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어느 나라든지 전대미문 미증유의 북한인권유린을 방치 외면하는 것에 보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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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누구든지 어느 나라든지 전대미문 미증유의 북한인권유린을 방치 외면하는 것에 보응을 반드시 받게 될 것이다. [잠언 24:11.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12.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찌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강도만난 이웃을 구출하는 것이 곧 이웃사랑이라고 예수님은 정의하신다. [누가복음10:25-37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율법사가 예수님께 묻는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우선 율법을 통해서 그 길을 알려주시려고 하신다. 율법사는 자기의 깨달음을 직고한다. 하나님 앞에 서면 자기 속의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진리 영생의 도를 깨달은 만큼 토로하게 된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율법의 요약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완성이 아니겠습니까?’하고 그의 깨달음을 토로한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바른 깨달음이라고 인정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아울러 그리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차이가 있다. 알아도 이를 행할 수 없으면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기준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생의 길을 정하신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라고 명령으로 그의 말을 인정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시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 기준의 사랑을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신 분이시고 그 길이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유일무이 중보시다. 그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성령의 통치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한다. 그리하라고 명령하신 분은 영생의 도를 정하신 하나님이시고 그 아들 곧 독생자 예수이시다.
이 말씀의 의미는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아들이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받아서 그 사랑의 통제와 그 사랑의 지혜의 지휘를 받아 하나님 기준의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라는 의미이다. 그 사랑을 가진 자들만이 하나님의 구국 구원 구속 구출 구명 구조 구난 구제 구휼 치료 치유 개선 개혁 개설 청소 및 모든 선함과 사랑의 섬김을 할 수가 있다. 그 사랑과 그 사랑의 지혜를 가진 자들만이 인간의 그 모든 문제를 革罷(혁파)하고 解決(해결)하고 解消(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말씀을 알아듣게 하는 성령의 각성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인간의 기준으로 이룬다고 영생은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기준은 이미 서신 것이다. 율법사는 사랑의 완성을 말했으나, 예수님은 이를 밝혀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의 완성을 명령하신 것이다. 이는 인간의 기준으로 행하는 사랑과 인간본질의 사랑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를 죄와 사망의 법이라 한다.
예수님이 “옳도다.” 하고 인정하신 것은 성령의 생명의 법으로 행해야 하는 것을 예시하심이다. “로마서 8:1-3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13:8-10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성령의 생명의 법은 인간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시고 그 사랑의 통제와 그 사랑의 지혜의 지휘를 통해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된 자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스탠바이한 자들이다. “누가복음 12:35-48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성령충만으로 사랑의 몸이 된 것이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는 하나님 본질의 사랑이 시키면 곧바로 순응하고 순종하는 스탠바이가 그것이다. 즉각 문을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자들을 비유로 하여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들고 서 있으라 하신 말씀의 비유다. 이는 성령의 기름부음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주시는 성령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 그 사랑으로 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도록 훈련된 상태가 곧 허리에 띠를 띤 상태요 손에 등불을 든 상태다. 사랑이 시키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가 곧 서 있는 상태이다.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이 맞출 수가 없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훈련을 맞추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맞춰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이 가능해야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할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시간을 알 수가 없기에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과 동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 때문에 성령의 각성이 절실하고, 성령의 충만이 절실한 것이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그때만이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서 하나님과 동행을 완수하여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흰옷을 입은 상태라고 비유한다. [요한계시록 3:4-5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언제든지 하나님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동행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곧 종의 신분에 충성된 것이다. 인간은 결코 자기중심적인 기준으로 행하면 안 된다.
율법사는 하나님 기준의 사랑으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해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기록한 말씀을 따라 그가 깨달은 분량만큼 말을 한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성경을 깨달아야 하는데, 진리의 영되신 성령의 각성으로 이를 깨닫게 된다. (에베소서 1:8-10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7-1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성경을 깨우치는 성령의 각성이 아니면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중심적인 기준으로 해석하여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기준은 오류의 첩경이다.
(베드로후서 3:15-17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인간기준으로 성경을 푸는 것을 억지로 푼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오류에 빠져 영영 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자기기준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는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게 되어 엄히 때리신다 하신다.
이와 같은 의미들을 담아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강조 명령하신 것이다. 율법사는 예수님이 그의 깨달음을 인정하신 것에 으쓱해진다. 하여 내친걸음을 한다.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성령받은 자들의 이웃은 누구인가? 인간의 이웃은 누구인가? 하나님 사랑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웃은 누구인가? 오늘의 본문은 사망에 끌려가고 살육을 당하게 되는 자들을 구원하지 않으면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신다고 하신다.
참으로 우리가 도와야 할 자들이 누군가를 분명히 하나님의 기준으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망에 끌려가게 하고 살육을 하는 자들, 그 加害者(가해자)들의 반대편에 서서 오히려 피해자를 구출하라고 하시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기준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것은 곧 악마의 종자들 그 흉수들 흉기들에게 당하는 피해자들을 구출하라는 말씀이다. 공동정범의 의미로 본다면 피해자들을 구출하지 못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공동정범이다. 하나님과 그 본질로 하나님의 시간에 동행하는 자만이 그것들을 제압하고 그것들에게 당하는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다.
그들을 구출할 수 없다면 이는 가해자와 동일범, 공동정범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면 그들을 구출할 수 없는 것이다. 못해서 공동정범이 되고 안 해서 공동정범이 되는 것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공동정범은 동일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북한인권의 그 참혹한 실정을 외면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기름부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받아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고 그 힘으로 북한주민의 해방에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가 섬겨야 할 이웃은 악마와 그 종자들에게 당하는 이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강도는 악마와 그 종자들 그 흉수와 흉기들이다. 누구든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는 자들은 악마의 침입을 막을 수 없고, 그 침입에 눌려 악마의 분노로 행하여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 때문에 언제든지 악마가 덮치면 강도가 된다는 것도 직시해야 한다.
못해서 방치 외면하는 공동정범과 안 해서 방치 외면하는 공동정범의 차이는 분명한데 특히 악마의 침입을 받아 순식간에 살인의 흉기가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도 역시 성령의 각성 그 정직한 영의 각성을 받아야 뼈저리게 깨닫게 되고 각인되는 것이다. 성령의 근신과 경성에 묶여야 비로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그 사랑을 구현하는 몸이 된다. 그때 비로소 피해자들을 구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는 자들이 되라는 의미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교회의 성직자들이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자기중심적인 기준으로 해석하여 행하기 때문에 본말이 전도되는 짓을 한다. (호세아 6: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사랑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만이 악마와 그 종자들의 손에서 하나님 원하시는 시간에 즉각적으로 인간을 구출할 수 있다. 그들만이 성령의 사랑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구국 구원 구속 구출 구명 구조 구난 구제 구휼 치료 치유 개선 개혁 개설 청소 및 모든 선함과 사랑의 섬김을 할 수가 있다. 그 사랑과 그 사랑의 지혜를 가진 자들만이 인간의 그 모든 문제를 革罷(혁파)하고 解決(해결)하고 解消(해소)할 수 있다. 그런 자들이 되어야 이 나라가 북한을 해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남북의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고 통일 대박이 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만이 악마와 그 종자들을 능히 제압하고 영구 격리케 하고 국민으로 악마와 그 종자들의 득세를 막아내는 사랑의 힘을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할 수 없다. 이런 이치를 알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 충만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의 覺醒(각성) 성령의 刻印(각인)을 받아낸다. 성령으로 각인된 자들만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 모든 구원을 실행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그들은 그 행위대로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2-13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요한계시록 22: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하는 것에 목마른 자들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라고 하신다. 그들이 그 받은 분량만큼 피해자들을 구하는 그 구원을 완수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곧 강도만난 자를 구출한 사마리아인으로 비유된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강도만난 자가 우리의 이웃이다.
사마리아인으로 비유하신 것은 이는 인간의 DNA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이신 사랑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심이다. 그분들만이 하나님이 인애를 원하시고 인애 없이 드리는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성령으로 깨달은 자들이다. 성령의 각성의 각인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로 삼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한국교회는 지금 성령의 각성으로 돌아와야 한다. 김일성교도들이 숨어 들어와서 강도만난 이웃을 외면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교도들이 각종 공작에 따라 교계에 입문하고 그것에서 거점을 확보하고 또는 권력투쟁을 하여 가해자를 편들고 두호 비호 옹호 보호 변호 원호 미화하는 짓을 성경을 빙자하여 하고 있다. 그것은 피해자들을 영구적으로 核(핵)멍에에 잡혀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가증스러운 짓인데, 이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로 간파 격파 분쇄하도록 구분하고, 이를 彈劾(탄핵)해야 할 성도가 받아 누릴 성결의 영의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다. 그 때문에 북한인권에 대한 침묵으로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2-3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성령이 오시면 세상을 책망한다고 하셨다. “요한복음 16:7-15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의 소리를 세상에 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사랑의 행동이 아니겠는가? 북한인권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교황의 의미는 敵(적)그리스도的(적)이다. 강도만난 이웃에 대한 외면 방치는 강도의 편들기이다. 대한민국의 교회는 성령의 울림의 우레가 되어야지 악마의 힘에 눌린 침묵, 벙어리 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속에 악마를 영원히 불못에 던져 심판하실 하나님이 거하시면 어찌 이를 외면하겠는가? 결코 눌릴 수 없어야 하는 것인데, 모두가 묶여 이를 방조, 공동정범이 되고 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은 그 세대의 악에 관한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판결을 제시하고 이를 책망하였다. 하지만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위해 고생의 떡과 물을 마신 미가야 선지자처럼 된다 하여도 그 세대의 악을 책망해야 한다. 악을 사랑하는 불행한 세대의 길은 성령의 가라사대가 희소하고 그 책망이 消滅(소멸)되는 세대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19-24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성령을 소멸치 않는 세대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성령의 각성을 열심히 구하는 세대이다. 그 세대만이 지워지지 않는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성령의 각인을 그 심비에 받아 언제나 강도만난 피해자를 구출한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진리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 행하는 사랑의 행보는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수하며 북한해방을 구현하는 것이다. 때문에 성령의 각성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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