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다귀 말도 못하게 외로운 나라놈 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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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못하게 외로운 나라님 사주 기자가 오히려 허를 찔렸다. “… 김정일이 맞습니다. 김정일 사주는 자주 보셨죠?”라고 묻자, 김씨는 “그의 사주를 봐야 할 이유가 있나요. 누가 물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어제 기자께서 찾아오겠다는 연락이 왔기에 기자가 무엇을 물으러 오는지 저녁에 기도해봤습니다. ‘우리나라 문제를 물으러 올 것이다’는 답이 있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한 후 말을 이어 나갔다. “김정일은 핵실험을 해야 그 존재가 드러납니다. 그는 강하게 보여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강하게 보여야 중국 덕을 볼 수 있어 핵실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따라서 양력으로 2007년 5, 6월과 7, 8월에 또다시 핵실험을 하겠다고 법석을 떨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북한을 강하게 보이게 해서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려면 중국 힘을 이용해야 하므로 핵실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힘이 워낙 약하기 때문에 거꾸로 중국에 당하고 말 것입니다. 북한 핵실험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중국은 말로는 북한 편을 드는 척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속으로는 이북을 잡아먹을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강하게 보이려고 핵실험을 했지만 오히려 주변국들에게 약하게 보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김정일은 도화기(桃花氣·색을 좋아하는 것)도 많아요. 남자한테는 처복(妻福)이 중요합니다. 부인이 일편단심으로 섬겨야 덕을 보는데, 여복(女福)이 많은 사람은 대개 처복이 없어요. 김정일은 아버지의 덕도 보지 못해요. 김일성은 그가 심적인 타격을 줘서 죽었기 때문에 아들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김일성은 배포가 있는 아주 큰 그릇이었는데….” 김일성 사후 지금까지 김정일은 둘도 없는 효자 행세를 하고 있다. 아버지를 영원한 수령이자 대원수로 모셔놓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다스리는 양 유훈통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반대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을 여러 차례 궁지에 빠뜨렸고 아버지의 권세를 이용하며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했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미국의 1차 북핵 위기 대응방침이 공습에서 대화로 바뀌던 1994년 7월8일, 김일성은 묘향산 초대소에서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김일성은 7월3일 묘향산 초대소를 찾았는데, 그 이유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기로 한 김영삼 대통령이 묵을 처소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7월6일 내친 김에 김일성은 그곳에 내각의 경제일꾼들을 불러 회의를 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열차로 북한에 오겠다고 했으므로 김일성은 철도상(相)에게 언제까지 철도를 이을 수 있는지 물었다. 북한은 정상회담 전에 경의선을 잇기 어려운 처지였다. 철도상이 솔직한 말을 하기 어려워 우물쭈물하자 김일성이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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