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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그 여인
ㄷㅈ 0 329 2014-08-17 06:44:42
송 낙 환 이야기, 평양의 그 여인 

[2013-07-24 오전 10:38:00]
 
상당히 오래전 일이다.

한창 평양을 오가며 통일운동에 열을 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때는 내 나이도 한창 팔팔할 무렵이니 그 일을 떠 올릴 때 마다 참으로 흥분되고 긴장되던 당시를 잊을 수가 없다.

고려호텔에 묵을때였던가 내가 머물던 곳이 아마도 20몇 층이 아니었던가 싶다. 평양에 가 호텔에 묵으면 보통 여성 2명이 늘 함께 다니며 방 청소며 시트 교환 같은 일을 도와준다.

그때에도 40대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 둘이서 늘 수수한 차림으로 찾아와 상냥한 웃음으로 인사하며 이일 저일 뭐 필요한 것이 없냐며 보살펴주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야심한 밤으로 기억된다. 늘 둘이던 여성이 이날따라 둘이 아니라 혼자서 나 홀로 자는 방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자주 드나들던 평양이라 고려호텔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나에게는 참으로 뜻밖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남한 사람이 혼자 자는 방에 북한 여인이 혼자서 찾아온다는 것이 북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나에겐 하나의 사건이었다.

긴장과 흥분이 교차되며 야심한 밤은 자꾸 더 깊어만 간다. 침대 옆에 다가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니 화장이 서툰 것이 얼굴에 밀가루 칠을 한 것 같고 입술은 마치 물감을 칠한 듯 어색한 원색 빨강이었다. 아마도 아직 화장품이 발달하지 못하여 제품의 질이나 그리고 화장을 하는 방법의 수준이 원시적인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런 여인을 더 좋아한다. 순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갖 포장으로 덮인 꾸며진 아름다운 여인보다 있는 그대로의 천연 미인이 보다 훨씬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아마도 나 뿐아니라 모든 남성들의 습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여인이 하는 말,

“선생님 고려호텔이 A동과 B동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아세요?”

“아니요, 모릅니다. 고려호텔이 그렇게 되어 있나요?”

“네 A동은 내국인용, 그리고 B동은 외국인용으로 씁니다. 지금 선생님이 묵고 계시는 곳은 B동입니다.”

여기까지는 별로 특별난 것이 없는 뭐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이다.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로 끝났다면 이 일이 뭐 호들갑을 떨며 오늘 이 글을 쓰는 소재가 되었겠는가.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선생님 A동을 한번 구경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사방은 적막한데 짙은 화장 냄새를 풍기는 한 여인이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제안을 해 온 것이다.

가슴은 방망이질이요 머리는 요동을 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자고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늘 평양에 갈 때마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정해진 곳만 볼 수 있었던, 그래서 일반 인민들이 사는 민가에 가서 평범한 인민들과 막걸리 한잔만 하게 해달라고 평양에 갈 때마다 초청 당국에 부탁하곤 했던 나로서는 이때야 말로 어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A동을 구경시켜달라고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설마 죽이기야 할려고....비록 분단은 되어 있을지라도 여기도 내 나라이고 여기 사는 사람들도 내 형제들인데......”

이렇게 중얼거리며 꼬불꼬불 어디론가 그녀를 따라 길을 나선다. 마치 사다리타기를 하는 것 같다. 몇 층에선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더니 한창을 걷다가 또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느 건물을 오른다. 아마도 다른 건물로 온 것인가 보다 짐작을 하며 계속 그녀의 뒤를 따른다. 밤은 깊고 어두워 지나온 길을 기억하기가 어렵다. 이제 돌아가라고 해도 혼자서는 다시 B동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참을 숨바꼭질 하듯 돌다 어느 방 문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선생님 잠깐만요 하면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방문을 열었다. 그녀가 스위치를 올리자 불이 들어오고 어두웠던 방이 밝아지며 그 면모를 드러냈다.

손님들이 자는 방보다는 작다. 거울이 붙은 경대가 하나 있고 그 경대 위에는 여느 여인들의 방에서나 처럼 몇몇 화장품들이 놓여 있다. 경대 앞으로 침대가 하나 놓여있고 그 외로 나머지 공간이 별로 없는 작은 방이었다.

“선생님 이게 제 방입니다.”

“...................................?!”

나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한 밤중,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평양에서, 한 밤중에, 초청인 측에서 정해준 숙소를 떠나, 낯선 여인이 홀로 사는 이름 모를 방 안에, 그녀와 단둘이서 들어와 있다니....

그녀 역시 약간은 긴장한 듯한 미소를 띠우며 앉을 것을 권했다. 앉아도 침대 뿐 앉을 공간이 좁은 작은 방, 나는 그녀와 함께 침대에 걸터앉아 그렇게 긴(?) 솔직한 남북의 대화를 시작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듯 앉아 있는 그녀에게서 진한 원색적 화장품 냄새가 계속해서 풍겨온다. 야릇한 감정이 살아나며 40대로 한창이었던 나는 평양에서의 행복한 하룻밤을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훨훨 북한 땅을 날아다녔다.

그렇게도 그리던 평양에서의 한 개인과의 직접 만남이 이뤄진 것이 아닌가? 아무 시선 거침없이 단둘이서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야릇한 감정을 떨쳐내고 정색을 하며 그녀에게 이런 것 저런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북한 인민들의 생활상, 체제에 대한 평가 등 예를 들면 집 안에 살림살이는 뭐가 있느냐, 식사 때 반찬으로 뭣을 준비해서 먹느냐, 남편은 뭘 하는 사람이냐,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 따위들을 질문하며 구체적인 북한인들의 삶을 짚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비교적 솔직하게 당시의 북한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 해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기 남편이 상당한 직위의 인물이지만 월급만 가지고 살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이야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한창을 솔직한 단 둘만의 남북대화를 진행하던 중 튀어나온 그녀의 한마디가 정수리를 정면으로 겨냥하며 망치를 치듯 내리 친다.

“선생님 오늘 밤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

함께 밤을 새우자고 나를 믿는다는 듯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안아주면 품에 꼭 안길 것만 같던 야윈 체구의 그녀를 오늘 이렇게 나이 들어 회상해보면 그리움처럼 아련히 ‘사랑의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자고 가라는 그녀의 제안

“선생님 오늘 밤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

함께 밤을 세우자고 나를 믿는다는 듯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그녀.

너무 말랐다. 다이어트를 잘 한 날씬한 몸매를 가진 여인의 ‘사랑 고백’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그녀는 ‘날씬하다’기 보다는 ‘깡말랐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리게 그렇게 몸이 말라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다이어트가 유행하던 시기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북한에서의 미인의 기준은 보름달처럼 둥그런 얼굴에 토실토실 살이 찐 그런 여인들을 곱다고 하는 그런 때였다. 나 역시 당시는 몸에 살이 없이 말라있어 늘 살이 좀 쪘으면 하는 때였기 때문에 나는 사실 그 마른 체격의 여인에 대하여 크게 매력을 느꼈다거나 하진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네.......................!?”

그녀의 뜻밖의 제안에 나는 어리둥절 아니 기절초풍이라고 표현하면 더 어울리는 표현이 될까. 너무 놀라 그녀를 응시하던 눈망울이 아마도 커진 동공으로 소스라쳤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평양 한 복판에서...남북 관계가 아직 지구에서 가장 왕래가 적은 시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 무렵은 후일 민주당 정부의 주도로 남북의 왕래가 빈번했던 시기 이전으로 남북 관계는 언제나 얼음판이었으며 평양을 방문하기도 그렇게 쉽지 않았고 또 평양을 방문했다면 그것은 상당히 관심의 대상이 되던 그런 시기였다.

만일 여기서 내가 그 여인과 하룻밤을 같이 세웠다면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남북 문제의 핵심을 어느정도 깨닫고 있었던 나로서도 그것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만일 당신이 거기서 그 여인과 잤다면 아마도 당시에 남한에 오지 못했거나 북한 정부의 이용물로 전락했을 것이라는 등 화제거리로 삼곤 한다.

 

이런 상황이 두렵지 않아

그러나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그렇게 두렵다거나 무섭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마도 ‘그 여인이 정말 매력적이고 탐이 나는 그런 여인이었다면 또 거기다 그녀의 제안까지 받은 상황이었으니 아마도 그녀와 하룻밤 거기서 잤을 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크게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당시의 나의 심경을 표현하는 말로 아마도 옳을 것이다.

내가 통일운동 내내 북한과 접촉하면서 유지되어온 이런 북한에 대한 자신감(?), 두려움 없음 같은 것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내가 통일운동을 하는 동안 한결같이 느끼고 간직해온 내 마음 바탕을 깔고 있는 기본 의식은 ‘남북은 같은 민족’이라는 굳건한 믿음이었다. 설령 내가 좀 실수가 있더라도 같은 핏줄을 나눈 형제들인데 그로 인해서 나를 죽이기야 할려고 하는 믿음 같은 것이 언제나 내 마음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나는 가부간 그녀에게 대답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동무, 동무와 저랑 여기서 같이 잘 수 없다는 사실은 저보다 동무가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와 밤을 세우자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는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해 그들이 흔히 쓰는 부름말을 사용하여 그녀에게 되물었다.

“........................................................................”

그녀는 물끄러미 올려다만 본다. 눈망울이 애처럽다. 뭔가 간절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그게 뭘까...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의 눈망울만 크게 확대되어 보일 뿐 말이 없다. 또다시 한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긴장과 설렘이 함께 온 방을 가득 메우고 있을 무렵 그녀의 대답이 들려온다.

시작된 북한의 경제난

“선생님, 저의 형편이 지금 돈이 좀 필요합니다.”

“네에....!?”

“그러나 꼭 돈이 필요해서만은 아닙니다. 저는 호텔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을 몇 번 뵌 일이 있으며 늘 호감을 품어왔습니다. 민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그렇게 크신 선생님을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아.....”

나는 신음소리를 내듯 외마디 소리를 지를 번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만일 여기서 동무와 제가 하룻밤을 보낸다면 동무가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의 안전보다 오히려 그녀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그녀가 어떤 필요에 의해 남한 남성과 하룻밤을 보낸다면 아마도 엄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 너무나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답 대신 그녀 가정의 생활상에 대하여 이야기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녀의 말을 기억나는 대로 종합해보면 자기는 호텔에 근무하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을 종종 접촉할 기회가 있으며 그러한 접촉을 통해서 남한 사회가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하여 북한과는 다른 풍족한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북한 사회는 아직까지도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상당한 직위에 있는 나그네(가장)를 둔 자기 가정이지만 너무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자기 집의 모든 재산을 합계해보면 미 달러로 3백달러나 될까 하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하며 북한과 자신 가정의 경제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그렇군요.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인민들의 생활이 그렇게 어렵군요.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북한에서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그 어려움의 실상에 대하여 소상하게 듣고 나니 북한인들의 삶의 고단함을 어찌하면 좋을지 그져 가슴이 먹먹해 왔다.

 

북한 경제난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왜 이렇게 우리 겨레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 남한이 아무리 돈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오늘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궁핍한 북한인들의 삶의 어려움의 근원은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그들이 부지런하지 못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우리민족처럼 부지런한 민족이 드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민족도 없습니다. 북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하고 예절 바르고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듯 살기 어렵고 심지어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궁핍함이 북한을 찾아왔단 말입니까? 세상사는 노력하면 얻어지는 것이 진리인데, 따라서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것이 진리인데...노력을 해도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답답한 북한의 현실에 대하여 가슴을 치고 싶은 생각이 밀려온다.

‘거액(?)’의 달러를 주다

그날 밤 나는 그녀에게 주머니를 털어 당시의 나로서는 거금에 해당하는 달러를 주었다. 그의 절절한 호소를 나는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건넨 달러가 부자들에게는 하찮은 액수일지 몰라도 나의 당시의 처지로는 상당한 거금에 해당하는 액수였던 것이다.

나는 당시 북한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과 고락을 같이해보자는 취지로 주로 북방의 동포들을 찾아다니며 활동을 했었다. 그때에 나와 뜻과 취미를 같이하며 중국이며 러시아며 북한을 왕래하던 일행들이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별로 이름난 사람들도 아니고만 자기위치에서 성실히 열심히 살고 있으면서도 겨레의식이 강했던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상호간 별로 말은 많이 안했었지만 종로 2,3가 뒷골목 등지의 허름한 식당에 모여 막걸리 한잔 나누며 미소를 주고받아온, 마음으로 존경과 믿음을 쌓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동포들이 살고 있는 집단 거주지를 찾아 민족문화원이며 마을회관 등을 방문해보면 당시 우리 북방 동포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것이었는지 매순간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들이 되었던 것이다.

이럴 때면 대부분의 우리 일행들은 차고 있는 시계까지 벗어주고 오는 정황으로 그들에 대한 민족적 애정을 표시하곤 했었다.

이날 북한에서 북한인의 직접 증언으로 들어 알게 된 북한의 처참한 현실도 우리가 그동안 찾아다니며 목격해온 북방의 우리민족들의 삶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녀에게 주머니를 털어 얼마 안되지만 나에겐 거금인 달러를 가녀린 그녀의 손에 꼬옥 쥐어주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온 숙소에 홀로 누우니 밤은 깊어가고 잠이 오지 않는다. 호텔 밖 거리는 정적에 쌓여 덩그러니 정물화처럼 누워있다. 평양에서의 하루가 또 이렇게 저물어 가는구나.........^^

호텔방으로 걸려온 전화

아마도 그로부터 3년쯤 후의 일일 것이다. 나는 평양을 방문하고 3년 전의 고려호텔이 아닌 B호텔에 묵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이산가족 화상 상봉 문제를 북한 당국과 협상하던 차였기 때문에 상당히 분주하고 긴장되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B호텔은 남한의 통일교회가 운영하는 호텔로 고려호텔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와 달리 제법 자본주의 냄새가 풍기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특유의 가차없는 엄격함은 북한 어느곳에서나와 마찬가지로 여전했다.

밤 12시가 조금 지나서였을까.

침대 옆의 전화벨이 울린다.

왠 전화일까?

북한에 남한 사람이 와 있을 경우 당국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이 사회가 아니던가. 재북 일정 내내 옆을 지키며 따라다니는 안내원도 직접 찾아와 말을 건네면 건넸지 전화를 걸어온 사실은 아직 것 한 번도 없었는데....., 의아해 하며 전화를 받았다.

“동무 전화 받으시라요”

진한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전화 교환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에!...... 저에게 전화가 왔다고요?”

“제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전화가 와요?”

국제 전화가 올리는 더군다나 만무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동무, 받아보시면 압니다. 빨리 받으시라요.”

교환원이 웃으며 재촉한다. 교환원의 말투에 장난기까지 섞여있는 것 같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특유의 분위기이다.

긴장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받아본 구형 검은색 전화기에서 울려나온 목소리.

“동무, 그동안 무사하셨습니까?”

“다시 북반부 조국을 방문해주신 동무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아!.........그 여인, 3년 전의 그 여인!, 고려호텔의 바로 그 여인!.........^^

“아니 어떻게.... 제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놀라웠다. 3년 전의 그 여인이 내가 여기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이해가 안가는 일인데 거기다 야밤에 전화까지 걸어오다니...

아니 이거 무슨 공작에 걸려든 것이 아닌가? 북한을 다니며 처음으로 겪어보는, 북한에서의 일 같지 않은 사건이 지금 나를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족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선생님이 조국을 방문하셨는데 제가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다시 만나는 날을 학수고대 기다려 왔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로 반갑습니다.”

낡은 수화기로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진심어린 말로 들려왔다. 아니 그 소리가 진심이길 바랐는지 모른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쩜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어요.

이어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말

“선생님, 한번 뵙고 싶어요, 우리 한번 만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망치로 정수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심한 충격을 느꼈다. 당시의 북한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제안을 그녀가 지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쇄된 북한에서 그것도 남한 사람과 잘못 접촉하면 엄한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엄격한 북한에서 남한에서 온 남성과 북한의 여성이 단둘이 만나 어떻게 몰래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동무, 저와 동무가 여기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저보다 동무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어떻게 저와 동무가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나는 지난 번 처럼 그녀를 동무로 호칭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호텔 밖으로 나오면 왼쪽에 바로 여보도가 있습니다. 거기서 내일 밤 9시쯤에 만나요”

갈수록 가관이다.

나는 안내원의 허락 없이는 한 발 짝도 움직일 수 없는 북한의 평양에서 지금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몰래 호텔을 나가 허락 없이 북한의 여인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날 밤 그녀의 만나자는 제의를 받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되는 밤이었다고 할까?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날은 밝아 오고, 또 바쁜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다.

초청인 측 안내원들을 따라 여기저기 돌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니 벌써 해는 뉘엿뉘엿. 저녁 9시가 다가올수록 얼굴이 후끈거렸다.

그녀가 어제, 오늘 밤 9시에 여보도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기 때문이다. 그 9시에 정말로 그녀가 나올까... 하지만 나는 안내원에게 밖에 나갔다 와도 되느냐고 차마 묻질 못했다. 아니 물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고 아예 물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밤 9시가 되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정말로 여보도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괜스레 창밖을 힐끗거리며 방 안을 이리저리 오간다. 지금 또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휴..., 긴장을 내려놓고 안심의 한숨을 토해내며 막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오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선생님....................”

그녀다.

“왜 나오시지 않으셨어요?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할 말이 없다.

북한 당국의 허락 없이는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누차 말했었다. 설령 말하지 않았다 해도 그녀 역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녀를 만날 수 있으려면 이곳 체제 속에 살고 있는 그녀가 그 방편을 마련해 주면서 만나자고 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만나자고만 하니 이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래도 전화가 왔으니 뭐라고 말은 해야 한다.

“아.......... 정말로 나오셨군요. 못나가서 미안합니다.”

“선생님 저는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나오세요”

그녀의 집요한 요구(?)는 계속된다. 나갈 수 있는 방도를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른체 그날 그녀와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일이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날 저녁에도 똑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밤 9시쯤 또 걸려온 전화. 내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녀는 더욱 강경하게 나올 것을 요구(?)했다. 만일 오늘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매일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이다.

저렇게 간절히(?) 만남을 원하는데 어떻게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방도가 없을까? 나는 묘안을 찾기 시작했다. 만난들 뭐 대단한 일이야 있겠는가마는 도대체가 어째서 나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여 나는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기로 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안내원을 따라 일정을 진행하는 도중 나는 그 안내원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내일 아침 여보도에 나가 운동을 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그가 관계 상부와 의논을 했는지 그날 밤 내일 아침 운동을 해도 좋다는 통보를 해왔다.

한 밤중에 역시나 걸려온 그녀의 전화에 오늘은 답변을 줄 수 있는 구실이 생겨 그날은 신이 났다. 그녀에게 내일 저녁이 아니라 아침에 비로소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새벽 운동시간에 여보도로 나오라고 통보 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잠을 잤는둥말았는둥 새벽같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는 호텔문을 나선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막 바로 호텔문을 나갈 수가 없다. 경비원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 것이다. 여보도로 운동하러 나간다고 말하자 그는 관계처에 연락을 했고 잠시 후 안내원이 나왔다. 그 안내원과 같이 여보도 운동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불사! 혼자서 운동하도록 허락을 한 것이 아니었구나. 난감했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그 안내원을 따라 이른 아침 여보도를 나가 운동을 시작했다. 체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벤치 끝에 손을 얹고 팔굽혀펴기도 하고, 그러나 운동이 제대로 되겠는가? 신경은 온통 그녀에게로 가 있다. 어디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우거진 버들 숲, 숲속으로 꾸불거리며 뻗어난 산책로, 군데군데 놓여있는 나무 벤치들. 여보도는 연인들의 산책로로 손색이 없는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공기가 맑은 기분 좋은 공원이었다. 북한에도 이렇게 여유로운 공원이 있었구나! 새삼 감탄하며 운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안내원이 말한다.

“동무 우리 같이 뜁시다”

안내원이 앞장 서 뛰고 내가 그 뒤를 따라서 뛴다. 나는 될수록 앞선 안내원과의 간격을 멀리 넓히며 주변을 계속적으로 살핀다. 그런데도 그녀의 모습은 발견할 수가 없다. 아... 아침에도 그녀를 만나는 일은 허사가 되는가 보구나! 그녀가 만나자고 독촉만 했지 실은 나를 만날 수 있기에는 역부족인 처지인가 보구나.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고개를 돌리니 뒤편 저만치에 큰 소나무가 있고 그 밑에 한 여인이 보인다. 약간 멀리 떨어져 있어 뚜렷하게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녀였다.

어떻게 할까? 앞서 가는 안내원은 계속 뛰고 있는데..., 그냥 가서 그녀를 만날까? 아니면 안내원에게 말을 하고 그녀를 만날까? 그녀는 빨리 자기 쪽으로 오라고 연신 손을 흔들고 있다.



아침에 공원에 나타난 3년 전의 그녀

 

앞에서 나를 인도하여 뛰는 안내원.... 뒤에서 오라고 연신 손을 흔드는 그녀.

아침의 여보도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채 뽀얀 새벽이다.

그러나 약간 스산한 공기의 차가움은 아랑곳없이 내 가슴은 뜨거운 열기로 차오르는 듯하다.

어떻게 할까? 그냥 안내원을 피해 살짝 만날까?

나를 책임지고 운동까지 같이 해주는 안내원이 바로 앞에서 뛰고 있는데 그의 눈을 피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해서 그녀를 만난다면 혹 그 안내원은 그 일로 해서 상부로부터 문책을 받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또 내가 안내원에게 저 뒤 소나무 밑에 있는 여인을 만나겠다고 허락을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허락을 해줄까? 아마도 허락을 안해 줄지도 모른다. 설령 그가 만남을 허락해준다 해도 분명 자유스러운 만남, 자유스러운 대화는 나누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가 옆에서 만남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뛰면서도 생각은 온갖 경우를 가정된 상황에 대입시켜 보기에 바쁘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생각을 말자. 기회는 이 때 뿐이다. 그녀를 만나자. 그렇게 기다리던 북한의 민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았는가. 앞서 뛰는 안내원과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멀어지게 하면서 안내원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기회를 엿본다.

안내원은 내 속도 모른 채 ‘동무 빨리 뛰시라요’ 하면서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든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만 하고 오히려 속도는 더 늦추면서 뛰고 있다. 어느 정도 뛰었을까 마침 돌아가는 모퉁이가 있고 그 곳에는 버드나무 숲이 우거져 뒤가 잘 보이지 않는 지점이 나왔다. 앞선 안내원은 그 모퉁이를 돌아 꺾어진 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이때다 하고 나무숲 사이로 살짝 몸을 숨겼다. 그리고 뒤를 보았다. 그녀는 그러한 나의 행동들을 지켜보면서 여전히 손을 흔들어 빨리 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그녀를 향해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안내원이 눈치를 채면 안 된다.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죽이면서 뛴다. 힐끔힐끔 뒤를 돌아다보면서 숨을 죽여 뛰는 내 모습을 지금 회상해보면 쿡쿡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 당시 나는 왜 그렇게 겁이 없었을까? 너도 나도 감히 엄두를 못내는 시기, 북한 그것도 평양 한복판에서 나는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완전히 자유로운 만남을 갖기 위해서 당국의 눈을 피해 용감하게 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왜 그녀를 만나고자 했나

앞뒤 전후를 계산한다면 도저히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녀가 스스로 내 옆으로 다가와 안내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만난다면 모를까 바로 앞서 있는 안내원의 눈을 피해 그 여인을 만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그것도 평양 한 복판에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일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참 용기 있는 사나이(?)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나온 것일까? 3년 전의 그 여인을 다시 만난다는 기쁨? 아니다. 그것 때문이라면 이렇게 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당국의 신임까지 잃어가면서 그녀를 꼭 만날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위험한 일을 나는 감행했던 것일까? 기억을 더듬어 본다. 호기심? 호기심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무척 많은 아이였다. 소학교 시절 물상(물리) 시간에 우주의 근원에 대하여 배우는데, 분자-원자-소립자, 그 다음 그 다음, 또 그 다음은 무엇이며, 그렇다면 우주의 근원은 無가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몇 날을 밤을 새우며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평양에서의 나의 용감한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민족 분단에 대하여 깊은 감상을 갖고 있었다. 남북은 다 같이 한민족 한 동포라는 관념이 언제나 떠나지 않고 생각의 중요 부분을 점령하고 있었으며, 이 분단 문제를 푸는 길이 무엇이겠는가를 늘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나의 생각이 북한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고 싶은 욕망으로 나타났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래서 나는 북한 당국이 안내해주는 코스대로 만이 아닌 자연스러운 북한 인민들의 생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늘 기다려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의 스스럼없는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꼭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진실한 통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또 남북문제의 확실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68년이 지나도록 남북간에 간격은 여전하고 아니 오히려 더 넓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북 사이는 여전히 평행선이고, 통일의 날은 언제일지 알 길이 없다. 이렇게까지 통일의 날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통일 희망이 요원해진 배경에는 아마도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는 점 그것도 분명 한몫을 했을 것이다. 

드디어 만난 그녀와 그녀의 아파트로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누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 본성이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그렇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은 이점에 있어 상당히 강열하다. 군사 독재 체제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고 수없이 피를 흘리면서도 기어코 민주화를 달성하지 않았는가?

민주화 이후 또한 밤낮 없는 노력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국가로 성장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민족의 이러한 저력, 불의에 대한 저항력 그리고 발전을 향한 눈부신 노력 등은 결코 세계 어느 민족에 비해 뒤지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 동포 또한 우리와 똑 같은 기질과 성품을 가진 우리와 핏줄을 나눈 우리의 형제들이 다.

그런데 어떻게 68년이 넘는 일사불란 체제가 가능하며, 전혀 내적 소요 없이 정치적 평온이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나는 공식, 비공식의 모든 가능한 자리를 가져보고자 했던 것이다. 공식적 자리는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더러 있어 왔으나 오늘 같은 비공식적 자리는 참으로 얻기 어려운 기회가 아닌가?

나는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그녀가 가까워 올수록 얼굴이 후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드디어 그녀와 마주 섰다.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는 그녀의 손이 떨리는 듯하다. 3년만의 만남... 아 평양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구나.

그녀는 나를 안내하여 그녀의 아파트로 가자고 하였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버들 숲 사이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군의 아파트들이 보였다. 거기에 그녀의 아파트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아파트는 B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아파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먼 그녀의 아파트

걷다보니 가깝게 보이는 듯 했던 아파트는 생각보다 멀었다. 그렇게 빨리 당도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상당한 시간 걸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과연 그 안내원에게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을까 조바심에 긴장까지 더해진다.

뒤를 돌아보니 무성한 버들 숲 사이로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그러나 저 편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던 안내원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만일 이 상황을 눈치채고 뒤를 돌아본다면 우리의 만남은 당장 들통이 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될까?

잠간 여기서 말 머리를 돌려... 엊그제 서울 관악구에서 참관단이라는 단체의 모임이 있었다. 나도 그 모임에 참가했는데 거기 나온 회원들이 모두 관악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평양의 그 여인’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양의 그 여인과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해 나에게 물었다.

아! 여기서 뜻밖의 얘기판이 펼쳐지는구나!

참으로 흥미로운 얘기판.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는 중 화재는 자연스럽게 ‘관악신문’으로 집중되었고 그와 관련 거기 모인 분들이 이런저런 질문들을 해왔는데 거기서 나에게 던진 질문들은 대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북한에서도 남한에서처럼 그런 일이 평양에서 벌어질 수 있는가?’ 라는 의문과 ‘그런 일이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 여인을 탈북시켜 현재 같이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이었다.

전자의 질문은 주로 남성들이 했고 후자의 질문은 대부분 여성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통일문제에 대해 제법 전문가적인 질문을 하는 분도 있었고 혹자는 그런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이 순수 인간적인 측면의 질문들을 하기도 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지금 연재되고 있는 ‘평양의 그 여인’을 쓰고 있는 이유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기도 하여 오늘 관악신문을 통해서 그 두 부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보려고 한다.

이런 희한한 일이 그렇게도 엄격한 통제 사회인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경은 과연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북한의 포섭 공작이다

왜?.

모르는 것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누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해준 사람도 없고, 사전 예고도 없이 자연스럽게 내 앞에서 이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유추해서 그 원인을 해석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하여 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되는지 말해보라고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오히려 되물어 보았다.

어떤 분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북한 당국의 공작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 당국이 나를 필요로 하여 여인을 앞세워 공작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여인이 순수하게 사랑을 느껴 그 어려운 통제의 벽을 뚫고 지금 그야말로 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분석은 대게 여성들의 몫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듯 동의하기 어렵다. 내가 뭐 그렇게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매력남도 아닌데 그렇겠는가가 그 이유다.

이 두 부류의 답변. 나의 생각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일은 너무도 뜻밖에 전혀 예상을 못하는 사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그 일은 북한 당국의 공작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북한 당국이 나에게 그런 공작을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잘 나오질 않는다.

나는 북한을 오가며 통일운동을 하는 동안 내내 나의 마음속에 충만해 있던 민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통일에 대한 정치적 편견에 때묻지 않은 순수 견해들을 거침없이 얘기해 왔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그러한 나의 취향을 이미 알고 있고 결코 양심에 없는 편견으로 한쪽을 편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나를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름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벽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있다고 본다. 오늘날 소위 종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여 종횡무진으로 우리 사회를 두동강 내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이 종북의 한쪽 끝에 서서 ‘민족’을 팔아먹고 ‘통일’을 팔아먹는 ‘민족장사꾼’, ‘통일장사꾼’, ‘편견의 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인간사 매 한가지이다. 아무리 애국자인 척 해도 마음속에 똥으로 가득 찬 사람 지척이고 박사 판검사 의원 나리들 건사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면에는 때 묻고 치사한 인간의 모습 감추고 가면무도회로 인생을 농락하는 이들도 사방에 널려있지 않은가.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개인의 호사와 이익을 위해 타를 농락해버리는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이름을 가지고 점잖게 뒷짐 지고 헛기침하는 참으로 가소로운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가 아닌가.

나는 뭐가 다른가. 북한 당국이 호사스런 조건을 제공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옆에 두어 준다면 또 난들 뭐가 달랐겠는가. 좋다 하고 거기 따라서 춤을 출 위인이 바로 나 아닌가.

돌아보면 사실 나라는 사람 별 것 아니다. 언제 그 흔해 빠진 국회의원 뺏지 한번 달아본 적도 없고 한국 사람들 그렇게 좋아하는 관록을 먹어본 적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일 뿐 아닌가.

그러면서도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가 과연 국회인가, 내가 만일 국회의원이라면 이렇게 바로잡겠다.’라고 큰소리친다.

또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이런 방법으로 반드시 통일을 시키겠다’느니 호언하는 일도 있으니 나야 말로 참으로 가소로운 인간이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나요. 그 비싼 제작비 들여 만드는 관악신문에 뭐 특별한 도움도 못주는데 더 많은 지면을 달라하기도 어렵고 오늘은 여기서 끝을 맺을까 합니다.

다음 호에서 여러분들이 그렇게도 궁금해 하시는 그 여인과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평양의 그 여인’과의 달콤했던 얘기의 결과를 모두 밝히겠습니다.

관악신문(gtimes@hanmail.net)

출처 

http://www.gtimes.co.kr/bbs/bbs.asp?exe=list&group_name=126&section=14&category=0&page=3&search_category=&search_word=&order_c=bd_idx_num&order_da=d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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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y-y3GIjvK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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