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부엌 대신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밥이 되고 반찬이 만들어지는 곳.’
탈북자 최금희(22·사진) 씨는 북한인권국제대회 인권에세이 공모전에서 가작으로 입상한 수기 ‘나는 누구인가’에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최 씨는 9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대회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일은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탈북한 최 씨 가족은 중국과 미얀마를 거쳐 2001년 한국에 입국했다. 다음은 에세이 요약.
“ 우리 가족은 1997년 두만강을 건넜다. 우리는 1999년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들어갔지만 대사관 직원은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일본에 친척이 있어서 우리는 자그마한 배를 살 수 있었다. 그 해 12월 말쯤에 우리 여섯 식구는 산둥(山東) 반도에서 목숨을 건 한국행 항해를 시작했다.
서해로 나온 첫날 물을 퍼내는 손잡이가 고장 났다. 빠른 속도로 물이 찼다. 물을 퍼내던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2m나 되는 파도가 배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바다로 나온 지 3일째 되던 날 한국으로 가기보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는 바닷물에 젖어 희미하게 나오는 손전등을 쥐고 ‘살려주세요!’를 외쳤다. ‘하나님 난 죽기 싫습니다. 아직 어립니다. 한국 안 가도 좋으니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저 멀리서 밝은 빛을 내뿜으면서 배 한 척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배가 우리 쪽으로 오는 시간은 일년과도 같았다. 그 배는 중국 어선이었다. 우리가 탄 고깃배가 다롄(大連)에 도착하자마자 경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5일 후에 아버지가 돈을 구해 와 우리 가족은 감옥에서 나왔다.
나는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못하면서 일년 넘게 일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다시 한국행에 올라 입국에 성공했다. 지금도 배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3일 동안 내가 간절히 찾았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 봤다. 그것은 바로 생명이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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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나와 남한행을 선택하고 실행하신 분들이라면 나름대로 희노애락이 다 있을진데 님 이야기를 보니 참 마치 드라틱한 그런 느낌이 드네요.
힘들게 오신길 잘 사시길 바랍니다.
이런말 아시죠?
"꿈은 이루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