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금수저에 대한 단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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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요.. 흙수저요.. 요즘 사회분위기가 그렇죠. 일명 <계급승계론>, <계급상속론>이라고 한다네요.. 그런데 탈북자가 국회의원에 되는 것에 이것이 좀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편적 현상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포털(네이버)에서 정의하는 금수저란?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너무 좋아 아무런 노력과 고생을 하지 않음에도 풍족함을 즐길 수 있는 자녀들을 지칭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를 탈북자들에 좀 변용해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크게 90년대 이전시기, 2000년대 초반시기, 2000대 중반이후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다들 아시겠지만 탈북자 숫자와 관련 있는데, 이를 특징별로 나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90년대 이전 시기입니다. 안찬일씨 시기는 말 그대로 탈북자 인원이 매우 적었던 까닭에 사회적 분위기도 최상이었던 등 여러모로 좋은 환경에서 직업 등의 대우가 매우 좋았습니다. 조명철씨 시기는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우대가 좀 못하지만 그래도 공기업, 대기업 등 좋은 일자리에 배치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조명철씨도 경쟁 시스템에 참가할 필요가 없으니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녔다가 좀 벅차니까 도중에 그만 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남북한 특수관계 즉, 정치적 이유로 좋고 안정된 직장을 제공받으니, 이것이 오늘날 경제적 자산이 풍족한 결정적인 근원이 된 것 입니다. 그러니까 듣기 거북하겠지만 ‘무임승차형 금수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률적으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이 시기에 온 다른 일반 탈북자들은 “별반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철우씨의 경우를 보아도 좀 반반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철우씨는 완전 자본주의 시스템에 완전 적응한 이례적인 케이스고, 안찬일, 조명철 등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둘째, 2000년대 초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온 탈북자가 대략 3천~4천명입니다. 이때는 탈북자 지원법제도(실제 90년대 후반에 제정)는 자본주의 보편적 경쟁시스템에 합류하도록 새롭게 제정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애란씨 등 북한에서 중앙기관, 교수 등 중상위 이상 경력자들이 지금 이곳에서 거의 절반은 거의 본인 노력으로 이곳 경쟁시스템에서 살고 있겠지요. 그러니까 ‘반반형태의 자수성가’ 탈북자들이 좀 있지요. 이런 사람들은 사실상 90년대 시기와 차이가 있다고 할것입니다. 탈북자가 박사학위를 받고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이 바라는 분야에서 일하지 못하는 시기입니다.
셋째, 탈북자가 1만~ 2만 명 시기인 2000년대 중후반 및 2010년대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온 일반 탈북자는 완전 경쟁시스템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북한에서 뭘 하다가 왔다 해도 ‘90년대 금수저’가 나올 수 없는 시기에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차원의 경우로서 완전 자수성가형, 비지니스형 탈북자가 나올 수는 있겠지요..
넷째, 90년대 이전의 시스템에 의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금수저’입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대표적 경우로, 여기에는 북한 공작원출신, 외교관 출신 등 북한에서 일명 ‘금수저 신분’으로 있다가 여기서 연구원(본질상 연구보조원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탈북자들인데, 이곳은 ‘안가’이기도 합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공개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그들만의 ‘자책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규정상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공개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거의나 허구한 날 경험했던,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북한 내 얘기를 하더군요. 지어는 최근에 온 탈북자들 증언 등을 비슷하게 되받아 말하더군요. 연구원이라면 좀 뭔가 달라야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자본주의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특별히 요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어느 순간에 해직된다고 가정하면 일반 탈북자와 더 힘들게 살아야 합니다.
다섯째, 완전 새로운 형태의 ‘반반형 금수저’입니다. 이 부분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형태로서, 여러 가지 다양한 경우로 해석해야 하는 한계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탈북 공무원의 경우 보편적인 공정경쟁 시스템에 의한 채용이 아닌, ‘불완전한 채용시스템’에 의한 채용이 일반적이다 보니 여기에 문제점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외, 극히 일부이지만 이곳에서 남한 남자와 결혼해서 ‘덕택’을 보는 경우입니다. 시댁의 빽이 좋은 경우 ‘좋은 직업’에 들어 간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탈북 공무원으로 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요즘 서울시 같은 경우, 채용에서 학력, 출신 등을 ‘블라인드’로 처리해서 서류전형을 본다는데, 향후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공정한 채용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여 봅니다. 제가 공천권자라면 안찬일씨처럼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한국 내 자본주의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무하기에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조명철씨 경우 ‘금수저’ 부류에 속하지만, 깔아준 ‘좋은 멍석’을 적극 활용하여 자본주의적 어떤 분야에 대해 지식을 조금이나마 습득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말하려는 취지는 국회의원이면 북한 부분은 한국 내 북한전문가로 될 만한 사람과 대등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편적인 어떤 분야에 준전문가 이상의 것, 그리고 현장에서 사회경험을 함께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저는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의문을 갖습니다. 탈북자가 국회의원이 되면 한 몸 불사르며 탈북자를 위해 일한다?
이상 저의 매우 단순한 생각을 요약하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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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부문 ,, 현장에서 사회경험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눈에 띄네요.
Hey,Monkey, Did you eat a meal?
사실에 근거한 진리불변의 내용입니다.
이애란씨는 97년도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전철우씨는 89년에 입국.
장문의 글을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지만 사실관계를 더 확인하시고 쓰시면 더 좋을것 같습니다.
정확히 37년전 나이 25세때
1997년~99년 기간이 탈북자 정책에 격변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소상히 공개하고 알려주신데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작문의 글 고생했네요
인간의 일을 어떤 한 틀에다가 맞추어서 평가해보려는 무식함....
할 지랄이 없으면 잠이나 자라,
무식한넘이 아는척 하기는,,,역겹다
- ㅍㅍㅍ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2-02 23:21:34
갠적으로 4년전에는 학자출신탈북자가 대표로 한번했으니 다음에는 단체장출신 탈북자가 했으면 좋겠네요. 뭐, 정치인과 잘어울리는 언론인출신 탈북자도 괜찬을듯 싶고요.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거 같아요 ^^~~ 푸푸하하!! ~~~~
후보자가 일할 능력을 여기서 논하여 보시라구요. 이 정치 미숙님덜아~^^
이를 남북한 통일이후 북한지역에서 이러한 것이 재연되었다는 가정하에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여기서 민주화로 인해 이루어진 직선제의 배경을 떠올려 보세요..
공통점이 매우 많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