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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은 늘 새롭지요.^^- 아! 제 글이 아닙니다.^^
Korea, Republic o 모차자 0 309 2012-11-13 01:14:35

 

대성리, 청평, 강촌, 춘천...

내 젊은 날들의 추억은 확실히 '경춘선'과 뗄레야 뗄 수 가 없는 관계다.


대학시절 수없이 MT를 갔던 곳도 경춘선이 지나는 곳이었고, 첫사랑과의 첫 여행도 춘천의

공지천 아니었던가.
청량리 역 시계탑 앞에서 경춘선을 타기 위해 모여 있는 수많은 타 대학생들 사이에서 자랑스럽게 우리 과의 과T를 입고 노래를 부르던 내 스므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낡은 기차..

통로까지 대학생들로 발디딜 틈 없이 앉아 있는데도 과자와 군것질거리를 담은 수레를 밀고 나타나는 홍익회 아저씨, 창문으로 들어오던 바람, 오래된 좌석 냄새, 기타소리, 웃음 소리....
그 시절 경춘선은 추억이고, 낭만이고, 젊음이고 사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이따금 그 낡은 기차가 그리웠었다.
춘천에 사는 동서네에 가기 위해서 신혼초에 어린 필규를 안고 십여년 만에 경춘선을 탔을때는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차장 아저씨 사진을 찍고 홍익회 아저씨의 모습을 카매라에 담으면서 흥분했었다.

그러나 모자를 쓰고 경례를 해 주던 차장 아저씨도, 수레를 밀고 다니는 홍익회 아저씨도, 검고 육중한 경춘선도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춘천까지 전철이 연결되면서 대성리 역이 사라지던 날, 신문에서 그 기사를 보면서 나는

내 젊음의 한 공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허무함과 슬픔을 느꼈었다.

더 편하고 더 빠르고 더 세련된 새 기차가 생겼다는 얘기가 들려왔지만 오래된 것들은 다 사라져 버리는 현실은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지난 일요일, 정말 오랜만에 다시 경춘선을 탈 기회가 있었다.
시댁 일가의 결혼식이 남춘천에서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차를 가지고 갈까 하다가 오는 길이 너무 막힐 것 같아 기차를 알아보았다.

용산에서 춘천까지 1시간 20여분  걸리는 '청춘 itx'라는 기차가 있었다. 게다가 2층 객실도 있었다. 평소에 기차를 탈 기회가 거의 없는 아이들은 열광했다. 남편은 발 빠르게 2층 객실을 예약했다.

돌아오는 기차는 좌석을 잡을 수 없었지만 가는 것 만이라도 2층에 앉아서 갈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더 없이 근사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결혼 10년만에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기차여행이었다.

더구나 새로 바뀐 경춘선이라니... 나도 설레고 흥분되었다. 예전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 풍경과 경치가 어디가겠어?

새 기차를 타고 지나는 추억의 장소들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기대되고 두근거렸다.

커다란 유모차에 커다란 짐 가방을 들고서 대야미역에서 전철을 타고 출발했다.

4호선으로 이촌역까지 가서 전철 중앙선으로 갈아타 한 정거장만 가면 용산역이었다.

오전 11시 40분 차라고 해서 10시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 남편이 '산본'역에서 외환은행에 들러야 한다고 해서 다 같이 내렸다. 그곳에서 한 15분 정도 지체한 후 다시 전철을 타고 출발했는데 이촌역에 내려서 중앙선을 갈아타려고 했더니 전철 배차 간격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전철 시간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남편이나 나나 신경쓰지 않고 일반 전철과 똑같으려니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용산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우리가 예약한 기차는 떠난 후 였다.

 

어찌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던지 "폭풍 잔소리"를 ^^ 퍼 붓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뭐가 달라지겠는가 싶어 꾹 참았다.
결국 15% 손해보고 환불 한 후 잠시 후에 떠나는 itx를 입석으로 끊었다. 2층 객실에 앉아서 가고 싶었던 아이들은  큰 불평 없이 기차 통로를 뛰어 다니며 놀았지만 나는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차창으로 지나는 경치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새 기차는 내게 전철과 다름 없어 보였다. 빈틈없이 현대적인 기차 안은 허튼 바람 한 점 새어들 여지가 없었다.
모든것이 반짝거리고 편리했지만 그리웠던 낭만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남편은 입석 칸에서 빈 자리를 하나 차지해 앉았고 나는  비교적 여유가 있던 화장실 앞 통로에 커다란 비닐을 깔고 세 아이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아이들은 비닐도 개의치 않고 신발까지 벗어 놓고 안방인양 좋아했다.

열림 버튼을 누르면 반 원형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자동 화장실도 신기하다며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과자가 나오는 자동판매기도 신기해서 나를 졸라 한 번 해 보는 것에도 열광하는 것이었다. 필규는 2층 객실도 올라가서 구경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즐거워 하니 정말 고맙고 다행이었지만 예전 경춘선의 추억에 빠져있을 사이도 없이 돌아다니는 세 아이들 시중 들기 바쁜 나는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 가 없었다.

 

간신히 춘천에 도착해서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시부모님을 터미널에 모셔드리고 다시 남춘천 역으로 왔는데 역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알고보니 이 날이 '춘천 마라톤'이 열린 날이었다.

마라톤을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 몰려든 마라토너들은 이미 기차역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간신히 입석 자리를 구해 기차에 올랐는데 바닥까지 앉아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용산까지 꼬박 서서 와야했다.

덥고, 다리 아프다고 보채는 아이들을 간신히 바닥에 앉혔지만 막내는 업어달라, 안아 달라하며 매달려  꼼짝없이 안고 왔다.
용산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대야미까지 오는 동안도 막내는 잠도 안자고 칭얼거렸다.

피곤하고 고단했던 것이다.

남편도 나도 어찌나 힘들었던지 다시는 경춘선 얘기도 꺼내기 싫을 정도였다.


기차를 탔다는 실감도 없이 그저 내내 사람으로 가득한 전철안에 실려서 오 간것 같은

기분이었다. 편리해지고 빨라지는 것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추억은 추억대로 지키고 살릴 수 있는 그런 개발이 그리웠다.

 

아이들과 정말 낡은 기차, 내가 알고 있는 그런 기차를 타러 다시 가야지..
동두천에서 출발해서 한탄강과 전곡을 지나는 기차도 있고, 아직 찾아보면 남아있는 오래된 기차들이 있으리라.
다 사라지기 전에 다 바뀌기 전에 아이들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한 기차 여행을 떠나 보리라.

 

그나저나 오랜만에 타 본 경춘선...

세월이 흘렀음을, 내 젊은 날도 다 지나간 추억뿐임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아쉬움만 잔뜩 안겨 주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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