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의 한국]에 붙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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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정말 엄청난 과업을 이루었고 또 상당한 과오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고,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말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무지막지하고 잔인하게 밀어붙인 사람입니다. 상식적 사람, 쫌팽이, 간담이 작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초인이고 괴물입니다. 그는 한국인의 재능, 근면성, 창의력, 열정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보도 듣도 못 한 "수출입국"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경제개발을 밀어붙였습니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반대한 경부고속도로를 뚫었고, 한일정상화로 얻은 종잣돈으로 포항제철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형(대구폭동에서 죽은 남노당의 박선희씨)의 친구 고김성곤씨(나중에 공화당 간부. 3선개헌 반대로 강제로 은퇴당함)를 설득해서, 편안한 돈방석인 안양방직을 처분해서 동양 굴지의 시멘트 회사 쌍용양회를 만들게 했습니다. 60년대 전세계의 후진국 공업화 이론은 "수입대체" 이론이었습니다. 브라질과 인도가 이 수입대체(import substitute) 노선을 따라 경제개발을 하다가 박살난 경우입니다. 수입대체를 지독하게 추진해서, 각 성의 농장별로 자급자족 체제를 만들었다가 2천만 이상을 아사하게 만든게 모택동이었습니다. 수입대체 이론에 그럴싸한 포장을 해서 "민족 자립 경제"라고 내걸고 이를 "주체"라고 포장한게 김일성이었습니다. 즉 60년대에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후진국 개발 이론이란 "수입대체"밖에 없었습니다. 박정희는 "수출공업화" 노선을 택했습니다. (일설에는, 4.19 후 부정축재로 몰려 죽을까봐 동경으로 도망가있던 삼성 이병철회장이 5.16 후 은밀히 선을 대어 박정희로부터 '사면'을 약속받고 귀국하여 "수출입국" 정책을 박정희에게 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중화학 공업화 (기계,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 노선으로 이행하다가 힘이 부쳐서 경제가 파탄나고, 그 와중에 암살당했습니다. 나중에 1980년대 중반 중화학공업화 때 투자한게 살아나서, 한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는 한마디로 한국인/조선인의 역동성을 꿰뚫어 보았던 천재였습니다. 북한에서 300 백만이 굶어죽었다고 하는데,..정말 어이가 없고 슬픈 일입니다. 가락동 시장에서 한 해에 거래되는 농수산물이 약 7조원에서 8조원(80억달러 ~90억달러)입니다. 제가 과문한지 몰라도 북한의 기초적 식량/에너지를 해결하는데 1년에 약 30~50억달러면 된다고 압니다. 이거, 광산개발하고, 수산자원 (생선, 게..) 개발하고, 임가공하고,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육성하고, 관광 개발하면 그냥 벌어들일 수 있는 "껌값"입니다. 조선/한국인은 근면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울하고 열통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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