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긍선 신부님이 말하는 ‘보수’란 누구입니까? (광야의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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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광야의소리 http://www.aware.co.kr 에 있는것입니다. 장긍선 신부님이 말하는 ‘보수’란 누구입니까? 김태우 미카엘 (삼성동 본당) 사순 제4주일(3월 26일) 서울 주보에는 「진정한 화해와 일치」라는 제목의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님(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의 글이 실렸습니다. 이 글에서 장 신부님은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 ‘용서하는 마음’ 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장 신부님은 좁은 지면에 ‘보수’라는 표현을 두 번씩이나 사용하시면서 보수층의 생각이 틀렸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장 신부님은 “북한에 대한 지원과 화해의 몸짓을 반민족적 행위로 봐서는 안 된다,” “북한이 변화만을 재촉해서는 안 된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이 무슨 죄가 있는가” 등의 논지를 펼쳤습니다. 생각해볼 점이 많은 글입니다. 수십만 명의 교우가 읽는 주보에 실린 글이라는 점에서 볼 때 경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외면하는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는 참으로 어렵고도 오래된 화두입니다. 명색이 전문가인 필자도 지난 15년 동안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지만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장 신부님이 주장하시는 대로 현 상태에서 대북지원을 계속한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금강산 관광을 통해 보내는 외화, 정부가 보내는 비료나 쌀, 민간차원에서 보내는 구호품 등을 수령하는 주체가 북한당국이라는 점은 장 신부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주민은 북한당국이 수령하여 나누어주는 것을 받을 뿐입니다. 이러한 대북지원이 문제투성이의 북한체제가 더 오래 버티도록 돕고 있다는 사실은 장 신부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체제가 존속하는 한 통치자에 대한 우상숭배는 지속되며 북한주민은 하느님도 복음도 모르는 암흑 속에 가두어집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일까요? 이런 이유로 대북지원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분들이 진정 ‘잘못된 보수’일까요? 전문가들의 걱정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남한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달러가 북한 정권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주민이 굶주리는 중에도 주요 간부들은 충성의 대가로 상부로부터 특별 하사금이나 선물을 받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쌀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군에 들어갑니다. 북한주민의 농사를 위해 보내는 비료도 그렇습니다. 일부는 군으로, 일부는 중국 시장으로, 그리고 일부는 농사일로 나누어 보내집니다. 이 비료를 가지고 군에서는 무엇을 할까요? 긍금하지 않습니까? 이론적으로는 질소비료는 화약을 만드는데 쓰일 수 있습니다. 해서 전문가들은 우리가 보내는 비료나 쌀이 북한군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어 결국 우리의 부모형제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주목합니다. 그래서 필자 같은 사람들은 대북지원은 계속하되 ‘분배의 투명성’은 반드시 짚고 가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장 신부님은 이런 걱정을 해보셨는지요? 대북지원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잘못된 보수주의자’들인 가요? 핵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민해보셨는지요? 우리가 북한을 돕고 있는 중에서 북한의 핵무기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해보셨습니까? 장 신부님도 여느 철부지 대학생처럼 “북핵은 일본이나 미국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므로 우리에겐 해가 없다”라고 주장하실 참인가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핵무기는 군사적 무기일 뿐 아니라 ‘정치외교적 무기’이기도 합니다. 즉, 사용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어도 상대방을 주눅들게 만들고 협상에서 뒷걸음질을 하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향후 북한이 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대남자세가 더욱 오만해지고 남북관계가 왜곡될 수 있으며,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강화되면서 북한 주민은 더욱 확고하게 암흑 속에 가두어질 것입니다. 물론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악몽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고민들 때문에 대북지원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민족화해의 훼방자’인가요? 그렇습니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된 시각과 분업입니다. 북한에 우리가 보살펴야 할 ‘동족’과 경계해야 할 ‘위협’이 혼재하는 한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양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주민을 향한 화해의 노력도 지속되어야 하지만 부릅뜬 눈으로 북녘을 주시하는 초병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합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에서 보면 장긍선 신부님의 글은 깊은 고민 없이 ‘보수’를 비난한 것으로 일단 균형감을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수십만 명의 교우들에게 배포되는 주보에 한쪽방향의 이념성을 강조하는 글을 올린 것은 평신도들을 가볍게 본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방치한 서울대교구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북한을 여러 차례 왕래한 장 신부님의 경력이 이런 경솔함을 초래한 것이라면 더욱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장 신부님께서는 필자의 이런 지적을 수용하시는지요? 수용하지 못하신다면 공개적으로 반론을 개진해 주십시오. 필요할 때에만 말하고 어려울 때는 제의의 권위 뒤에 숨어 침묵을 지키는 비겁한 사제가 되시지 말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광야의 소리」 www.aware.co.kr 입력날짜 : 2006-03-27 (17:30), 조회수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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