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을 몰아낸 세력이 선관위를 그냥 놔둘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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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8:23.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Proverbs 28:23.He that rebuketh a man afterwards shall find more favour than he that flattereth with the tongue.
모든 세상의 언어가 태초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다. 태초의 말씀의 구음이 히브리 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그 구음의 유사성이 짙은 우리말도 그 계열을 그대로 이었을 것이다. 문자표기는 후에 생긴 것이지만 구음은 혈통을 타고 그대로 이어왔을 것임이 분명하다. 구음의 혼잡이 표기의 각기가 각기 혈통을 타고 구체화되는 시절의 유구함을 지내온 것은 분명하다. 그 구음 자체가 소멸되거나 그대로 유지된 것도 뿌리만 남고 변형된 것도 아주 변형될 것들도 原(원)구음과 전혀 다른 구음으로 여러 토씨들로 사용되는 것으로 남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복과 무역의 수많은 족속의 언어의 섞음도 그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의 후손들이 이어져서 지구를 덮은 인류가 된 것이니 그 뿌리구음은 언제나 하나일 것이다. 거기서 바벨의 혼잡 된 구음은 여러 내용으로 드러난 것이다. 바벨의 정확한 의미는 우리가 유추할 수 없지만 분명히 흩어지는 결과는 성립이 된다. 하나님과 사람의 대화가 가능한 구음이기에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 알레프와 타우의 하나님이신 태초의 말씀이 주신 구음에 관한 의미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어학자들은 각기의 관점을 움직일 수 없는 과학이라고 主唱(주창)한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언어의 변천사를 그 나름으로 기술하고 신앙 신념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우리는 다만 아담과 노아의 후손이라고 하는 성경에서만 그 언어의 한 줄기만을 생각하는 것인바, 특히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의 의미를 그 구음의 비슷함을 통해 우리말의 의미의 공통적인 뿌리를 생각한다. 기록한 성경을 넘어서는 유추를 결코 용납할 수 없어야 한다. 이는 창조의 하나님의 원칙이 그 진리가 한 사람 아담의 자손이고 그 후손인 노아의 혈통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본문의 의미는 책망에 대한 의미이다. 그 책망의 구음은 ‘He that rebuke-th’로 번역했는데 yakach {yaw-kahh} 이아카아크흐 이아우-카흐흐로 발음한다. 이 구음을 빨리하면 욕이다.
우리말에 辱(욕)이란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는 명사로 사용된다. 한자로 표기가 가능한 의미이기 때문에,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할 수 있었던 전후 발생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것을 파헤칠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말과 비슷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네이버 사전에서 보면 욕설(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일. 이라고 나오는데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이 욕이라고 한다. 결국 구음도 의미도 비슷하다는 것이고 거의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카흐흐= 辱(욕)이다.
‘to prove, decide, judge, rebuke, reprove, correct, be right’ 등의 의미를 가진다. 성령의 감동으로 남을 책망하는 것이 참 좋은 일인데 그것이 욕으로 속된 말로 비하된 것은 여러 이유들로 유추된다. 언어는 사용자의 인격에 따라 무기도 되고 이기도 되기 때문이다. 마귀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다 흉기이다. 그 흉기에 당하는 것을 능욕이라 한다. 凌辱(능욕)의 욕이다. 남에게 모욕을 당하는 受辱(수욕)의 의미에도 그 욕을 사용하는데 恥辱(치욕)도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 그 언어를 마귀가 사용했을 때 나오는 욕이다. 흉기이니 결국 讒訴(참소)의 내용물이다.
꾸짖는 것을 받는 자의 입장에 따라 욕이 될 수도 있다. 책망 하는 자가 마귀의 참소로 하게 되면 이는 곧 진짜 욕이다. 이런 의미들은 기준의 문제이다. 인간은 기준을 가진다. 각기 기준을 공의로 삼는다면 다른 기준을 책망하게 되는데, 오늘 날 우리민족은 기준의 중구난방이다. 만약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기준을 공유한다면, 하나님의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통치로 임하시는 곧 성령의 충만함이시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통치를 받는 자들에게만 임하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태초의 말씀이 인간으로 오신 분이시다.
그분이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오르시고 성령으로 인간 속으로 오셔서 통치하신다. 그 통치는 곧 살아계신 성령의 통치이시다. 각 사람 속에 만유를 통치하시는 성령이 거하시면 공평한 통치가 된다. 그분이 곧 기준이시다. 법이시다. 그분이 저울과 추와 잣대가 되신다. 그 때문에 모든 기준의 근본이시고 그 값이 공평하고 균등 평등 균일하다. 값이 두 개일 수가 없다. 성령의 기준으로 나오는 값은 언제나 하나이다. 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거기서 하나님의 기준의 책망과 교정과 정정과 바르게 함의 훈계가 나오는 것이다. 성령의 yakach {yaw-kahh}이다.
성령의 책망을 받는 자도 그 속에 계신 성령으로 그 책망을 받아들인다. 한 성령 안에서 저울에 동일 값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성령으로 달면 동일 값이 곧 책망 yakach {yaw-kahh} 다. 인간이 성령의 저울에 그 잣대에 모든 것을 달아내는데 완전해야 하는데 그 언행으로 담아냄에 부족하면 실측하게 되기 때문에 책망을 받는 것이다. 그 책망은 그 속에 성령이 인정하시는 책망이시고 받아들이는 책망이시다. 성령으로 공용되는 책망을 yakach {yaw-kahh}라고 구음했는데 우리말에는 辱(욕)이라고 하는 것으로 내려온 것이나 卑俗(비속)어로 남았다.
누구든지 타인을 책망하려면 성령으로 해야 한다. 많은 자들이 오늘 날 각기의 저울을 가지고 잣대와 기준으로 세상을 농단하고 그 기초로 판단 책망한다. 인민재판은 그들의 기준을 정의로 삼기 때문이다. 지령을 받는 자들은 그 지령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리헌법을 심리하는 자들, 우리 법을 심리하는 자들이 그 법 심리의 기준을 김정은의 지령에 따라 한다면, 그것이 그들의 기준일 것이나 우리 헌법에 반역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것으로 하나님의 기준을 대체하는 것은 악행이고 그 결과는 재앙이고 마귀에게 잡혀 망하는 보응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세상을 확립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는 것을 공유하는 세상이 하나님의 기준을 공유하는 세상이다. “이사야 5:15.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17.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성령을 공유하는 국가를 이뤄야 책망공유다.
하나님의 기준을 공유하지 못하는 세상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것을 다만 욕으로 치부한다. 치부 당한다. 하나님의 기준이 곧 正義(정의)이다. 그 기준으로 모든 것을 定義(정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을 공유하는 것은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야 임하시는 성령을 공유하는 것이다. 성령은 인간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생명의 법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곧 우리 속에 살아 있는 법이시다. 기준이란 의미이다. 기준은 잣대와 저울추를 가지고 있어 늘 그 값을 순간적으로 내셔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신다.
인간은 인간의 정의의 기준으로 행하는데 습관이 들었기 때문에 성령으로 행하는데 완전치 못하는 시절을 지내야 하는데 이때 책망을 해야 한다. 이 책망은 하나님의 성령을 공유하는 모든 자들이 인정하는 책망이다. 세력을 가진 자가 기준이 되는 책망은 성령의 공증을 받지 못한다. “18.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찐저” 그들은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들이라 화를 받을 자들이다. 책망을 하는 것을 악용하여 자기 법을 세우고자 함이니 다만 지배욕구현이다.
법은 오직 성령의 생명의 법만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들의 기준으로 세상을 농단한다.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모든 사람이 각기의 기준으로 타인을 속박하니 이는 다만 지배욕구의 구현을 위한 것이니 이는 곧 마귀의 흉기로 내뱉는 참소이다.
“21.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22.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진저 23.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 인간은 각기나 각 세력의 기준으로 스스로 잘난 체 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는 아담이 되어야 한다. ‘a man’ 은 adam {aw-dawm} 아담 아우-다아움이라 구음하고 man, mankind등을 담는다. 하나님은 만유를 만드시고 그것을 성령으로 통치하시니 인간은 마땅히 성령통치를 공유해야 한다.
“로마서 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定(정)하사 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 속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임하시는 성령통치 공유다.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의 통치를 공유해야 하는데 없다면 각기 기준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기준이신 성령의 통치를 공유하는 곳이다. 그의 잣대 기준 저울 추를 공유한다.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 때문에 지상에서도 동일한 잣대 저울 기준으로 그 추로 행동해야 한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통치로 이끌리는 아담이어야 한다.
나중에 라고 번역된 ‘afterwards’ achar {akh-ar} 아크할 아크흐-아르로 구음한다. after the following part, behind (of place), hinder, afterwards (of time)을 담는다. 우리말에는 ‘명사’ 조금 전이라고 하는 ‘아까’ ‘부사’ 아까 참에 아까매치로 아까만치가 있다. 비숫한 구음인데 다만 시간 전 상황을 의미한다. 본문은 후에 결과를 의미한다. 다만 시간을 의미하는 것에서는 일치된 것이나 전후관계가 다르다. 이 구절의 의미를 결국 우리말로 번역하는데 시차의 전후를 바꿔했다고 한다면, 아까 곧 미리 책망하면 나중에 사랑을 받을 것이다는...
그 미리는 아주 먼 미래에 사랑의 보답을 받는 것이 아닌 곧 바로 사랑을 받게 되는 결과를 낸다는 의미로 ‘shall find’ 가 matsa {maw-tsaw} 마차 마우-차우로 구음한다. 의미는 to find, attain to, 콸 동사로는 to find이고 to find, secure, acquire, get (thing sought), to find (what is lost), to meet, encounter등을 담는다. 우리말에는 들어맞다 의 맞아가 있는데 의미가 동일하다. 맞아! 그대로 그 구음과 의미가 살아 있어 특이하다. 마중도 그 의미 군에 들어간다. 맞춰도 그 의미 군에 들어간다. 동일한 구음으로 派生(파생)되는 의미일까?
맞다 문제에 대한 답이 틀리지 아니하다. 말, 육감, 사실 따위가 틀림이 없다. ‘그렇다’ 또는 ‘옳다 유의어 : 들어맞다, 일치되다, 합리하다 오는 사람이나 물건을 예의로 받아들이다. 적이나 어떤 세력에 대항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는 어떤 때를 대하다. 유의어 : 데려오다, 맞이하다, 임하다. 외부로부터 어떤 힘이 가해져 몸에 해를 입다. 침, 주사 따위로 치료를 받다. 쏘거나 던지거나 한 물체가 어떤 물체에 닿다 또는 그 물체에 닿음을 입다. 유의어 : 받다, 먹다, 명중하다 등의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이 맞다가 같은 구음이고 그 의미이니 놀랍다.
나중에 사랑을 더 받으리라고 하는 ‘more favour’ 는 chen {khane} 크헨 크하네 라 발음하는데 favour, grace, charm, elegance, acceptance을 담는다. 우리말에는굄이 있는데 구음이 유사하다. 굄은 굄 또는 궴이로 발음한다. ‘명사’이고 유난히 귀엽게 여겨 사랑함인데 의미도 거의 같다. 성령으로 책망하는 자들은 성령을 공유하는 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란 의미이다. 입술로 아첨하는 것보다 더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아첨한다는 ‘than he that flatter eth’으로 번역했는데 chalaq {khaw-lak} 크하락 크흐아우-라크로 발음한다.
to divide, share, plunder, allot, apportion, assign등의 의미를 담는데 우리말에는 이런 의미를 갖는 동일한 구음이 없다. 간략하다는 있는데 의미가 전혀 다르다. ‘簡略(간략)하다 ’갈랴카다‘ ’형용사‘ 간단하고 짤막하다 이다. divide의 의미로는 부합되는 면은 있으나 그 많은 의미를 담는 영역의 의미들은 없다. 다만 아첨이라고 하는 말로 번역함은 대동소이의 의미를 다 포함하는 것 같다. plunder란 의미를 담을 수 없다면, 아첨으로 그 영혼을 파멸케 해서 얻어지는 사랑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첨이 전체의 의미를 담는다고 봐야 한다.
그처럼 소멸된 구음들이 있어 보인다. 눈에 관해서도 어제 지적한바와 같이 아윈이 눈으로 대체 되는 것인데 혀도 마찬가지다. 아첨으로 함께 하는 혀는 ‘with the tongue.’ lashown {law-shone} or lashon {law-shone} also (in plural) feminine leshonah {lesh-o-naw} 라소운 라우-소네 라손 라우-소우네 레소나흐 레쉬-오-나우으로 구음한다. tongue이다. 라손이 혀인데 우리는 혀라 하고 히브리 음은 라손이다. 우리말에는 내가 비겁자라손치더라도 어떻게 그를 내버려 두고 갈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가라손치더라도 거기서 기다려야 했다.
보조사가 있다. 라손이 만일 보조사로 전락이 되었다면 그만한 스토리가 존재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기나긴 역사를 다 알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혀라는 말이 언제인가 유입되었던지 만들어졌을 것이다. 성령으로 책망하는 것이 아첨하는 것보다 더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기준을 공유하는데 더욱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에서 하나님이 주신 혀의 의미를 바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일반 대선이기보다는 국가반역을 공인 하는가? 거부하는 에 달린 선거이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이 반역을 반드시 책망을 해야 한다.
교회들이 이를 침묵한다면 성령의 기준을 세상에 제시해야 할 빛의 사명 소금의 사명을 외면한 것이다. 사실 성령으로 공유된 교회가 되어야 그것을 세상에 제시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저울과 추와 잣대와 기준을 반드시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침묵 속에 두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필귀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이민족에게 사랑을 받는 교회로 인정이 되려면 이 반역을 반드시 책망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 교회가 앞장서서 진리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고 이 나라 국민을 민족을 살리는 길이다.
무죄한 자에게 죄를 준 헌재의 판결을 끌어낸 탄핵세력이다. 그 세력이 선관위를 그냥 놔두고 선거에 질 것일까? 원칙대로 하면 질수 밖에 없는 선거인데 이기게 만든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를 자세히 살펴야 하는데, 선관위 전공노... 하나님의 개입의 기적이 아니면 이길 수 없게 똬리 튼 붉은 용마귀가 그 혀를 날름거리면서 이 세상을 가지고 노는데.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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