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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에게 제4부인(정일순)/ (週間現代誌)
김영학번역문독자 10 555 2005-01-11 19:05:07
이 글은 日本의 週刊現代에 게재되었던 “김 정 일에게 제 4 부인 (정일순)”이란 글을 한국시민사상교육연구소(소장 한 승 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김 영 학 통일전략연구소 소장에게 번역을 의뢰하여 그 번역문을 현명한 소수의 홈페이지
http://www.wisemid.org 의 한국인의 성격과 행태 편에 올린 것임.

김정일에게 제4부인(정일순)

(週間現代誌)
번역 김 영 학 (통일전략연구소 소장)


최후의 애인을 위해 별장을 샀다
「북조선 동북부의 3개 도시에 『반김정일 포스터』가 붙여졌다」(미국 뉴욕타임스지)
「현재의 북조선은 군부가 대두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그들의 상징에 불과하다」(러시아 꼬메르산트지)
러시아의 이따르․타스 통신이 주조외교관의 증언에 기초하여 인민문화궁전의 연회장에서 김정일의 초상화가 제거되었다는 것을 보도한 데 이어서 전해지고 있는 북조선에서의 이변은 그 어느 것이나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시사하고 있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반드시 붙이고 있던 「위대한 영도자」 등의 칭호를 빼고서 김정일의 이름을 불렀다. 대외적 사업을 담당하는 북조선정부의 간부들도 김정일의 얼굴을 넣은 뺏지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본의 식자나 일부의 미디어는 독재국가라는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서 김정일이 지시한 것이라고 해설했지만, 이 견해를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아베(安倍)간사장대리도 텔레비전 출연에서 「(김정일)정권과 교섭하여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인지 최근에는 의문스럽게 생각한다. 체제변경도 선택지(選擇肢)에 넣은 시뮬레이션을 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북조선」의 대붕괴-그 벼랑 끝에 서있는 북의 독재자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데 김정일은 최후로 남겨진 시간을 애욕에 빠져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사망설이 있는 고영희 대신의 애첩과 궁정에서 사랑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화제의 여성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 한국의 잡지 『월간조선』의 우종창(寓鍾昌)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일순(鄭日順)-이것이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 이름이다. 전 조선노동당 서기로서 탈북하여 한국에 있는 황장엽씨의 증언에 의하여 이미 알려지고 있었다.
김정일이 정일순을 위해서 매입한 별장은 알려지고 있는 것만도 마카오, 체코의 프라하, 스위스의 베른에 있다고 합니다. 나는 그 가운데서 마카오의 별장 소재지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정은 김정일과의 사이에 남자애를 낳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정일의 후계자다툼에 파란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기자의 보고를 기초로 삼고, 본사기자가 마카오로 가서 정일순의 발자취를 뒤쫓았다-. 그 전에 김정일과 「부부관계」에 있었던 여성들, 그리고 김정일의 후계후보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두고자 한다.
김정일이 최초로 「부부」로 부를 수 있는 관계를 맺은 여성은 1937년생으로 김정일보다 5세연상인 성혜림(成惠琳)이라고 한다. 김정일이 인기영화여우였던 성혜림을 제작현장에서 보게 된 것이 관계의 시초였는데, 그 때에 이미 그녀에게는 김일성종합대학의 연구자인 남편과 딸이 있었다.
유교사상이 깔려있는 북조선에 있어서 아무리 요인 중의 요인인 김정일이라고 하지만 공공연하게 불륜하지는 못했고, 김일성에게도 감추고 있었으며, 정식으로 결혼하고 있지도 않다. 금년(2004년), 갑자기 북경공황에 나타나 화제가 된 김정남(金正男, 33세)이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후계후보이다.

독재자의 「애정편력」
두 번째의 여성은 ‘74년에 정식결혼한 김영숙(金英淑)이다. 그 때에 김정일은 성혜림에 빠져 있어서, 김영숙은 형식만의 정처지위를 받아들인 것 같다. 김영숙과의 사이에는 설송(雪松)이라는 딸이 있고, 지금도 딸과 함께 궁정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기쁨조」에서 발탁된 것이 세 번째의 처인 김영희(高英姬)이다. 대판출신의 재일교포 2세로서 재일조선인의 귀국사업이 시작된 1960년대에 북조선으로 갔다. 만경대 예술단의 무용수로 있었던 연고로 김정일의 애첩으로 발탁되었는데, 정철(正哲, 23세), 정운(正雲, 21세)이라는 두 아들, 즉 정남에게 대항할 수 있는 후계후보를 낳았다.
정처 이외의 2명의 처는 그 인생이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다. ‘96년에 언니인 성혜랑(成惠瑯)이 망명한 탓으로 성혜림은 유폐생활을 겪게 되었고, 극도의 우울증세에 걸리었는데, ’02년에 모스크바시내의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한편, 고영희는 장기간 간장질환에 걸려 있었고, ‘94년에는 프랑스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일도 있었다. 현재도 생존하고 있다는 정처 김영숙은 딸밖에 없기 때문에 권력기반이 빈약하다. 어떻든 고영희가 나타나고서부터는 김정일의 애정이 그녀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그 다음에 김정일의 후계자로 될 수 있는 사내애를 출산한 네 번째의 처인 정일순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우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영희가 죽은 다음, 사실상의 정처자리에 앉히기 위해서 마카오에서 평양으로 들어오도록 한 것 같습니다」
우기자는 마카오의 남방에 있는 고로안섬의 별장에서 정일순이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 별장은 지상 3층 건물 두 채가 붙어있고, 1층은 차고, 2~3층이 거주 스페이스인 것 같다. 부지의 넓이는 100평정도인데, 두 채의 별장 사이에는 통로가 열려있다. 아마 경비원이 신속하게 달려오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우기자가 별장가까이까지 가서 사진을 촬영하려 할 때, 경비원에게 들켜 쫓겨났다고 한다.
정일순은 ‘97년에 한국계 브라질인이라고 속여 주프라하 미국대사관에서 여권을 냈고, 일본이나 미국에도 여행한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생년월일은 1975년 8월 15일로 되어 있고, 입국할 때에 경비원, 의사, 요리사 등을 데리고 왔다는 것을 마카오 사법당국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네 번째의 후계자에게도 제왕학을
정일순이 마카오에 입국할 때 안고 있던 남아, 그 애가 현재 9세의 김한설이다. 한설이 출생하지 1년 전경에 고영희가 유방암으로 몸이 상해있었는데, 이때부터 김정일의 애정이 고영희에서 정일순 쪽으로 옮겨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2003년에서 2004년에 걸쳐 우기자가 취재한 당시에 한설은 마카오에 있는 The International School of Macao에 다니고 있었다고 하며, 입학식에 출석한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지가 문의해보니, 학교 측은 「이전의 일은 알 수 없으나, 현재 250명 정도의 생도 가운데, 조선적(족?)의 학생은 없다. 한설이란 이름의 어린이도 없다」라는 것이었다.
김정남, 김정철 등도 모스크바, 제네바에 유학하고 있었음을 볼 때, 김한설도 해외에서교육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남, 김정철, 정운에 이어 네 번째의 후계자가 성장할 때까지 김정일이 정권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2004년 11월 24일, 국회에서 김정일이 누이인 김경희(金敬姬)의 남편이며, 사실상의 No.2라고 하던 장성택(張成澤) 노동당 조직부 제부부장을 숙청한 것 같다고 보고 했다. 김정일은 지금 몰리고 있는 처지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북조선 경제문제가 전문이며, 북조선 관련 저서도 많이 집필한 바 있는 야마나시 학원대학의 미야즈까(宮塚)교수는 「장성택의 숙청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소문레벨에 불과했던 권력투쟁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됩니다. 요컨대 김정일의 권력기반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김정일이 대외적인 어필을 위해서 초상화를 제거하도록 했다는 관측은 빗나가고 있습니다. 지시할 힘도 남아있지 않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미국 돈으로 단번에 민주화
김정일이 동요하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북조선을 감싸고 있는 환경은 엄격하다. 2기째의 부시정권에서 라이스대통령 안보보좌관의 후임으로서 유력시되고 있는 존․볼튼 국무차관(안보담당)은 신보수주의자(네오콘) 가운데서도 대북조선 강경파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하원은 2004년 10월, 「북조선인권법안」을 통과시켜 북조선의 민주주의를 육성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금으로서 4년간에 9600만 달러(약96억 엔)의 지원을 하도록 결정하였다.
「과거에 북조선이 홍수의 피해를 당했을 때, 한국으로부터 지원된 물자중의 컵라면 속에 『김정일을 타도하자』라고 쓰여진 삐라가 들어 있었거나, 한국의 반김정일 그룹이 북조선근해에서 반정부 방송을 실시한 일도 있었습니다. 인권법에 의한 재정지원은 효과를 걷을 수 있습니다. 어떤 독일인은 풍선으로 많은 라디오를 북조선으로 집어넣어 민주화를 촉구하려고 획책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코리아․레포트” 편집장인 변진일씨)
2005년에 조선노동당은 창립 50주년을 맞게 되는데, 김정일이 미국 압력에 굴복하면 당대회 직전에 후계자를 정하여 대회에서 발표하게 되는 사태가 충분히 예측된다.
「김정일은 후계자에게 비판되어 권위를 잃게 되었던 스탈린의 경우를 배운 바 있으므로 절대로 타인이 아니고 그 일족 안에서 나오게 하려 합니다. 장남인 정남 대 2남인 정철이라는 도식이 생각되나, 제각각의 가마를 담당하는 패거리 사이의 내분이 김정일 정권을 망치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앞의 변씨)
우기자에 의하면 정일순의 모습이나 경력에 대하여 상세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북조선이 붕괴직전으로까지 밀리게 되면 정일순이 스스로의 발언권, 그리고 김왕조의 피를 잇는 아들의 후계자로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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