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성민> -2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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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정권에 의해 부친이 파멸당하고 자신도 자칫하면 정신노예의 삶을 살 뻔 했던 김성민이다. 그가 남한정착 5년 쯤 되어 아이러니한 일을 접한다. 그즈음 남북관계가 해빙무드로 돌변했다. 평양에서 있은 1차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속은 김대중 대통령(DJ) 이라고 판단했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한 DJ와 달리 정권유지와 홍보, 그리고 금전적 가치를 노린 김정일을 잘 아는 김성민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남북한 당국자 간 상호비방방송이 중단되어도 북한주민들에게 자신들의 비참함을 알려주는 활동이 중단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가 아이디어를 내고 주도적으로 만들었던 ‘자유북한방송’이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자신의 적은 정착금 일부를 내놓았고 홍순경, 강철환, 안명철 등 많은 탈북동지들이 얇은 지갑을 열었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 중에도 홈페이지를 만드는 인터넷 전문가도 있고, 북한에서 아나운서로 일한 경력이 있는 여성, 군부대 선전군인 출신으로 마이크감각이 있는 인재들이 있어 제법 방송국을 꾸밀 수 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인터넷방송은 국내에서 별 제한이 없지만 라디오방송은 정부가 남북한 간의 ‘비방방송금지’ 합의에 따라 승인하지 않았다. 하여 전파송출은 영국의 민간 기업에 위탁하는 방법을 취했다. 영국회사는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기지국을 통해 자유북한방송 전파를 북한으로 송출한다. 북한소식은 내부제보자가 제공한다. 중국과 북한 국경지대에선 중국의 휴대폰이 터진다. 그것을 활용해 정보를 제공하고, 동영상자료는 USB, CD 등에 담겨 국경을 넘어온다. 북한내부의 최상급정보는 몰라도 일반주민동향 소식만큼은 자유북한방송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언론매체다. 긍지감이 한껏 어린 김성민의 얼굴이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습니다. 바로 북녘동포들의 가난한 생활과 비참한 인권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외국인입니다. 한 가정의 주부이며 세 아들의 어머니입니다. 제9회 서울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미국에서 오신 수잔 솔티 디펜스포럼 대표이십니다. 환영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그의 옆에는 갈색 머리의 수잔이 앉았다. 가슴에 분홍색 브로치를 단 연두색 재킷이 제법 어울린다. 의연하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운 매력이 엿보이는 그녀에게서 향기가 난다. 짙고도 긴 속눈썹, 파란 눈의 갸름한 얼굴, 뾰족한 콧날 등은 전형적인 서양여성의 징표이며 매우 친숙한 이미지다. “안녕하세요.” “저희 방송은 처음이신데 먼저 자신과 단체 소개를 간단히 해주시죠.” “친애하는 북한주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디펜스포럼은 1987년 워싱턴DC에서 ‘미국을 강하게 지켜내고 자유·민주주의·인권을 증진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설립된 비영리재단으로 북한과 공산국가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예요. 저는 1989년부터 본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수잔 숄티예요.” “북한의 인권문제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습니까?” “저희는 동구권사회주의 붕괴를 예단했어요. 50% 이상의 지지만 받아도 정상적인 정권인데 100% 지지를 받는 공산당이라면 말이 되나요? 모든 주민들의 사상을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통제하는 공산정권이야 말로 가장 야만적인 집단이에요. 자신들의 영구집권과 부귀영화를 위해 무고한 인민의 희생을 유발시키기도 하죠.” “...” “사회주의 붕괴이후 북한을 예의주시했어요. 정말 미스터리에요. 자신의 우방이며 동맹국인 소련조차도 아무 쓸모없는 ‘사회주의간판’을 내릴 때 그들은 오히려 그 간판을 반짝반짝 닦고 있었으니 말이죠. 개인적으로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의 저서 ‘수용소의 노래’를 읽으며 북한주민들의 심각한 인권유린을 알게 되었죠.”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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