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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법제정에 성실치 않는 나리들, 대한민국 국회의원.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0 227 2014-03-24 13:23:21

[잠언 19:1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그 시대의 가치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참된 가치를 결코 능가할 수 없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그 참된 가치가 득세하는 세상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모습이다. 이는 정권을 잡는 북괴 그 敵()그리스도를 대척하려고 인본주의를 내세운 연고이다. 인본주의는 인간이 켜는 등불로 敵()그리스도의 어둠을 물리치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그 어둠을 밝히는데 역부족이고 그 결과 북한인권외면으로 드러난다.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장 커비는 북한인권을 외면하고 있는 한국 지도층을 辛辣(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4월호 월간조선에 보도되었다.

 

그는 '全 세계가 보고서에 관심을 보이는데 한국 정부와 정치인만 연락이 없었다!'고 폭로하였다. “한국만 관심 없다. 실망했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북한 동포는 같은 민족 아닌가?” 했다 한다. 이토록 무감각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나라의 마음은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각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각성이 없다. 이런 것에 밝은 마음을 가지고 각성된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 시대의 이런 음침한 마음을 보게 된다. 그 외면이 무겁게 가라앉아서 누구도 그것을 일깨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가?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그것에서 일깨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전혀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소재는 이익을 주기에 주변국의 지도자들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내 정치인들은 자기와 자기 당의 이익을 위해 이를 이용하고 있다. 진정성(truth)이 있도록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국민의 이 깊은 잠은 깨우는 각성이 없다. 많은 자들이 이 문제를 깨우려고 동분서주하지만 이 깊은 어둠을 일깨우는 데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이 깊은 어둠이란 악마와 그 악습으로 행하는 짐승, 식인종의 세상을 그대로 받아주려는 것 그런 세상을 당연히 하려는 것의 득세이다.

 

인간만이 낼 수 있는 소리, 이래서는 안 된다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깨어나는 자성의 그 아픔의 소리가 없다. 地下(지하)와 地上(지상)의 종북세력이 그 얼굴을 드러내든지 감추든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북괴를 미화 두호 변호 비호하고 옹호하고 있다. 어떤 때는 드러내놓고 옹호한다. 모든 영역에서 여론은 일어나는 것인데 그 여론이 일어나는 모든 영역에 그들이 있고 그것에서 그들은 북한인권에 대한 외면을 선도한다. 그 집단의 首魁(수괴)와 행동을 변호 미화 옹호 비호 엄호하는데 광신적이다. 대한민국의 지성은 그들로 인해 오염되었다.

 

그 지성의 의미는 비겁한 것이나 북한인권에 접근 해결하는 방법상의 문제를 내세워 언제든지 묻어둔다. 가끔 끄집어내기는 하나 다만 자기들의 얼굴만을 위해 하는 척이고 실은 외면에 묻어버린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층의 양심은 썩었다고 할 수 있다. 양심이 무감각하여 아무리 찔러대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들은 東()으로 가면서 그것이 결국은 西()로 가게 된다고 믿는 迷信的(미신적)인 언행을 보인다. 자기들의 이러한 외면은 결국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自慰(자위) 盲信(맹신)한다.

 

이는 자기모순이고 자가당착적인 착란의 심리 전개인데 그것에 자신을 가책하는 아픔이 없기에 구제불능이다. 현대는 수많은 생각들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점거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이슈들이 일어나 현대인들의 시각을 앗아가고 있다. 북한주민의 이 전대미문 미증유의 고통을 안다면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집중 조명하여 그 실체적인 진실을 파헤치는데 너무나 미력하다. 특히 북괴가 붕괴직전으로 몰려가고 국내의 정치집단들이 북한인권법의 제정을 위해 진정성을 가져야 하는데 인권문제를 '신분광택제'로만 사용한다.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영구불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식물 국회의 이율배반 자가당착적인 행위는 악마를 성심으로 도우면서 오히려 북한주민을 돕고 있다고 강변한다. 우리가 보기에 국회에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怪物(괴물)들이 있을 뿐인데도 당사자들은 후안무치하다. 대한민국 국회는 인간을 위한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을 가로막는 짐승들 그 怪獸(괴수)들의 곳이다. 괴수들만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드는 곳이다. 참으로 괴이하고 괴이한 곳이다. 그런 곳에 우리는 막대한 혈세를 퍼붓고 심히 큰 예우를 주고 있다.

 

21세기의 첨단의 문명이라 한다. 그런 세상에서 이 지식인들 곧 스펙만 높은 자들이 김정은의 개()가 되어 오로지 미화 두호 비호 변호 옹호하는데 묘안백출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들이 대학교 교수 학장 정치지도자 언론방송인 종교지도자로 행세한다. 似而非(사이비)교도도 자신이 진리를 따른다고 확신한다. 그런 맹신과 광신적인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김일성광신도들이 상당수 대한민국의 지도층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틈타는 간첩들의 창궐을 목도하고 있다. 이는 인본주의의 패려함의 결과이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눈에 패려한 것이다. 패려함의 사전적인 의미는 언행(言行)ㆍ성질(性質)이 순직하지 못하고 비꼬임이라 한다. 悖戾(패려)하다는 원어는 `iqqesh {ik-kashe'} 라 발음한다. 그 안에는 꼬다 뒤틀리다 꼬아 합치다 뜨다 짜넣다 찌푸리다 비틀다 뒤틀다 왜곡하다 곡해하다 구부리다 굽히다 갈고리로 낚아채다 훔치다 사취하다 괴팍한 심술궂은 별난 외고집인 앵돌아지는 오해하다 오용하다 그르치다 유혹하다 사도에 빠뜨리다 의 의미를 담는다. 곡학아세 견강부회 왜곡 곡해 번안의 모든 악이 거기에서 나오고 또는 가미되고 있다.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아닌 지도층은 대개 인본주의로 적그리스도의 세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광신한다. 이런 광신 미신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패려함이다. 이런 것을 미신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도 패려함이 아닌가? 과연 이런 세상의 미래는 좋을 것인가? 콩을 심고 콩을 기대해야 한다. 악을 심고 선을 거두려는 짓을 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무엇인가? 스스로 속여 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서 속히 인간으로 살기를 거부하는 악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대로 가라앉으면 악마가 자리를 잡고 악마가 자리를 잡으면 대재앙을 당해 짐승화 식인종의 세상이 된다.

 

악마에게서 나온 이 미혹이 흑암이고 빨갱이의 입을 통해서 나와서 전 국민의 눈을 어둡게 한다. 대한민국은 참된 가치를 보는 것에 눈이 너무나 어둡다. 그만큼 악마의 미혹을 받고 있다는 증좌이다. 세상을 밝히는 인위적인 등불은 많다. 인본주의적인 발상으로 세상을 밝히려는 그 나름의 노력이다. 촛불이 어둘 때 매우 위력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정적이다. 촛불이라도 전 국민의 마음속에 켜질 수 있다면 촛불로 하나가 되는 국론 및 가치의 통일을 이룰 것이다. 그런 목표로 인본주의가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하다. 유토피아적 망상이다.

 

빨갱이들도 인본주의 맹신이기에 광우 뻥 폭동의 촛불을 들고 도리어 북괴를 위해 밝힌다. 참으로 괴이하다. 국민의 눈을 밝히는 촛불이 아니라 迷惑(미혹)하는 촛불이다. 우리 세대를 휘어잡고 있는 이 괴이한 미혹은 어떤 결말을 낼 것인가? 인위적인 빛이 이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면 이렇게 대한민국은 어둠에 잠겨야 하고 결국 악마의 獨舞臺(독무대)가 되어 악마에게 다 잡혀먹히는 것이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하신다. 그 빛이 있게 하신 분은 또한 빛이시라 하신다. 그 하나님은 이미 그 빛을 세상에 주셨으니 이를 구하라고 하신다.

 

[요한일서 1: 5-10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의 본질은 빛이시라 하신다. 그 빛을 인간에게 주셔야 인간은 이 흑암을 이길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빛이시고 하나님의 본질의 빛이시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에서 나오는 빛이다. 그 빛이 드러나야 한다. 그 빛이 드러나야 비로소 국민의 눈이 밝아진다. 그 빛은 악마의 어둠 그 흑암을 능히 모두 다 몰아내고 참된 가치에 눈을 뜬다. 사람다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하나님의 본질을 직접주지 않으시더라도 만물 속에 두신 커다란 등불이 있다. 하나님의 큰 빛을 담아 세상에 주신 것의 비유되는 태양과 달과 별의 빛이다. 이 恒星(항성)들의 빛은 우주를 각기영역에서 밝히는 빛이다. 시편 1367-9절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 그 빛을 달라고 감사해야 한다그 빛은 인간에게 사람답게 사는 것에 각성하게 한다.

 

어차피 인간은 이런 태양과 달과 빛이 있는 세상에서 떠나 來世(내세)로 들어 가야 한다. 그 세상은 오직 하나님의 본질의 빛만으로 밝혀진다. 그 빛 앞에서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그 빛 앞에서 숨겨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인간이 받아 누릴 영원한 빛이다. 그 빛을 등진 자들은 영원히 그 빛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고 하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내세에서 그 빛으로 살아야 하듯이 이 땅에서 그 빛을 받아들여 빛으로 사는데 熟達(숙달)되어야 한다.

 

그 빛을 등지는 자들은 그 빛을 등지는데 숙달된다. 하나님의 빛이 오면 어둠은 도망치는 것이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땅을 덮은 악마의 어둠은 식인종의 세상에 대한 찬가로 가득하게 한다. 이런 식인종의 세상에 인간답게 사는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속에 하나님의 빛을 모셔 그 빛으로 행동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빛이 그의 운전대를 잡고 그 빛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 빛으로 행동하는데 숙달되어야 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본질의 빛에 각성된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 하나님의 빛에 의해 각성된 자들이 가득한 세상이 된다면 그들이 하나님이 세운 등불들이다. 그 빛이 득세해야 한다.

 

그 득세가 가득한 세상이 되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모든 것이 다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선각자들을 세우시고 기도하게 하신다. [이사야 30:26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하나님이 인간을 치유하는 빛이 되어 세상을 각성케 하신다. 그 상상할 수 없는 빛의 힘으로 각성된 세상을 얻게 된다면 이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라 하겠다. 그런 세상이 되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8:12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은 12:35-36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하나님의 빛을 거부하는 세상이 되니 하나님이 보내신 빛도 거부하고 인위적인 빛에 매달린다.

 

그 인위적인 빛으로 세상을 밝히고자 하나 악마의 어둠의 침공에 언제나 역부족이다. 하여 지금과 같이 어두워진 심령들이 된 것이다. 오늘의 본문은 이런 의미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성실로 행하나 하나님의 경영에 따라 가난한 자들의 가치를 높이는 의미이다. 가난하면 친구가 없다. 외톨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휘감독을 받은 자 곧 하나님의 경영에 참여하는 일원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역할을 주셔서 하나님의 경영을 함께하나 환경은 가난 속에 처해야 하는 역할이다.

 

하나님이 주신 가난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 동역하는 성실함을 의미한다. 그들의 가치를 결코 過小評價(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자면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들이란 곧 악마에게 묶여 그 속에 악마를 품고 그 악마의 악심을 품고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아는 것이 곧 미련한 것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거부하는 것이 적대하는 것이 곧 미련한 것이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거부 적대하는 것이 곧 패려한 마음이다. 그 마음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이니 패려한 입술이 되는 것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거부하는 자들은 다 패려함에 속한 자들이란 의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실이 없다. 그의 성실은 고결 완전 성실 정직 청렴 또는 비난할 점이 없는 죄가 없는 결백을 성실로 번역된 ‘integrity tom {tome} 이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완전도 높은 성실 완성도 높은 성실과 완료하다 전부의 완전한 완결한 오동포동하게 살찜 풍부함 차 있음 가득함 완전 순결 무죄 결백 때 묻지 않음 무해 간단 순진 간소 평이 단순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자들은 恒常性(항상성)을 가진다

 

항상 성실하다는 말이다. [시편 98:3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이 구절에서 성실은 'truth'='emuwnah {em-oo-naw')를 번역했는데 견고 단단함 견실 확고부동 결의가 굳음 충실 충성 성실 엄수 정절 확고한 부동의 고정된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견실함 끈기 불변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성실로 번역된 여러 의미들이 있지만 그 의미들은 대동소이하다. 하나님의 속에서 나오는 그 성실의 의미는 인간에게 언제나 항상성 다함이 없는 불변성의 근원이 된다.

 

[이사야 25:1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 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emuwnah)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그 때문에 그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성실로 행할 것을 요구하시고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신다. [시편 89:8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emuwnah)이 주를 둘렀나이다] 하나님의 성실로 행해야 한다. 진정성의 불변성과 정직함의 항상성의 성실성을 가진 자들이 되려면 하나님의 성실을 기름부음 받아야 한다.

 

다음은 truth='emeth {eh'-meth}=성실로 번역된 말씀이다. [스가랴 8:8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truth='emeth {eh'-meth} 견고 단단함 견실 확고부동 결의가 굳음 충실한 신의가 두터운 성실한 헌신적인 열심인 진실 진리 성실 진상 사실 확실함 안전함 신뢰할 수 있음 믿음직함 신뢰도 확실성 안정 확고 안정성 착실 부동 계속 연속 존속 지속 체류 믿을 수 있는 의지가 되는 확실한 신뢰성이 높은 의미다. 하나님의 진실무망 불변성 항상성 진정성을 말한다.

 

[시편 71:2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이사야 48:1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너희는 이를 들을지어다] 그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고 빛이시고 그 임무를 다하시는 성실이시다.

 

그 성실로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공급하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 밖의 성실에는 'aman {aw-man'} 받치다 유지하다 부양하다 받침 부양 굳게 하다 확인하다 확증하다 승인하다 추인하다등이 있다. [시편 78:37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이러한 성실의 의미는 진정성의 불변성 항상성의 의미이다. [미가 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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