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는 항미원조 시리즈 0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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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편.
● 중공, 6·25전쟁 초 안보리에 우슈취안·차오관화 파견
1991년 5월 10일 홍콩에서 황먀오즈(黃苗子·황묘자) 부부를 만났다. 천안문사태 이후 호주에 머물며 가끔 홍콩 오간다며 웃었다. 서울 나들이 권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부인이 명화가 위펑(郁風·욱풍)인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엔 비회원국 - 대만 중화민국이 국제사회 대표 6월 28일 미 7함대 대만해협 이동 - 대만 ‘반공대륙’ 노리며 참전 기대 저우언라이, 9월 17일 유엔에 전문 - “중공이 대표, 대만 대표 축출하라”
위펑이 친구에게 들었다며 항미원조(抗美援朝) 얘기해서 깜짝 놀랐다. 중국인들은 6·25 전쟁을 그렇게 불렀다. “항미원조에 지원한 친구가 있었다. 압록강 건너 서울까지 종군기자로 활약한 맹렬여성이었다. 폐허나 다름없던 서울이 다시 비상하기 시작했다며 제 일처럼 좋아한다.
다음날 베이징에서 온 치궁(啓功·계공) 노인과 어울렸다. 망명객이나 다름없던 대화가 황용위(黃永玉·황영옥) 부부와 아들도 함께했다.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항미원조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황먀오즈와 위펑의 서울 나들이는 그렇고 그랬다. 서울 떠나던 날 황먀오즈와 몇 마디 주고받았다
“장한즈(章含之·장함지)의 책을 본 적 있느냐? 베이징에 가면 만나 봐라. 세상 떠난 전 외교부장 차오관화(喬冠華·교관화)의 부인이다. 항미원조에 관해 아는 것이 많다.”
이상.. 02편에서 계속~~ 차오관화 부인' 대학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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