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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은 평양입니다. -4
Korea, Republic of 림일작가 0 541 2015-03-18 08:33:11

저는 평양에서 9년간의 사회안전부 노무자생활을 마치고 1993년 7월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위치한 ‘대외건설기업소’에 입직했습니다. 김일성의 “리비아 건설교시”로 생긴 북한해외건설모체로 평양의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죠.

아무리 노동자라도 해외파견은 중앙당 조직부에서 최종결정하기에 입직조건이 엄청 까다롭습니다. 본인직계 6촌까지, 처가 4촌까지 안에 범법자, 신원불명, 해외연고 등이 없어야 하죠. 건강한 신체는 기본이고 건설기능도 물론이고요.

제대군인, 대학졸업생, 체육선수, 학교선생, 상업지도원, 운전수, 제대군관, 호텔요리사 등의 경력을 가진 대략 3천명의 직원들이 국내와 외국을 순환근무 합니다. 저는 여기서 입직 3년 5개월 만에 쿠웨이트로 발령 받았죠.

그토록 바라던 해외노동을 해보니 너무 허망했습니다. 하루 14시간 노동은 기본이고 한 달에 2일, 그것도 반나절씩만 휴식했다면 거짓말 같죠? 그렇게 5개월이나 일을 했는데 120달러 씩 매달 준다는 월급은 만져도 못 봤습니다.

고용업체에서 지급하는 월급은 북한당국계좌로 자동 이체되어 우리는 그냥 세끼 쌀밥에 고깃국 먹으러 외국에 나왔던 것이죠. 평양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여 1997년 3월 18일 한국대사관을 찾아 망명신청을 했는데, 바로 오늘이 그날입니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덤으로 사는 인생을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불쑥 듭니다. 인민의 독재자 김정은이 버렸고, 세상사람들이 냉정하게 외면한, 길가의 조약돌 마냥 보잘것 없는, 우리 못난 탈북자들을 대한민국이 받아주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땅에서 김정은이 보다 나은 참 인간다운 삶을 사는 우리들이지요.

 

래 동영상은 제가 있던 평양의 '대외건설기업소' 노동자들이 지난 2011년 8월 평양시 창전거리 건설현장에 동원된 모습을 촬영한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19년전 오늘, 쿠웨이트에서 운명(탈북)을 바꾸지 않았다면 이 화면 속에 나왔을 수도 있었겠죠. 

 

자! 2분 남짓 되는 짧은 영상 함께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3meSFAMavEw&feature=player_embedded

 

2015년 3월 18일 서울에서...

- 림 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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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복 ip1 2015-03-18 09:25:17
    임작가에게 참으로 뜻깊은 날이네요.
    진정한 인간으로 태어난 생일이네요.
    축하드리며
    그 감사를 잊지 마시고 통일위업에
    지금같이 이바지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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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림일작가 ip2 2015-03-18 09:50:02
    이민복 풍선단장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탈북선배인 이 단장님에게서 많이 배웁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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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5286 ip3 2015-03-18 17:55:44
    철근은 제대로 넣기는 하나요?
    창구멍 위치가 조금씩 다르네요? 한층 올라갈때마다 주먹구구로
    " 야, 여기다가 창틀 세우라우!"
    뭐, 이렇게 하나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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