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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활동에 나선 신부님들 (이한수) [광야의소리]
광야의소리독자 3 440 2006-02-09 13:59:10
다음은 광야의 소리의 홈페이지 http://www.aware.co.kr 에 있는 칼럼임.


정치활동에 나선 신부님들

이한수(아오스딩)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성 모세 성당 신자

이한수 아오스딩 (성 모세 성당)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에 본당사목을 이용치 말라


신부님들의 정치활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본당 사목을 맡고 있는 신부님들이 미사의 강론을 통해 정치적인 견해들을 피력하고 어떤 일을 지지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는 옳은 일인가.
하느님의 복음을 듣고 자신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성당에 나오는 신자들은 사제들의 정치적인 견해 표명에 당황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한 불만으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마저 생기고 있는데도 여전히 신부님들의 정치활동은 늘어나고만 있는 것이다.
송기인이라는 부산교구의 신부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장관급인 과거사위원장이라는 정치인이 되었고(본인이 신부의 사회봉사라고 주장해도) 부안의 문규현 신부는 부안성당을 방사능 폐기장 설치 반대를 위한 정치투쟁의 본부로 썼다.
또 새만금 공사반대를 위해 3보일배(三步一拜)의 행진을 벌여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신부님들의 정치단체로는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것도 있다.
(아마도 그들 자신은 자신들의 단체가 정치단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현실에 실천하는 사목단체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최근에 교회가 공식적으로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기로 하였는데도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성명을 내어 신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교회가 방침을 정한 사학법 개정 반대에도 맞서는 이들이니 방침을 정하지 않은 많은 세속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이들의 발언은 참으로 많다.
사제들이 해야 할일이 신자들을 이처럼 혼동 시켜 자기들의 주장을 주입하는 일 일가?


누가 신부님들에게 세속의 일들을 뜯어 고치는 권한을 주었는가

사제들이 해야 할일은 자신의 신덕을 닦는 개인적인 수도와 신자들을 사목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수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자신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는 일이고 사목은 성경의 가르침과 성령의 인도로 천주교회가 정한 방침의 범위 내에서 신자들을 신앙생활을 이끄는 일이다.
개인적인 묵상 성찰 기도는 자신만의 문제이니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으로 이루어 질수 있지만 사목의 경우는 세속의 일과 부딪치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한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교회가 가르치는 기존의 방침도 생각해야하고 세속의 법률이나 사회규범도 생각해야 하며 본당을 맡은 신부님이면 자기 성당의 신자들의 성격도 생각해야 하는 등 고려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다.

자기가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얻은 결론이라 하여 세속의 생활에 깊이 개입하여 여러 가지를 하거나 하지 말라고 강론하고 가르치는 일은 함부로 할일이 아닌 것이다.
성령의 특별한 도움을 청하며 항상 겸손하고 백번은 생각해면서 해야 할일이 사목활동인 것이다.
오늘날 모든 신자들에게 허용되는 위패룰 모시고 제사지내는 일이 왕조시대였던 초기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이것이 금지되어 얼마나 많은 순교자를 내었는지를 생각하면 사목을 하는 사제들은 극히 조심하고 근신하여야 하며 성령의 특별한 인도를 항상 기도하여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일부 신부님들이 단체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과거사를 흔들고 한미 동맹을 주축으로 한 안보태세에 대한 거부를 선언하며 방사능 폐기 물질 처리장을 만드는 일의 반대에 나서고 90% 이상 진척된 간척사업을 중지하라고 정부를 압박하며 신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하라고 강요한다.
누가 이들 신부님들에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미사성제의 강론을 통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설교하고 신자들에게 특정한 일을 강요하는 권능을 부여하였는지를 알 수가 없다.
비록 90%의 신자가 찬성하는 일이라 해도 그리고 세속 사회의 여론이 대부분 찬성하는 일이라 해도 사목을 맡은 신부님이 이런 데 영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는데도 말이다.

하느님은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라고 가르쳤지 99마리의 잘 보호된 양에 영합하라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지만 성당을 새로 짓는 본당에서는 건축자금을 보탠다는 이유로 시골에서 가져온 농산물도 팔고 헌옷을 기증 받아 바자회도 열고 하는데 이 같은 상품을 취급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신자에게는 손해를 입히는 일이라는 점을 누가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사제가 생각해야 할 몫이다. 이렇게 작은 일도 조심하여야 하는 것인데 새만금 물막이 공사나 방폐장의 건설 혹은 평택에 미군 사령부를 짓는 일 같은 중요한 것에는 얼마나 많은 신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일인가.
본당 사목을 맡아 신자들이 의무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사제들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세속의 몫이고 이에 대해서도 하느님은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고 성경을 통하여 가르치시지 않았는가.
세속 사회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일을 신부님들이 비록 기도하고 묵상하여 성령의 가르침으로 하느님이 시키시는 일이라고 결론을 얻었어도 그 결론이 교회가 정한 방침과 배치된다면 행동에 나서서는 안 된다.
그것이 천주교 수도자가 견지해야 할 겸손과 순명이다. 그런데도 정의 구현사제단은 사학법 반대를 결정한 주교회의의 방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런 경우 신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주교회의는 정의구현 사제단이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치 못하는 신부들의 임의 단체이니 교회의 방침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민주화 투쟁 때 그처럼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정의구현 사제단의 주장을 어떻게 신자들이 간단히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당을 자신의 선거구처럼 생각하지 말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국민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가진다.
신부님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정치활동의 자유가 있다.
그리고 신부님이 개인적인 성찰을 통하여 얻은 결론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정치활동을 택하였다면 정치에 나서는 것도 좋다.
그러나 본당의 사목은 하느님이 사제에게 맡긴 성스러운 임무이므로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이를 통해 관철하려는 것은 절대 안 된다.
혹 사목을 포기하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 정치적 투쟁에 나서는 일이라면 몰라도 성당이라는 교회의 신비체에서 미사성제를 통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그것도 교회의 방침에 반대되는 강론을 한다면 큰 잘못이다.

교회는 사제 개인의 선거구가 아니고 신부는 그 교회의 신자들의 지지를 얻어 뽑힌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당신부의 지위는 다만 교회의 명령에 따라 사목을 위해 보내진 자리일 따름이다.
예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공무원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치활동이 금지되는 것은 국가가 부여한 권한을 재량하는 자리이기 때문인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복음으로 신자를 인도할 신부님들도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때문에 신부님이 개인적인 묵상과 기도에서 성령의 인도로 어떤 현실을 고쳐야 한다고 결론을 얻고 행동에 나서려 한다면 본당사목은 당연히 포기하고 자연인 한 사람으로 돌아가 일을 벌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교회의 세속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는 주교회의나 교구장 대주교님들도 천주교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니 라는 핑계로 관망하거나 방치할 것이 아니라 많은 신자들의 오해를 풀어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본다.
순명하지 않는다면 사목을 중지시키거나 근신을 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뒷날 반성해야 할일을 결정해서는 안되

몇 년 전 일제시대에 신사참배에 관해 교회가 반성과 사과의 성명을 낸 적이 있다.
아마도 당시의 교회가 방침으로 세속의 일에 관여한 결과인 듯한데 오늘날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일들이 뒷날 반성해야 할 일인지를 항상 생각해야 할일이다.
더구나 신부님들은 독신이어서 세속의 잡다한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가 모자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상주의로 흐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모자라는 이해와 이상주의의 성향을 교회가 어떻게 적절한 수준으로 제한하고 생각만으로 그치게 묶어 둔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지만 교회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또한 세속의 일들이 초기 교회 시절보다 복잡해지고 부딪히는 일들은 지난번 배아줄기세포 파동처럼 한없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여도 교회가 할일이면 해야 한다.
사제단과 같은 활동이 외부로 나타나기 전에 교회는 치열한 토론을 하여 희생이 생긴다하더라도 어떤 결론을 내야 한다.
뒤에 후회하거나 먼 훗날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한때 풍미하였던 남미의 해방신학의 경우를 보면 정의라는 이름으로 성당이 반란군의 사령부가 되기까지 하였는데 이렇게 해서 정권이 타도되고 다음에 들어선 정권도 전 정권과 같은 짓을 하니 해방신학으로 신자를 이끌던 신부님들은 할말이 없어졌다.

패망한 월남의 경우를 보면 그처럼 억세게 정권에 맞섰더니 통일을 한 월맹이 바로 그 반정부 신부들을 처형한 예도 있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천주교라는 수식어를 안 부쳤으니까 정의구현 사제단의 일이 교회의 일이 아닌 것으로 된다는 생각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과 같다고 본다.


입력날짜 : 2006-02-01 (02:55), 조회수 :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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