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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딘 포드가 남긴 재앙
Korea, Republic o 한마디 1 216 2007-01-03 2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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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딘 포드가 남긴 재앙

제럴딘 포드 미 전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품이 소박하고 따뜻하다 및 그 부부가 남긴 알콜중독자의 재활센터 등의 공적을 기리고 있는데, 아래 한 유럽블로거의 글은 우리에게 그 반대의 것,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하게 하므로 번역해 올리겠습니다.

이하 번역 시작:

"그(포드)가 극좌파인 넬슨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임명했던 것은 재앙이었다. 록펠러 아래서 경제는 몰락과 후퇴를 비틀거리며 계속 우왕좌왕했다. 포드정부는 그 책임을 OPEC에서 상승시킨 오일가격에다 지우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세금과 경제제재 정책을 일관했을 뿐이다.

대외 정책으로 가면, 포드는 단적으로 말해 "소련에게 우리가 친절해지자, 그러면 소련도 우리에게 친절해진다. "는 설득으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그의 애국심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소련은, 중국도 마찬가지로, 임기만료가 되어가는 미정부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줄 일은 없었다. 치명적 급소를 살짝 차 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들 공산당의 보편적 수법이었다.

SALt(전략무기제한협정)은 소련으로 하여금 동부유럽에다 오히려 SS20 미사일을 배치하는 결과를 빚었다. 또, 헬싱키 선언은 공산진영의 시각에서는 다른 형태로 서방측이 항복한 것으로 보인 일이었고, (서방의) 예상과는 달리 세계의 자유를 억누를 가공할 무기를 확대배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헬싱키는 세계안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헹싱키 감시자들은 독재국가안에서 용감하게 권리와 자유를 위해 불리한 상태에서 싸우던 개개인들의 반체제 운동을 강화시켰다. 또 레이건,대처 같은 정치적 무기들이 그들의 투쟁에 가세했다. 오히려 인권감시자들은 쓸모있는 조직에는 별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럼에도, 포드의 대통령직 수행은 공산주의에 대항한 서방진영의 투쟁에 가장 획기적인 사건과 연계되어 있는데, 그것은 남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대한 배신행위였다. 1974년 미군은 동서 아시아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티우정권은 미군이 계속 그들을 위해 싸워줄 것이라는 매우 강력한 약속을 받았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베트남은 그 전까지는 계속 패배중이던 그 전쟁을 드디어 반전하고 남베트남으로 침략해 들었으며 1975년 4월말, 사이공은 함락되었다. 그 "실용파"(포드 행정부 지칭)들과 언론은 "베트남전" 히스테리아를 유발했고, 과장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결국 수년간의 독재와 학살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고, 그 곳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포드에게 공정하게도, 1976년 카터에게 근소한 차로 패배하고 포드가 물러난 1976년 이후는 더 큰 재앙이 되었다. 카터에 관하여 누구나 많은 것을 이야기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하면 충분하다. 카터는 가장 최악이고 가장 최소로 성공한 미대통령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터와는 달리, 포드는 개인적인 삶에서 그가 전에 누리던 생활로 돌아갔으며 더 이상 정치적 역을 수핼하려 자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그는 그 자신의 대통령직이 성공작이었는지 실패이었는지 대중이 판단하도록 자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것이다. 그에 비하면, 카터의 부고는 포드의 것에 비해서는 존경할 만하다 할 것이다.

(대통령직을 했으면 자기가 만든 결과에 책임은 최소한 져야 한다는 뜻.) "

이 블로거의 지적, 포드의 대통령직(1974.8.9)이란 것이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공산화를 막지 못함으로 상상키 힘든 킬링필드의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 물론, 미군철수(1973.3.29)의 직접 요인이 된 파리 평화협정(1973.1.27.)은 닉슨 때에 성사 된 것이긴 하였지만 월맹의 침략시 미군을 다시 보내겠다던 미행정부의 약속은 무위가 되었으니, 포드가 일단 미합중국 대통령이 된 이상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베트남과 인도차이나를 공산권에게 내어주는 사태에도 불구, 포드의 대외정책은 소련과 중국에게 친화정책을 편 전임자 닉슨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갔으며 결국 레이건 때까지 미국의 쇠퇴는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적국의 수뇌부 상대방을 선의를 베풀 대상으로 간주하는 지도자를 일국의 대통령으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007.1.3. 파아란 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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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함락


베트남 탈출

사이공 함락 때 미군은 1373명의 베트남 체류 미국인과 5595명의 친미베트남인, 몇몇 외국인들만을
간신히 구출할 수 있었다.


포드와 소련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 간의 SALT협정 조인식 (197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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