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빨갱이 경제는 악마경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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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남북 빨갱이 경제는 악마경제 반역경제 뇌물경제 향응경제 지하경제 탐욕경제 불륜경제 패륜경제 우상경제이다
[잠언 28:27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사람마다 가난의 基準(기준)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 기준의 가난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에 가난하다면 그는 사람답지 못한 인생일 것이다. 만일 우리사회가 그것에 기준을 두고 그 기준에 따라 사는데 전심전력한다면 이미 벌써 북한인권을 해소하고 북한해방을 이루고도 남았을 것이다. 재물을 사랑하여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것에 絶叫(절규)하는 사회라면, 그것 때문에 아파하고 呻吟(신음)하고 고통하고 몸부림치는 세상이라면 남북의 빨갱이는 벌써 붕괴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짓을 하는 것은 재물을 탐함에 있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재물을 탐하는 자들에게 구제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도리어 구제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북괴의 짓이 세상에 만연할 것이다. 돈을 가질 수 있다면 사람을 속이고 폭행하고 죽이는 짓을 예사로 여기는 세상에서 救濟(구제)하라는 電波(전파)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受信機(수신기)일 뿐이다. 이런 수신의 능력은 본질에서 나온다. 악마의 본질을 가진 자들은 악마의 소리만 듣는다. 성령의 본질을 공유하는 자들은 성령의 소리만 듣는다. 이 본질 안테나의 차이는 영원한 간격이다.
救濟(구제)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 본질 안테나의 성질로 인해 각기 다르게 送受信(송수신) 한다. 구제라는 명목으로 돈을 후려치는 짓을 하는 것은 악마의 본질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사랑의 통제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본질과 그 기준의 구제를 한다. [마태복음 6: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賞(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隱密(은밀)히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데 이미 富者(부자)가 된 자들이다. 하나님 기준의 부자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께 통치받는 분량의 富饒(부요)에 있다. 그 분량이 많은 자들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부자들이다.
그들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구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들만이 진정성이 있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이다. 사람마다 재물에 그 부요의 기준이 있다면 상대적인 빈곤감에 시달릴 것이다. 누군가의 구제를 간절히 갈망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분량이 많은 것, 그러한 부자들은 재물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상대적인 빈곤감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에서 해방되고, 지족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하나님의 손길이 되어 세상을 救濟(구제)한다. 때문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분량, 곧 그리스도의 통제가 富饒(부요)한 세상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통제가 전혀 없는 자들, 누군가에게 마음의 손을 내밀고 동정을 구하는 자들은 타인을 구제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재물이 많아도 언제나 배고프다고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 자기를 구제하여 주기를 꿈꾼다. 이들의 심리는 악마와 그 종자들에게 눌린 상태, 그 侵害(침해)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하물며 악마의 종자들의 심리는 救濟(구제)가 전혀 발붙일 곳이 없다. 혹독 가혹 잔혹 사악하고 흉악하다. 그런 심리가 곧 북괴 남북의 빨갱이 심리이다. 한반도 以北(이북)을 착취도 모자라다 하여 혹독하게 강탈 늑탈 수탈 억탈 겁탈 약탈하는 중이다.
以南(이남)은 그것들에게 뜯겨 먹히는 중이다. 그들은 한민족을 잡아먹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들에게 한민족은 다만 飼育(사육)의 대상이다. 그들이 기르는 짐승처럼 언제나 팔아먹고 잡아먹고 즐기는 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이런 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자들이다. 짐승은 다만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지만, 이들은 잡아먹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을 즐기고 그것에서 優越感(우월감)을 갖는다. 이러한 심리는 악마의 심리이다. 악마의 심리는 악마의 본질에서 나온다. 악마의 본질을 공유하는 것은 곧 저주를 自請(자청)한 것이다. 악마는 인간의 저주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남북 빨갱이와 악마의 종자들은 저주스러운 인간들이다. 그 저주스러운 인간들이 득세하는 것을 同調(동조) 協助(협조) 援助(원조)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도 역시 共同正犯(공동정범)이고 저주스러운 자들이다. 이들의 득세를 방관하고 외면하는 자들은 저주를 팽창하게 傍助(방조)하는 것이다. 농부가 여름날에 잡초가 무성하면 이를 반드시 제초해야 한다. 제초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사람을 잡아먹는 정신이 팽창하여 한민족의 심리가 된다면 이는 악마의 종자들이고 그 흉기들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들을 곧 살인강도떼들이라 한다.
살인강도심리가 한민족의 심리가 된다면 어떻게 무역입국을 할 수 있겠는가? 범죄단체로 전락될 뿐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목회자들이 살인강도 떼에 가담하고 있다면, 참으로 저주스러운 세상이 된 것이다. [호세아 6:8.길르앗(Gilead="rocky region")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遍滿(편만)하도다 9.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by consent=shekem{shek-em'} =shoulder, back이다. Shekem{shek-em'} Shechem="back"or"shoulder"라는 지명인데 합심을 의미한다.
구조적으로 합심하여 행악자의 고을을 만들고 피의 발자취가 편만하게 한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목회자들이 도리어 거기에 어깨 ‘shoulder’를 보태 합심한다. 그런 의미를 ‘세겜의 길’이라 한다. 이런 세상들은 호세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저버린 세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러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부요함을 추구하는 세상으로 가도록 성령의 각성을 구하자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부요한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는 진정성 있는 구제의 출구를 여는 것이다.
[호세아 6: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라는 의미는 곧 통치를 받자이다. 알자의 원어는 yada`{yaw-dah'}이다. ‘야다’는 통치를 받아야 안다는 의미이다.
겪어봐서 안다는 의미의 ‘to know’ ‘learn to know’ ‘to perceive’ ‘to perceive and see’ ‘find out and discern’ ‘to discriminate’ ‘distinguish’ ‘to know by experience’ ‘to recognize' 'admit' 'acknowledge' 'confess' 'to consider' 'be acquainted with'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안다는 것을 강조하심이다. 그 사랑의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 일에 힘쓰는 세상이 되어야 비로소 구제를 구제답게 하고 사는 인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여는 것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구제하는 인간이 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의 각성으로 전하는 자들이 구제의 손길을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도록 이끌어가는 손길이 곧 하나님 기준의 구제문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한 손길도 역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행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부요한 자들은 늘 구제하고 구제에 힘을 쓰며 그런 분위기 곧 그리스도의 통치확산에 이바지한다. 그것에 열심을 내는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 그리스도의 통치에 궁핍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심이다. 그 반대는 저주이다.
“잠언 11:24.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26.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구제하기를 힘쓰고 그리스도의 통치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나눠주는 자들은 그 머리에 복이 임하고, 그렇지 않으면 악마의 흉기 그 떼강도 근성 확산 창궐에 기여하고 저주에 매몰된다.
인간이 가진 仁愛(인애)는 아침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이 심히 작은 분량이다. [4.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 때문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통치의 양식의 부요, 구제다운 구제를 하게 하는 하나님의 통치의 부요에 이르게 한다. 이런 부요는 하나님의 본질의 참여에 부요한 자들이 됨을 의미한다. 늘 源泉(원천)처럼 샘솟는 하나님의 본질의 사랑을 공급받는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는 하나님을 통치를 받아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되는 것의 숙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본질로 구제하는데 능숙한 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는 의미의 말씀이다. 여기서 아는 것 ‘knowledge’ 이를 원어로 da`ath{dah'-ath}라 발음하고 knowledge, perception, skill, discernment, understanding, wisdom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본질로 사는데 능숙한 숙달된 인간이 되어야 비로소 세상을 구제할 수 있고, 구원 구명 구조 구난 구출 구국 치료 치유 모든 선한 섬김과 혁신 혁파 개선 개혁 일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나라가 북한인권법제정에 이리 인색한 것은 그만큼 악마와 그 종자들에게 눌려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 곧 그리스도의 통치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의 통치를 받는데 부요치 못하다는 雄辯(웅변)이다. 그만큼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도리어 돈을 더 사랑하여 두 주인을 섬기는 반역중이다.
이들은 곧 淫女(음녀)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다. 음녀란 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유혹하는 자들이란 의미이다. “잠언 23:27.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28.그는 강도같이 매복하며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그 때문에 궤사한 자들 곧 악마의 종자들 남북 빨갱이들의 득세와 창궐을 가져오는 것이다. 음녀는 소시의 짝을 버린 자들을 의미한다. [7.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8.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그들은 자취는 피 발자취로 편만하다.
[9.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11.유다(Judah="praised")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상은 모두 다 하나님의 통치의 절대빈곤에 빠져있다. 거기는 악마의 종자들이 종횡무진하는 세상이니 지금의 북한인권유린의 세상이다. 전대미문으로 참혹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 南下(남하)한다면 저주스럽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통치의 분량 곧 하나님의 본질의 부요로 우리 城(성)을 구축하고, 그것들의 남하를 막아야 하고, 마침내 저들을 붕괴시켜야 한다. 그것이 이 세대의 모든 목회자들과 교회들의 임무요 사명이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에스겔 13:5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 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수가 많아지게 하는 것이 곧 무너진 성을 수축함이다. 악마의 기만 폭력 살인 강도근성 南下(남하)를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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