷 기업 등 벤처기업에 주식 투자를 해 수억원을 번 그는 영화 제작에도 나섰다. 굳세게 산다고 해서 안씨에서 성을 강씨로까지 바꾼 그는 ‘네발가락’이란 조폭영화에 이어 북한의 수용소를 소재로 휴머니즘과 멜로를 복합한 작품 제작을 꿈꾸고 있다.

평양 청류관 요리사 출신 탈북자인 이정국(36)씨는 바닥부터 시작해 기업가로 출세한 경우다. 노래방 종업원, 주차관리원 등을 하던 이씨는 99년 12월 정부의 창업지원자금 1억원을 대출받아 경기도 이천에 북한식당 ‘청류관’을 개업했다. 지난해 2월에는 북한식품 제조회사 ‘청류종합식품’을 세워 북한식 김치 평양냉면 등을 호텔과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다. 그는 13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2개의 유통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한 외국 언론은 청류관 요리사가 남쪽에서 ‘요식업계의 제왕’으로 성공했다고 묘사했다.

◇ “친구보다 월급이 적다!” =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성공담보다는 자본주의의 비정한 현실에 상처받거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겉도는 사람들이 많다.

탈북자들의 정착과정을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도 그렇고 남쪽 사회의 편견도 그렇다. 그러나 뿌리내리기의 어려움을 이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문제는 탈북자들에게도 있다.

“북에서 온 사람들은 대한민국 와서 성공을 너무 크게 기대하죠. 일확천금을 꿈꾼다고 할까. 마음을 비우는 데 3~4년은 걸려요. 자본주의는 냉정한 사회거든요.” 한 탈북자는 주식 하다 돈을 날려보니까 북에서 강제수용소 갈 때랑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탈북자를 돕는 자원봉사자들은 “내놓고 이야기하긴 힘들지만 탈북자들의 자세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땅에서 살면서 ‘나라에서 직업도 구해주고 어떻게 살 대책을 세워주겠지’ 하는 의존적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탈북자들은 사무직이나 고임금 직종만을 선호하고 동료가 자신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 의존과 시행착오 = 한 자원봉사자는 “올해 초 탈북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줬는데 며칠만에 돈이 적다고 그만둬 버렸다”고 했다. 한달 일해봐야 100만원도 못 버는데 교회에서 주는 돈과 강연해서 받는 돈을 합치면 그만큼 벌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자원봉사자는 “최신 컬러 핸드폰이 나올 때마다 바꾸고 정착지원금을 받아 차부터 뽑는 사람들을 보며 왜 이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한테는 한 사람당 3700만원 가량인 정착지원금과 영구임대주택이 지원되고 원하는 대학 학과에 특례입학을 시켜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대로 만족스럽지 않다. 전문가들은 탈북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런 지원을 곱지 않게 보는 남쪽 내 다른 소외계층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우택 교수(연세대 의대 정신과)는 “일부 탈북자들이 자립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정부나 민간단체의 지원에 기대려는 것은 모든 결정을 내려주는 북한에서의 문화 탓”이라고 분석했다. 또 또 탈북자들이 월급을 비교하는 것도 북한에서처럼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것보다 분배가 공평한지 확인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탈북자 유금란(41)씨는 “일부 탈북자들이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작정 나무라지 말고 생소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일종의 시행착오로 봐달라”고 부탁했다. 특별취재팀 kor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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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언덕넘어 2005-10-24 00:08:00
    남한에서 직장 다니다가 퇴직하여 개인 사업하는 사람도 성공율이 아주 저조합니다.
    정착금은 절대 뭘 한답시고 열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적어도 3년은 적응기간으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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